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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性표현… 신라·로마는 ‘로맨스 왕국’?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 ㉖ 외설과 예술 사이
2018년 12월 18일 (화) 20:31:40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들어와 잠자리를 보니/가랑이가 넷이구나/둘은 나의 것이었고/둘은 누구의 것인가?/원래 내 것이지마는/빼앗긴 것을 어찌할까?” 

고려 충렬왕 때 1281년경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2에 실린 신라 8구체 향가 ‘처용가(處容歌)’다. 일연은 신라 말기 헌강왕(재위 875∼876년)으로부터 급간(級干) 벼슬을 받은 용왕의 아들 처용(외국인 추정)이 썼다고 적는다. 아울러 헌강왕이 인연을 맺어준 처용의 아내가 빼어난 미인이었다고 덧붙인다. 남편은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고, 아내는 사람으로 변한 역신(疫神·전염병 전파 귀신)과 잠자리를 갖는 내용이 놀랍다. 헌강왕의 여동생이 음란하다던 진성여왕(재위 887∼897년)이고, 이때 향가집 ‘삼대목’을 각간(角干) 위홍이 편찬하니, ‘처용가’에 당시 풍속이 묻어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지난달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그리스 신화 속 절세가인 레다(스파르타 왕비)와 백조로 둔갑한 제우스의 사랑을 담은 2000년 전 벽화가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 변장한 신과 미인의 사랑이란 점에서 처용가와 닮았다. 유독 사랑 소재 유물이 여럿 출토되는 신라와 로마의 로맨스 예술을 들춰 본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의 정사 장면 토우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전시실로 가보자. 귀퉁이 유리 진열장에 흙으로 빚은 인형 토우(土偶)들이 눈길을 끈다. 짐승, 일하는 사람들 사이로 예사롭지 않은 동작의 토우 3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일제가 1926년 경주 황남동에서 출토한 5세기 유물들의 주제는 ‘사랑’. 그렇다. 5㎝ 안팎의 안팎(부부)이 정을 나누는 행위묘사 3점의 토우는 크기에 비해 무척 선정적이다. 

   
▲ 5세기 신라의 사랑행위 토우. 아래는 소장품 번호 ‘K번 750’. 왼쪽 위는 ‘K번 749’, 오른쪽 위는 ‘K번 751’이다. © 김문환

사진 맨 아래 소장품 번호 ‘K번 750’을 보자. 남녀가 팔로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꼭 붙은 모습에서 부부 침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진 왼쪽 위에 있는 ‘K번 749’는 좀 더 노골적이다. 옆에서 보면 엉덩이 위아래 굴곡진 남녀의 신체가 더욱 드러나 보인다. 특이한 점은 밑에 있는 인물이 머리에 터번을 둘렀다. 그렇다면 신라 토착민이라기보다 서역에서 들어온 소그드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른쪽 위 3번째 ‘K번 751’은 누워 있는 여성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 육감적이다. 크기가 6.1㎝로 사랑행위 토우 3점 가운데 가장 크다. 이밖에 수장고의 ‘K번 815’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신라 정사장면 토우들은 처용가 속 ‘가랑이가 넷이구나’ 노랫말과 겹쳐진다.

국립경주박물관, 국내 가장 선정적인 유물 국보 195호 토기 

신라시대 로맨스 예술작품을 더 찾아보기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국내에서 가장 선정적인 모습을 담은 국보가 이곳에서 탐방객을 맞는다. 호기심 어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야하다. 하지만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지구에서 출토한 방대한 분량의 황금 유물에만 눈길을 주다 보면 놓치기 십상이다. 주인공은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30호 무덤에서 출토한 국보 195호 토우장식 목항아리. 높이 34㎝로 밑이 둥글고 입구가 밖으로 약간 벌어졌다. 목에 4개의 돌출 선이 가로로 나 있다. 세로로 5개의 선 사이에 동심원과 뱀, 토끼, 개구리, 새, 거북이 등이 투박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 국보 195호 목항아리.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됐다. © 김문환

