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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 설화’ 한나라 때 퍼져
㉓ 송편 찌는 떡시루의 기원
2018년 09월 18일 (화) 22:43:09 김문환 danbi@danbinews.com
   
▲ 옥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 왼쪽은 서왕모와 동왕공. 후한(25∼220년) 화상석. ⓒ 서안 비림박물관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6·25친북 부역혐의 20년 형의 낙인이 깊게 찍힌 노천명이 1938년 쓴 ‘장날’이다. 추석을 앞둔 시골 정서를 이리도 가슴 찡하게 묘사한 시에 어깃장을 놓으면 억지스럽다. 고향 내음 가득 묻어나는 정겨운 시어는 나무랄 구석이 없다. 아스라한 달빛 쏟아지는 툇마루에 앉아 송편 빚으시던 어머니, 굴비에 옥춘팔보 어물 보따리 메고 대목 장날 골목 어귀 들어서시던 아버지. 부모님 얼굴부터 이슬 너머로 뿌옇게 눈에 밟히는 추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서구 문화에 밀려 고유 명절의 의미는 날로 희미해지지만, 아직도 추석은 한국인의 가슴에 사람의 향기를 불어넣는다. 고향, 어머니, 그리움…. 그 무엇을 찾아 한국인은 또 꽉 막힌 도로를 마다 않고 고향길에 오른다. 한국인 정서의 밑바탕을 그려내는 한가위 보름달 속 토끼의 떡방아, 송편 찌는 떡시루 풍속의 원형을 찾아 나선다.

포천 한탄강 지류 영평천변 집터 부뚜막 유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자리한 경기박물관으로 가보자. 얼핏 흙무더기로 보이는 특이한 유물이 기다린다.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숯덩이가 보인다. 포천시 영중면 한탄강 지류 영평천 마을 유적 1호 집터에서 걷어온 노지 부뚜막이다. 솥을 거는 아궁이 옆에 반쯤 묻혀 고개를 내미는 항아리는 춘천 중도(中島)에서 주로 출토돼 중도식(中島式)이라 불리는 경질(硬質)토기다. 국내 박물관 가운데 유일하게 현장 부뚜막을 통째로 옮겨 온 유물이어서 눈길이 더 오래 머문다. 한성백제 시절이니 못 잡아도 1500년은 훨씬 넘었다. 이런 흙더미 말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좀 더 실감 나는 고대 사회 부엌을 볼 수는 없을까.

   
▲ 고구려 부엌 부뚜막 옹솥 위 시루에서 떡 찌는 아낙. 황해남도 안악군 안악 3호분 벽화 사진. ⓒ 경기박물관

고구려 여인 부뚜막에서 떡 찌는 채색 풍경화 안악 3호분

포천 부뚜막 옆에 걸린 유물사진 한 장이 갈증을 풀어준다. 노지 부뚜막과 달리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부엌그림이어서 금방 시선을 빼앗긴다. 하나씩 뜯어보자. 기와지붕 처마 아래 부엌이 눈에 들어온다. 여인 3명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오른쪽 아낙은 서서 소반 위에 그릇을 포갠다. 가운데 아낙은 땅바닥에 엎드려 앉은 자세다. 머리가 아궁이 쪽을 향한 것으로 봐 불을 때는 중이란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챈다. 아궁이 구멍에 불길이 벌겋게 타오른다. 시골에서 새벽녘과 저녁에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기 위해 불을 때던 정경이 새삼 떠오른다. 

