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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승리 주역은 고구려의 첨단무기 ‘찰갑’과 ‘말 갑옷’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 ㉔ 한국과 세계의 ‘개마무사’ 전투문화
2018년 10월 23일 (화) 22:04:58 김문환 danbi@danbinews.com
   
▲ 함안 아라가야 마갑총 출토 국내 유일 말갑옷. 5∼6세기. ⓒ 국립 김해박물관

2004년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묘사된 BC 13세기 트로이 전쟁을 다뤘다. 절세가인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스파르타 왕)를 노년으로 분장시키는 등 부실 고증이 도마에 올랐지만, 흥행에는 지장 없었다. 2006년 ‘300’도 마찬가지. BC 480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때 지구상 최대 제국 페르시아(이란)의 크세르크세스 왕을 원시부족 추장처럼 그려 고증은 뒤로 밀렸으니 말이다. 왜곡은 스파르타 사내들의 멋진 식스팩 복근 열풍에 가리고 말았다. 2004년 ‘알렉산더’는 알렉산더의 소그디아나 출신 백인 아내 록사나(빛나는 아름다움) 역을 흑인에게 맡길 만큼 재미를 역사 위에 뒀다. 지난 추석 개봉한 ‘안시성’도 이런저런 고증 문제가 거론되지만, 고구려 역사를 대중의 관심사로 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에 너무 엄한 잣대를 들이대면 창작의 자유가 꺾인다. 영화 속 역사를 바르게 풀어주는 건 연구자들의 몫이다. 개봉 1달에 540만 관객을 동원한 ‘안시성’ 속 고구려 기병의 차림새를 떠올려 보자. 말까지 갑옷을 입혀 돌진하는 안시성 승리의 주역, 고구려 개마무사(鎧馬武士) 전투문화를 들여다본다.

   
▲ 북위 선비족의 무사와 갑옷 입힌 말조각. 5∼6세기. ⓒ 북경 국가 박물관
   
▲ 다키아 기병 갑옷과 말갑옷. 말 눈 보호대까지 보인다. 2세기. 로마 트라야누스 기둥 복제품.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역사박물관

안시성 전투 현장, 만주 영성자산성의 초라한 유적 보존

중국 요령성 성도 심양에서 남쪽 대련 방향으로 고속철도를 타고 달리면 연개소문이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천리장성의 성들이 차례로 얼굴을 내민다. 심양 근처 무순시 신성, 요양시 요동성, 개주시 건안성을 지나 대련의 비사성까지. 그중 요양시와 개주시 사이 해성시 고속철도 역에 내린다. 버스를 타고 30분여 시내로 들어가면 일반 기차역이 나온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팔리진(八里鎭)에서 우리네 1970년대 삼륜차(택시)에 몸을 맡긴다. 10분 남짓 한적한 들판을 달리면 작은 마을을 지나 오르막 산길로 접어든다. 문득 길옆 풀섶에 쓰러진 표지석과 마주친다. 기사에게 30위안을 더 주고 흙먼지를 닦아내니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

안시성터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2016년 6월 찾았던 안시성터에 영화에서 보던 험준한 산악지대는 없다. 김광식 감독이 안시성의 모델로 삼은 홀본산성(졸본산성, 오늘날 오녀산산성)처럼 가파르지 않다. 능선이 완만하다. 당나라군이 흙을 높이 쌓아 안시성과 높이를 맞춘 뒤 공격한 기록을 감안하면, 홀본산성을 모델로 한 영화보다 평탄한 영성자산성이 사실에 더 가깝다. 단국대 윤명철 교수의 지적처럼 안시성터로 영성자산성 이외 대안이 없다. 당나라 대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안시성터에서 고구려인의 기개를 느껴 볼 흔적을 오늘날 찾기는 어렵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돌조각들에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당태종이 만든 안시성 희생 군졸 기리는 북경 민충사 말끔한 복원

안시성 전투의 잔영을 좇아 무대를 중국 수도 북경으로 옮긴다. 북경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시내 중심부 차이스커우(菜市口)역에 내려 10분 남짓 걸으면 이슬람교 모스크 근처에 법원사(法源寺)라는 절이 나온다. 645년 창건됐으니 1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다. 그런데, 절 입구 기념탑에 ‘민충사고지(憫忠寺故地)’라는 이름이 적혔다. 법원사는 1733년 만주족의 청나라 때 민충사를 중건하며 얻은 이름이다. 민충사를 누가 창건했을까?

