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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에 과일 놓고 초 밝힌 배화교 제상… 우리 상차림 ‘닮은꼴’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 ㉘ 설날 차례상의 기원
2019년 01월 22일 (화) 22:43:19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윤극영의 기념비적 동요 ‘반달(푸른하늘 은하수~·1924년)’에 이어 1927년 발표된 동요다. 까치설날이 뭘까? 섣달그믐을 가리키는 ‘아치(작은)설날’에서 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또 다른 주장에 귀가 솔깃하다. 고려 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1 ‘사금갑(射琴匣·거문고 보관소를 쏘다)’조를 보자. 신라 21대 비처(소지) 마립간(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위 10년째 488년 왕비 선혜 부인이 궁중에 들어온 스님과 눈이 맞았다. 이 일을 까마귀(烏)가 안내한 선인으로부터 들은 왕이 통정장소인 거문고 보관소에 활을 쏘게 해 스님을 죽인다. 이후 정초에 근신하는 ‘달도(도)’ 풍습이 생기고, 까마귀에게 전하는 고마운 마음이 까치로 옮겨져 까치설날이 됐다는 거다. 곱디고운 노랫말에 왕실 치정사건이 얽혔다니…. 한국의 최대 명절 설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 마음을 신데렐라 호박마차만큼 부풀리던 설빔, 세뱃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차례상의 기원을 따라가 본다.

조로아스터교 상차림, 우리 차례상과 판박이

서울 강남 최대 번화가 테헤란로에 가보자. 1970년대 오일쇼크 뒤 원유를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위해 이란과 친해지며 신도심에 붙인 이름이다. 인구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조금 많은 8200만 명 정도지만, 면적은 한반도의 8배나 될 만큼 넓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자리한다. 테헤란 남쪽 이란 국토의 중심부 야즈드(Yazd)로 무대를 옮기자. 불을 숭배해 배화교(拜火敎)로 불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총본산이다. 이란의 국교인 이슬람교에 밀려 초라해졌지만,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2500년 넘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 조로아스터교 상차림. 이란 조로아스터교 총본산 야즈드. ⓒ 김문환

필자는 야즈드에서 두 번 크게 놀랐다. 하나는 조로아스터교 총본당의 1500년 넘게 꺼지지 않는 불이다. 그 오랜 세월 불을 꺼트리지 않은 경이로움보다 사실,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교당 앞에 차린 차례상에 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네 차례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양탄자를 덮은 상 양쪽에 초를 밝히고 사과 같은 과일에 오이와 마늘 같은 채소, 곡류, 과자 등을 우리네 제기처럼 생긴 그릇에 담았다. 신주를 놓는 자리에 경전을 두는 것만 다르다. 조로아스터교 차례상이 언제 차려진 것인지도 흥미를 자아낸다. 

조로아스터교 최고 축제, 춘분 차례상

필자가 야즈드를 찾은 건 2001년 춘분(春分) 때였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왜 춘분에 정성스러운 제물상을 차렸을까? 조로아스터교의 특징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조로아스터교는 BC 6세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 때 닻을 올렸다. 제국이 BC 331년 알렉산더에게 붕괴됐다 555년 뒤인 224년 사산조 페르시아로 부활해 국교로 삼으면서 절정의 교세를 뽐낸다.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눈다. 광명이 암흑을 이긴다는 선악 이분법 논리와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 사상은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에도 영향을 줬다. 

니체의 1883년 작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자라투스트라가 최고의 예언자 조로아스터다. 광명(빛)을 떠받드니 최고 축일은 빛이 어둠을 이긴 날, 즉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춘분이다. 한국인들이 새해 첫날을 최고 명절로 생각하며 차례상을 차리듯, 조로아스터교도는 춘분에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준비해 예를 올린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조로아스터교 상차림 풍습이 우리 차례상에 영향을 미쳤을까? 