일견 평범해 보이는 토우 장식이지만, 항아리 어깨와 목이 만나는 부분에 시선이 이르면 깜짝 놀라고 만다. 임신부가 현악기를 타는 장면 옆으로 남녀의 적나라한 정사장면이 마치 전위 예술처럼 조각돼 탐방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큼직한 상징을 곧추세운 남성 앞으로 여인이 엉덩이를 내민 채 엎드린 국보 195호의 실체다. 계림로 고분의 연대를 5∼6세기로 치면 1500여 년 전 로맨스 예술에 이국적인 신라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비록 풍요를 상징하는 기복신앙의 일환이라 해도 소박하면서 솔직한 감정 표현에 현실 중시 풍속도가 읽힌다. 

시칠리아 피아차 아르메리나 침실 바닥 정사장면 로마 모자이크 

카르페 디엠(CARPE DIEM·오늘을 잡아라)의 현실을 즐기는 문화는 단연 고대 로마다. 국보 195호 목항아리 속 정사장면과 비슷한 포즈의 로마 유물이 여럿이지만, 상대적으로 점잖은 로맨스 예술을 찾아 지중해 시칠리아 섬으로 가보자.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의 4세기 로마 저택 카살레 빌라(Casale villa)의 부부침실로 들어가면 바닥 전체가 모자이크로 덮였다. 로마인들은 실내 장식 때 장소별로 분위기에 맞는 소재를 골랐다. 식당 바닥 모자이크는 생선, 버섯 같은 음식물이 풍미를 더했다. 침실은 남녀사랑 모자이크가 뜨겁게 달궜다.

   
▲ 로마시대 4세기 시칠리아 피아차 아르메리나 카살레 빌라의 침실 정사 모자이크. © 김문환

완벽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는 카살레 빌라 침실 모자이크는 가장 전형적이다. 반라의 여인이 뒤태를 뽐내며 남자를 껴안는다. 오른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당기는 포즈다. 풍만한 엉덩이는 그대로 드러났고, 상반신은 스트로피움(Strophium)이라 부르는 로마시대 여인의 브래지어를 찼다. 남자는 왼손에 그릇을 들고, 오른손으로 힘차게 여인을 안는다. 콧등을 마주 대고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눈빛은 이미 상대를 향한 갈망으로 불타올랐다. 부부침실 장식이라 해도 놀라운 당시 풍속도다.

스파르타 왕비 레다, 백조로 변한 제우스와 정 통해 헬레네 낳아 

외신을 타며 관심을 모은 폼페이의 ‘레다(Leda)와 백조(제우스)’가 나눈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를 풀어보자.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화산재 더미에 묻힌 폼페이.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들어간 폼페이는 지금도 전체의 25%를 발굴 중이다. 그 과정에 도시저택 도무스(Domus·빌라는 교외 대저택) 벽을 장식하는 레다와 백조 프레스코 벽화가 발굴된 거다. 로마인들은 건물 바닥에 질척거림을 방지하면서도 예술적 취향을 살리는 대리석이나 도자기 조각으로 모자이크를 깔았고, 벽에는 프레스코 그림을 그렸다. 모자이크나 벽화의 주요 모티프는 그리스신화나 일상생활이었다.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 레다의 사랑이야기는 자주 활용하던 소재다. 레다가 누구인지 몰라도 이 여자의 엄마라면 ‘아하’ 고개를 끄덕인다. 고대 서양사회 최고 미인이라는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의 애정행각으로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헬레네의 엄마가 레다이다. 그리스 신화 최고신 제우스는 우리네 신들처럼 점잖은 캐릭터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만 보면 달려드는 팔난봉에 가까웠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백조로 변신해 연못가의 레다에게 다가가고, 이를 불쌍히 여긴 레다가 품 안에 숨겨주자 본색을 드러내 정을 통한다. 여기서 태어난 3남매가 헬레네, 그리고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다. 이 장면은 고대 그리스로마를 탐구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이 르네상스 예술로도 되살려냈다.