불 위는? 아궁이 틀에 항아리처럼 생긴 솥을 걸쳤다. 옹(壅)솥, 혹은 옹달솥이라 부른다. 물이나 국을 끓이는 용도다. 그림을 더 들여다보자. 황토빛 옹솥 위에 검은색 큼직한 시루가 얹혔다. 시루 윗부분에 밝게 빛나는 것은 떡이나 밥일 터. 맛나게 익는 중이다. 생김새로 봐 떡에 가깝다. 옹솥에서 끓어 오른 수증기가 구멍 난 시루 위로 올라가 떡을 익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루 앞에 서 있는 세 번째 여인을 보자. 몸을 숙여 시루 안을 들여다본다. 오른손은 그릇을 들었다. 그릇에는 아마도 시루에 넣을 콩이나 기타 재료가 담겼을 거다. 왼손으로 긴 젓가락을 시루 안에 찔러본다. 잘 익었나 확인해 보는 동작이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혹은 고사를 지낼 때 군침 흘리며 떡을 찌던 바로 그 모습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겹친다. 떡을 찌는 게 아니라 보리나 밀 같은 곡류를 찌는 모습이라 해도 시루에 찌기 때문에 떡 맛을 낼 게 분명하다. 조상의 생활상이 담긴 이 그림은 황해남도 안악군 안악 3호분 고구려 벽화다. 시루에 떡이나 곡류를 찌던 고구려 생활풍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백제, 마한, 신라, 가야 떡시루 일본 오사카, 사카이 박물관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면 서울 아차산 근처 구의동 보루에서 출토한 고구려 청동옹솥에 흙 시루를 얹어 전시 중이다. 고구려의 풍습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고구려만 그렇게 떡이나 곡류를 시루에 쪄 먹었을까. 백제나 마한, 가야, 신라는 어땠을까. 전남 나주시 국립나주박물관으로 가보자. 고구려 안악 3호 고분 벽화에서 보던 시루, 옹솥, 아궁이가 실물로 기다린다. 물론 한곳에서 출토한 것은 아니다. 아궁이는 광주광역시 산정동, 옹솥은 전남 광양시 목성리, 시루는 전남 함평군 진양리에서 출토했다. 이들을 한데 모아 백제 혹은 마한 시절 부엌 풍경으로 복원한 거다. 우리 민족이 남부나 북부지방 가릴 것 없이 주식인 밥이나 떡을 시루에 쪄 먹었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 조상이 남긴 풍속 유물이 때로 외국에 더 많이 보관돼 있는 현실에 놀란다. 떡시루도 마찬가지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가면 그렇다. 1592년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오사카 성은 건물 대부분이 허물어졌지만, 성벽 주위를 감싸는 방대한 해자(垓字·물웅덩이)와 성 꼭대기 도요토미의 거주지 천수각(天守閣)은 아직도 위용을 뽐낸다. 오사카 성 바로 앞은 고토쿠(孝德) 천황이 645년 도읍을 옮겨 지은 궁전 터다. 나니와(難波) 궁전이라 부른다. 이 일대 지명은 나니와 궁전과 한자는 같지만, 발음이 다른 난바(難波)다. 오사카 번화가다. 660년 의자왕이 항복하고, 일본에서 온 응원군과 백제 연합군마저 663년 오늘날 금강의 백촌강(백강)전투에서 패하자 백제계 유민이 대거 난바로 몰려온다. 그 난바 나니와 궁전 왼쪽에 NHK 오사카 방송국과 오사카 박물관이 자리한다. 이곳에 백제와 마한, 가야, 신라의 시루 수십여 점이 전시돼 적잖이 놀란다. 국내 어느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오사카 남쪽 교외 도시 사카이(堺)박물관도 시루와 옹솥을 전시하며 고대 한·일의 시루와 옹솥 풍습을 증언한다. 일본 박물관은 우리보다 시루 유물이 많은 것은 물론 자세한 그림설명이 붙어 고대 조리문화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떡시루의 기원은 중국 신석기 시대 

중국은 어땠을까. 오사카박물관에는 밑면에 직사각형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린 청동시루와 옹솥을 전시 중이다. 박물관 측은 평양에서 출토한 BC 108년~AD 313년 사이 유물이라는 설명서를 붙였다. 한나라가 고조선 수도 평양 일대에 설치한 낙랑 시기다. 중국 한나라에서도 떡 찌는 시루와 옹솥을 사용했다는 말인가. 북경(北京) 국가박물관으로 가보자. 중국 각지의 주요 유물을 모아 중국 문명사를 일별하기 좋다. 국가박물관에는 한나라(BC 206년~AD 220년) 시기는 물론 그 이전 전국시대(BC 403년~BC 221년) 청동으로 만든 시루와 솥의 일체형 옌(, 때로는 솥과 분리)을 전시 중이다. 평양에서 출토한 낙랑 시루 옹솥과 같은 형태다.