조로아스터교도 중국에 거주, 우리 민족과도 교류

한국인들이 진시황릉을 보러 많이 찾는 서안의 섬서성 박물관 1층으로 가보자. 이국적인 유물 한 점이 탐방객을 반긴다. 선비족의 나라 북주(北周·557~581) 시대 수도 장안(서안)에 살던 소그드(Sogd) 출신 조로아스터교도 무덤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박의자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던 사산조 페르시아는 224년 설립된 이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지배하며 조로아스터교를 전파한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소그드(혹은 소그디아나)다. 중국 역사에서는 속특(粟特)이라 불렀다.

3세기 진(晉)나라부터 5~6세기 남북조 시대 사산조 페르시아나 소그드 출신 조로아스터교도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들어와 살았다. 8세기 당나라 현종의 총비 양귀비로부터 총애를 받다 ‘안사의 난’을 일으킨 절도사 안녹산과 사사명도 이름만 중국식이지 소그드 출신 백인이다. 섬서성 박물관이나 북경 국가박물관에는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남긴 유물이 당시의 전설을 토해낸다. 소그드인의 연회와 사냥 등의 일상을 그려놓은 북주의 금박의자도 그중 하나다. 그렇다면 소그드인들이 한국 땅에도 들어왔을까? 다민족 국가인 고구려는 물론 신라에도 소그드인 관련 유물이 남은 점으로 미뤄 이들이 들어와 살거나 최소한 교류했을 개연성이 높다. 

삼한 시대 제사풍속, 조선 중기 차(茶) 없는 차례상 정착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서 설과 추석, 제사 때 차례상 풍속이 언제 시작됐는지 확인해 보자. 창원 다호리, 고령 지산리에서 과일과 생선 가시가 담긴 채 발굴된 가야 제기가 그 증거물이다. 진(晉)나라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30권 중 ‘한전(韓傳)’에 “변한과 진한이… 법속(法俗)과 의식주 생활은 같지만 제사풍속이 다르다…”는 기록이 나온다. 변한이 가야니 기록과 유물이 일치한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이 들어오던 3세기 이미 우리 민족이 제사상을 차렸음을 말해준다.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같은 제천행사 때도 그랬을 것이다. 중국에서 신석기 시대 말기 제기들이 출토돼 적어도 BC 20세기 이후에는 제사풍습이 있었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 성종 이후 관혼상제의 규범으로 삼던 주자(朱子)의 ‘가례’에 ‘천신례(薦新禮)’가 나온다. 세시풍속절에 음식을 바치는 의식이다. 이 천신례를 중국식 다른 이름 ‘차례(茶禮)’로 부르면서 ‘차(茶)’를 올리지 않는 차례상 풍습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신위를 기준으로 붉은 음식은 동쪽, 흰 음식은 서쪽에 놓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대추(棗)는 씨가 하나여서 왕, 밤(栗)은 3톨이 들어 있어 3정승, 배(梨)는 씨가 6개여서 6판서, 감(枾)은 씨가 8개여서 조선8도라는 조율이시(棗栗梨枾)의 그럴듯한 사자성어는 후대 윤색된 것이지만 말이다.  

4500년 전 고대 이집트 공주 무덤 벽화 차례상의 빵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차례상 흔적을 보려면 이집트로 가야 한다. 고대 문명의 불가사의, 1929년 대공황 탈출을 위한 대형공사 정책의 일환으로 착공해 2년 만인 1931년 완공된 고딕 양식의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나오기 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높던 건축물, BC 2500년대 중반 지어진 이집트 기자의 쿠푸 피라미드는 동서양 모든 탐방객의 눈과 마음을 압도해 버린다. 그 옆에 쿠푸의 딸 마스타바(mastaba·무덤)가 자리한다. 영생을 믿던 이집트인들은 무덤에 벽화로 산해진미의 차례상을 차렸다.