645년 6월 시작돼 9월에 끝난 안시성 전투. 겨울 추위가 다가오면서 당 태종은 안시성 공략을 포기한 뒤, 회군 명령을 내린다. 당 태종은 수도 장안으로 가기 전 북경에 머물며 절을 짓는다. 고구려 원정에서 숨진 병사들의 충성에 마음 아프다는 민충사(憫忠寺)다. 안시성과 달리 지속적으로 복원되며 전통을 잇는다. 안시성이나 요동성 등 고구려 유적지를 중국과 손잡고 발굴·복원할 방법은 없는지....

   
▲ 안시성의 오늘날 중국 측 이름인 영성자산성의 표지석. ⓒ 김문환

안시성 전투 숨겨진 이야기, 당나라군 선봉 신라인

고려 시대 김부식이 1145년 대표 집필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권47을 펴보자. 설계두(薛계頭)라는 인물의 내력을 소상히 들려준다. 그는 안시성 전투 직전 펼쳐진 주필산 전투의 선봉에서 싸우다 죽는다. 당 태종은 그의 용맹함을 기려 어의를 덮어주고, 대장군 칭호를 내린다. 설계두가 당나라 사람인가? ‘삼국사기’는 그가 신라의 골품제 신분사회에 절망하고 능력을 펴기 위해 당나라로 간 신라인이라는 설명을 담는다.

당 태종은 신라인으로 고구려에 맞서 목숨 내놓고 싸운 점을 높이 산 거다. 15년 뒤 황산벌 전투에서 당나라 소정방 군대의 선봉에서 백제 계백 장군 진영으로 돌진하다 죽은 신라 화랑 관창의 모습과 겹쳐진다. 안시성 전투 직전 신라는 당나라에 고구려를 정복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한 상태였다. 당시 당나라 군대에는 신라인뿐 아니라 630년 당나라가 복속시킨 돌궐(투르크) 병사도 포함됐다. 다국적군 당나라 대군을 막아낸 고구려군의 핵심 전력,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창을 들고 돌진하는 고구려 기마창병의 위용을 그려볼 유물은 없을까?

만주 환인 홀본(졸본)산성 박물관 고구려 병사 갑옷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 첫 도읍 환인의 홀본산성(오녀산산성) 박물관으로 가보자. 작은 쇳조각을 마치 비늘처럼 이어붙인 갑옷, 찰갑(札甲)을 만난다. 가야나 신라에서 발굴되는 판갑(板甲), 즉 넓은 쇠판을 붙여 만든 갑옷과 다르다. 판갑은 몸을 민첩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이에 비해 비늘 형태 찰갑은 활동성이 뛰어나 기병에게 안성맞춤이다. 영화 ‘안시성’에서는 찰갑이 아닌 판갑을 입혀 고증 논란이 일었다. 영화에서처럼 말에게도 보호장구를 입혔을까?

홀본산성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길림성 집안(集安) 박물관도 꼭 필요한 탐방코스다. 광개토대왕릉에서 출토한 큼직한 금동(金銅) 말 다리 보호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리에 보호대를 착용시켰다면 영화처럼 말의 얼굴은 물론 몸통에도 갑옷을 입혔을 게 분명하다. 선비족 북위(北魏)의 황족 탁발(拓拔) 씨 출신으로 장손(長孫) 씨로 개명한 당 태종 최고의 책사 장손무기(長孫無忌)는 안시성 말고도 북쪽 신성과 남쪽 건안성이 굳건하게 버티며 10만여 명의 병력을 보유했다고 황제에게 아뢴다. 그 강력한 군사력의 비밀, 말갑옷 유물을 볼 수는 없을까?

함안 아라가야 마갑총, 국내 유일 말갑옷 출토

경남 함안으로 가보자. 아라가야의 본거지다. 함안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 고분군에는 고령이나 합천의 가야고분처럼 야산 능선을 따라 거대한 봉분이 즐비하다. 1992년 아파트 공사 도중 주차장 부지에서 말갑옷이 출토돼 마갑총(馬甲塚)이란 이름을 얻었다. 길이 230㎝, 너비 40㎝로 쇠를 비늘처럼 잘라 연결한 찰갑이다. 김해 덕산리에서는 이런 말갑옷으로 무장한 국보 제275호 개마무사(鎧馬武士) 도자기 인형(陶俑·도용)이 출토돼 가야의 철제 말갑옷 문화를 뒷받침한다. 중국 진수가 3세기 말에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가운데 ‘한전(韓傳)’을 펴보자. “변한(가야)은 철 산지로 유명해 마한, 진한, 동예, 대방군, 낙랑군, 왜가 모두 여기서 철을 사간다”는 기록처럼 말갑옷은 철 산지 가야의 철제 기마 무구 제작 수준을 잘 보여준다.