키프로스 니코지아 박물관과 런던 대영박물관 ‘레다와 백조’ 모자이크 

폼페이의 프레스코가 아니라 ‘레다와 백조’ 모자이크를 보러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로 가보자. 오랜 그리스 문명지 키프로스 섬은 우리처럼 남과 북으로 갈렸다. 남쪽이자 키프로스라는 나라 이름을 가진 곳은 그리스 문명권이다. 북쪽은 16세기 오스만 터키 지배 이후 터키인들이 들어왔고, 1974년 터키군의 침공 이후 북키프로스 터키공화국으로 불린다. 주요 그리스 로마 유적지는 남쪽 키프로스에 몰렸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고향으로 알려진 키프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섬’이라는 마케팅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수도 니코지아 국립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절 예술품을 모아 전시 중인데,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로마유물이 ‘레다와 백조’ 모자이크다. 앞서 본 시칠리아 여인처럼 가슴에 스트로피움을 차고, 이미 다 흘러내린 옷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뒤를 바라보는 레다의 관능미가 시선을 붙잡는다.  

   
▲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 레다와 백조 로마 모자이크. © 김문환

레다의 오뚝한 콧날 위 순수한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자. 레다의 요염한 몸매를 훔쳐보는 백조(제우스)의 능글맞은 눈길과 마주치며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고대 모자이크 예술가의 탁월한 표현력에 새삼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이 멋진 예술품을 사진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니코지아 국립박물관은 엄격한 촬영금지다. 틈을 보며 무던히 애썼지만, 허사였다. 이런 아쉬움을 키프로스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인들도 느낀 게 틀림없다. 런던 대영박물관 키프로스 유물실에 복제품을 만들어 진품 대신 감상할 뜻밖의 기회를 주니 말이다. 

에게해 코스 섬 ‘에우로파와 황소(제우스)’ 모자이크, 방치 훼손 

로마인들이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소재로 즐겨 사용하던 또 다른 소재를 찾아 지중해 북동부 에게해로 가보자. 그리스 영토지만, 터키 본토의 고대 유적도시 보드룸(Bodrum·구 할리카르나소스; 헬레니즘 시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마무솔레움이 있던 곳)이 육안으로 바라다보이는 코스 섬이 행선지다. 코스 섬은 몰라도 이 사람의 고향이라면 안다. 요즘도 전 세계 의사들이 맹세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고대 그리스 명의, 서양의 화타(華陀),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이다. 히포크라테스 강의 교실 터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대한 고목 잎이 ‘인생은 짧고, 예술(의학기술)은 길다’는 그의 명언을 속삭여 주는 듯하다. 

코스 섬 한복판에 방치된 로마 저택 침실 터의 ‘에우로파와 황소’ 모자이크가 동네 개들이 저지른 만행의 흔적을 뒤집어쓴 채 훼손돼 간다. 2000년 전 유물을 이렇게 관리하다니…놀라움은 이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裸身)의 에우로파(Europa)가 황소를 부둥켜안고 매달린 더 놀라운 장면에 묻히고 만다. 

‘에우로파와 황소(제우스)’, 페니키아에서 그리스로 문명이동 은유 

에우로파는 오늘날 레바논 땅 페니키아 도시국가 티레의 공주다. 에우로파의 미모를 눈여겨본 제우스가 멋진 황소로 변해 에우로파가 노닐던 초원에 나타난다. 에우로파가 다가오자 보쌈해 날아간 곳이 그리스 크레타 섬이다. 

여기서, 미노스(미노타우로스 신화의 크레타 왕)를 비롯한 3형제를 낳는다. 라틴어를 비롯한 유럽 각국 언어로 유럽을 뜻하는 에우로파, 영어 유럽(Europe)의 기원이 바로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파다. 에우로파 납치사건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독자 알파벳을 만든 페니키아인들의 문자를 비롯한 선진 문화가 당시 후진사회이던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사회로 전파된 사실을 감춘 신화적 은유다. 역사와 풍속을 담아내던 고대사회 로맨스 예술의 더 적나라한 실태는 다음 기회에 폼페이 편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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