   
▲ 청동으로 만든 고대 이집트 차례상. BC 2300년. 대영박물관. ⓒ 김문환

공주를 위한 4500년 전 차례상을 보러 한 번 더 움직이자. 무덤에서 이를 뜯어다 전시 중인 지구촌 문명의 보고,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말이다. 공주의 이름은 네페르티아베트. 그녀의 무덤 차례상 벽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팜파탈(femme fatale) 공주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차례상 앞에 고인의 영정을 놓는 것과 같다. 공주 앞에 있는 긴 조각들이 빵, 우리로 치면 쌀밥이다. 그 위로 각종 고기가 놓였다. 쌀밥에 고깃국, 만둣국을 실컷 먹던 어린 시절 설날 추억과 겹쳐진다. 

이집트 차례상 필수품 파, 총령(총嶺) 거쳐 중국과 한국으로

루브르에서 이집트 중왕국 12왕조 BC 18세기 재무관 샤케르티의 무덤 차례상 벽화를 보자. 혼자 앉아 있던 네페르티아베트와 달리 샤케르티는 아내와 둘이 앉아 후손들이 바친 차례상을 받는다. 상형문자 기록에는 빵 1000개, 고기 1000덩어리, 새 1000마리를 바쳤다고 적혔으니 이집트 효심이 한국을 앞선다. 방금 시장에서 사와 아직 끈도 풀지 않은 듯한 싱싱한 대파 한 단이 눈길을 끈다. 파 없이는 찌개나 국 끓이기도, 나물 무치기도, 김치 담그기도 못하는데…. 임진왜란 이후 들어온 마늘과 고추처럼 한국의 핵심 양념 파도 외래농산물이었다.

   
▲ 이집트 중왕국 12왕조 재무관 샤케르티 무덤 벽화 차례상. BC 18세기. 루브르박물관. ⓒ 김문환

중국에서는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을 총령(총嶺)이라 부른다. ‘파가 자라는 고원지대’라는 뜻이다. 이집트와 서아시아 원산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것인지, 중앙아시아 원산으로 서아시아와 중국 양쪽으로 전파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 파를 건넨 중국인들이 파의 원산지를 중앙아시아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혜초도 총령을 지나 천축국, 즉 인도로 갔다. 

신전의식 차례상… 4300년 세월 무색하게 현재와 닮은꼴

이집트 최고의 역사도시 룩소르로 가보자. 우리로 치면 경주나 평양에 해당한다. 룩소르에는 3500여 년 전 만들어진 거대한 신전 두 곳, 카르나크 아몬 대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남아 있다. 모두 태양신 아몬을 섬기던 장소다. 이집트인들은 아침마다 태양신이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기고, 정화의식(purification)을 치렀다. 목욕재계한 대신관이 기도하며 신상(神像)을 닦고, 기름을 뿌리는 리베이션(libation)을 거행했다. 이어 향(香)을 사르고, 깨끗한 천으로 신상을 감싼 뒤 음식을 가득 괜 차례상을 내놨다. 실물 차례상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루브르처럼 좋은 말로 발굴, 거친 말로 약탈 문화재의 보고,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가보자. 이집트 고왕국 6왕조 BC 2300년경 청동상과 각종 음식을 담던 청동그릇이 잘 정돈돼 우리네 차례상을 연상시킨다. 4300년 세월이 무색해진다. 인간 삶의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음에 새삼 놀란다.  

여기에 놓였을, 신에게 바치지만, 결국 사람이 먹을 제수음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 염소, 영양, 오리, 거위 고기에 채소도 곁들였다. 대파와 양파를 빼놓지 않았으니 그때도 파의 콜레스테롤 제거기능을 알았나 보다. 무화과, 대추야자, 석류 같은 과일도 디저트로 올랐다. 신선한 우유 한 잔은 마무리 코스였다. 올 설에는 조상과 신을 기리는 경건한 차례상 풍습에 스민 문물교류 현상을 떠올리며 만두를 빚는 것도 좋겠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홍석희 기자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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