중국에서 시루와 옹솥을 이용해 곡물이나 떡을 찌는 풍습이 언제 시작됐을까. 북쪽의 수도 북경에서 남쪽 수도라는 남경(南京)박물관으로 가보자. 전국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주나라(BC 1046년~BC 771년) 시대 청동시루가 기다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석기 시대 흙으로 만든 시루옹솥 옌()도 탐방객을 맞는다. 신석기 농사 문명이 시작된 이후 중국서 생겨난 시루와 옹솥 문화가 동아시아 각지 곡물재배지역으로 전파됐음을 보여준다. 뒷산 다복솔 어린 솔잎을 따다 켜켜이 시루에 깔고 송편 찌시던 어머니 곁에서 장작불을 지피던 시루떡 문화. 중장년 세대의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을 고향집 부엌에서의 추억이 오래전 중국서 들어온 풍습이었던 셈이다. 송편이나 시루떡 찌기 전 방아를 찧어 곱게 가루를 낸다. 이런 명절 방아 찧기는 달나라 귀여운 옥토끼 떡방아 설화로 귀에 못이 박이도록 회자된다.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 달나라 방아 찧는 옥토끼 화상석

옥토끼 떡방아 설화의 기원을 찾아 중국의 역사고도 서안(西安)으로 가보자. 당나라 수도로 장안(長安)이라 불렀고, 주변 국가에 수도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사용될 만큼 인구 100만 명의 거대도시였던 장안. 조선 시대 한양을 장안이라 부르거나 ‘장안의 지가(紙價·종이값)를 올린다’는 관용어가 나올 만큼 당대 지구촌 최대 규모 도읍이었다. 서안 비림(碑林)박물관은 후한(25~220년) 이후 중국의 다양한 비석은 물론 주요한 석조(石彫) 예술품을 전시 중이다. 한국 단체관광객도 자주 찾는 이곳에 흥미로운 석조유물이 기다린다.

후한 시대 방아 찧는 옥토끼 화상석(畵像石)이다. 무덤이나 사당의 돌벽, 혹은 돌기둥에 새긴 조각을 화상석이라 부른다. 후한과 삼국시대, 위나라 시기 널리 쓰였다. 왼쪽 기와지붕 아래 남녀 한 쌍이 앉았다. 중국 역사와 도교에서 최고의 신선으로 받드는 쿤룬(崑崙·곤륜)산 정상 하늘나라의 서왕모(西王母)와 그보다 후대에 등장한 동왕공(東王公, 혹은 東王父·남자 신선 관장)이다. 이 옆에 큼직한 토끼 한 마리가 커다란 절굿공이를 들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아 찧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졌다. 옥토끼 떡방아 설화가 적어도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옥토끼, 철 지난 중국 설화 아닌 우주대국 중국 상징, 한국은…

옥토끼는 한나라 시대 유행한 철 지난 설화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중국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무인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켰다. 우주선 이름은 창어(姮娥·항아)다. 항아는 중국 역사에서 초기 3황 5제 시절 5제의 요임금과 순임금에 앞선 세 번째 왕 제곡(帝곡)의 딸로 전한다. 서왕모 궁정에서 불사(不死)의 묘약을 훔쳐 먹고 달나라로 도망가 달의 신이 된 여인이다. 우주선이 내려놓은 달 탐사차량은 위투(玉兎·옥토, 달 속 옥토끼)다. 항아가 빼어난 미모의 달 여신이라면 옥토끼는 보름달 속에 사는 주민이다.

중국은 올해 미국과 러시아도 하지 못한 우주굴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달 뒷면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일이다. 이미 통신위성 췌차오(鵲橋·작교, 칠석날 까치와 까마귀가 놓는 다리 오작교)를 쏘아 준비를 마쳤다. 옥토끼 설화를 만들어낸 원조 나라 중국이 우주를 향해 나가는 동안 옥토끼 떡방아 설화를 공유했던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같은 시기 벌어진 4대강 사업이 떠오른다. 추석 송편을 먹으며 역사와 풍속, 과학과 미래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맞물려 돌아가는 것임을 새삼 되새겨 볼 일이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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