   
▲ 고구려 벽화 속 고구려 군사 찰갑과 말갑옷 그림. 4∼6세기. 만주 통구 12호분. 국립 전주박물관 철의 제국 특별전. ⓒ 국립 전주박물관

고구려 벽화 속 고구려 군사 찰갑과 말갑옷

길림성 집안에는 광개토대왕비(호태왕비)가 우뚝 서 위용을 뽐낸다. 광개토대왕이 죽은 413년 제작됐을 이 비석에 “399년 신라의 요청을 받고 400년 5만 명의 병사를 보내 신라를 침공한 가야, 백제, 왜 연합군을 궤멸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고구려 정예 기병, 그것도 말갑옷 무장의 개마무사들이 맹활약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황해도 안악 3호분, 평안도 남포 덕흥리 고분, 만주 집안 삼실총과 통구 12호분 등에 찰갑과 투구로 무장하고 말갑옷을 입힌 뒤, 창을 들고 돌진하는 개마무사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가르는 용맹한 모습에서 중국은 물론 여러 기마민족의 침략을 물리치던 고구려의 위용이 잘 묻어난다.

기마민족 선비족 말갑옷 풍속 북경 박물관, 서안 박물관 확인

북경 국가 박물관에서는 5∼6세기 동아시아 강대국이자 고구려와도 우호 관계를 맺었던 선비족 북위의 개마무사 도용이 흥미를 자아낸다. 중국의 역사 고도 낙양 박물관이나 서안 섬서성 박물관도 북위 개마무사 도용이 자리를 지킨다. 말갑옷이 기마민족 선비족에도 있었음을 말해준다. 선비족에 앞서 BC 3세기∼AD 3세기 활동했던 기마민족의 대명사 훈(흉노)족은 어땠을까? 내몽골 자치구 성도인 호화호특 내몽골 박물원에 가면 훈과 한나라 사이 기마 전투 장면을 그린 화상석 사진을 여러 점 볼 수 있다. 투구나 갑옷은 보이지만, 말갑옷을 입힌 흔적은 없다. 시황제의 진나라와 한나라는 많은 병사와 말 도용을 남겼지만 말갑옷 관련 유물은 아직 출토되지 않는다.

흑해에서 만주까지 유라시아 초원 기마민족 찰갑, 개마무사 풍속

유라시아 초원지대 서쪽 끝인 흑해 북쪽 연안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역사박물관으로 가보자. 훈(흉노)이 4∼5세기 휩쓸고 지나간 이 지역을 장악했던 6∼7세기 아바르인, 8세기 카자르인 기병대가 찰갑을 입고, 말갑옷을 입혀 전투에 나섰음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아바르인 투구는 가야에서 출토되는 복발종세장판주(覆鉢縱細長板胄)로 통구 고구려 벽화와 같은 생김새다.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말갑옷의 흔적을 보려면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야 한다. 106∼113년 사이 세운 트라야누스 기둥은 높이 38m, 지름 4m다. 트라야누스 황제 로마군의 다키아(루마니아) 정복 과정을 새긴 조각 띠가 기둥을 나선형으로 23번 돌며 190m 길이로 펼쳐진다. 하지만, 육안으로 멀리서 이를 보기 힘들다.

함안 마갑총 가야 말갑옷 국보 지정 추진해야

‘로마의 땅’이라는 말뜻의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역사박물관은 트라야누스 기둥의 주요 장면을 패널로 복제해 자세히 보여준다. 로마 기병과 달리 다키아 기병은 찰갑 차림이고, 말도 갑옷 차림새다. 흑해 다키아에서 만주 고구려까지 유라시아 초원지대 기마문화 속 말갑옷과 찰갑 개마무사의 전투 풍속도가 생생하게 겹쳐진다. 조각과 그림으로만 남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와 달리 국립 김해박물관에 전시 중인 함안 마갑총 가야 말갑옷은 실제 유물로 세계사적 보존가치를 지닌다. 문화재 당국의 국보 지정 추진을 기대해 본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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