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정운현 상지대 교수(현 국무총리 비서실장)
주제 ① 망각과 기억

“여러분 을사오적 5명 이름 다 외웁니까? 대개 이완용 밖에 몰라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정운현 상지대 초빙교수(현 국무총리 비서실장)는 지난 9월 6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을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망각’을 신이 준 고귀한 선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광복 73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생각을 이어나갔다. 일본인이 우리 모든 것을 통제하고, 민족의 색깔마저도 지워버린 치욕의 역사, 일제시대.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한 주요 수단들은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정 교수는 이에 관해 “잊어서도 안 되고 잊혀져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정운현 교수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적절히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큰 문제겠지만,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 고하늘

올해로 친일 관련 공부를 한 지 딱 30년째라는 정 교수는 손꼽는 친일 연구 전문가로 통한다. <중앙일보> 조사부 기자로 시작해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거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꾸준히 자료를 수집했고, 관련 저서도 20여권을 집필해왔다. 이런 그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친일파는 을사오적 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친일에 관한 무지는) 누구의 흠이라기보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했다.

▲ 30년 동안 친일 연구에 매달려온 정운현 교수는 친일에 관한 무지가 교육이 부실한 탓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악질 친일파 44인에 관한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를 펴냈다. ⓒ 인터파크도서 홈페이지

일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임종국 시인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친일 연구를 시작한 정 교수는 국내 친일 연구 1.5세대로 볼 수 있다. 임종국 시인을 1세대로, 민족문화연구소나 학계 또는 재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을 2세대로 본다면, 정 교수는 그 사이에서 반민족특별행위(반민특위) 재판기록 17건을 10년 간 풀이해서 보고하는 등 자료의 소개와 수집 역할을 해왔다. 중국의 친일파 재판사(史)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창씨개명에 관한 책을 처음 풀이한 것도 정 교수다.

“올해로 광복 73주년입니다. 오래됐습니다. 사람 나이로 생각해봐도 일흔 셋이면 많은 것이 변화했을 시간입니다. 광복 73주년을 기념해서가 아니라 해방된 지 73년의 세월이 흐른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잊어버렸고, 무엇을 남겨두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청산해야 하는지 같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흔적마저 지워버린 조선총독부와 조선신궁

현재의 남산과 경복궁 자리는 일본이 우리 땅을 지배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 시설들이 들어섰던 상징적 공간이지만, 오늘날 이곳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왜 그렇게 산을 까고 나무를 베어내 그 땅을 훼손했는지, 경복궁에서 무엇을 헐어 버리고 그 땅에 어떻게 흥례문을 복원했는지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산에는 일제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한 조선신궁이 있었고, 경복궁 자리에는 우리 정치를 통제하기 위한 총독부 건물이 있었다는 팻말 하나 세우지 않는 우리의 자세를 꼬집은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최고 식민통치기구였던 조선총독부는 현재 흥례문 자리에 있었다. 1916년부터 무려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건물이다. 정 교수는 “일제는 아마 이 건물을 300년은 쓰려고 만들었을 것”이라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지 않았다면, 서울에 있던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토 이외 (일본의) 대륙 본부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방 후 일제 잔재의 상징인 이 건물을 헐어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1995년 광복 50주년 당일, 김영삼정부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렸다.

▲ 일제는 조선신궁을 건설하면서 조선의 민의가 담겼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정운현 교수의 표현대로 “악랄한 의도”가 깔린 건축물인 셈이다. ⓒ 정운현

또 하나 식민지배 상징인 조선신궁은 일제가 서울 남산 중턱에 세운 신사로 가장 높은 사격을 가졌다. 조선인이 조선 신이 아닌 일본 신을 참배하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 거듭나도록 강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신궁 하광장에서 상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제작 과정에는 더 악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정 교수는 “이 계단은 전국 13도에서 돈을 모아 만든 건데, 조선 전역의 민의가 여기 모여 조선신궁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방 후 조선신궁은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백범동상이 들어서 있다.

정 교수는 1941년부터 1996년까지 사용된 ‘국민학교’라는 명칭의 의미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의식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베어있는 일제 잔재 용어의 상징과도 같은 게 국민학교라는 것이다. 그는 “’국민’이라는 말이 인민이라는 용어에서 온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국민학교라는 말에서 쓰인 국민은 ‘황국신민’의 약자”라며 “결국 국민학교가 (일본) 황제한테 충량한 신민, 백성을 기르는 학교인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일본식 사고’

4시간 여 동안 이어진 강의 중에 정 교수는 단 한번도 ‘독립운동’과 ‘3.1운동’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독립투쟁’, ‘3.1혁명’이라고 했다. 이들 용어 저변에는 식민사관, 곧 일본식 사고가 짙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과 3.1운동이라는 표현이 제일 못마땅해요. 여러분 이게 무브먼트(movement)입니까? 금모으기운동이에요? 국채보상운동이에요? 문맹 퇴치 운동입니까?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친일 사관입니다. 최소한 ‘항쟁’이라는 표현으로라도 시급히 고쳐야 합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이 정운현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고하늘

그는 이 문제에 관해 4.19혁명과 견줘 비판하기도 했다. 4.19혁명 역시 역사적으로 의의가 큰 사건인 건 틀림없지만, 독립운동과 3.1운동이 이에 못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4.19혁명에 비해 규모, 영향력, 피해현황, 역사적인 의미 등에서 압도하는 사건들인데, 왜 4.19는 혁명이고 독립운동과 3.1운동은 운동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5.4혁명에 ‘혁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정 교수는 “3.1혁명은 국내외적으로 혁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임시정부나 역사 기록에서는 ‘3.1대혁명’이라고 썼다”고 힘줘 말했다. 정 교수는 이외에도 ‘을사조약’ ‘한일병합’ ‘의병토벌’ ‘징용’ ‘헤이그밀사’ 등의 용어도 전부 다 일본식 사고가 깔린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의 반은 여자, 반은 남자”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체 독립유공 포상자는 1만483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여성 독립유공 포상자는 2% 수준에 머물러 296명에 그쳤다. 우리는 그동안 여성 독립운동가를 전혀 돌보지 못했고, 파악하지도 못했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2년 전 <암살>이라는 영화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다루며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다”며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연구도 우리 후손들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 정운현 교수가 쓴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평생을 독립에 바쳐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삶과 행적을 복원한 책이다. ⓒ 정운현

“제가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강연을 두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조용필 노래 가사를 인용해 ‘독립운동가의 반은 여자, 독립운동가의 반은 남자’라는 내용을 꼭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한 명의 남자 독립운동가가 (독립운동에 관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 세력이 필요합니다. 이들 중에는 아내이자 여동생, 딸이자 어머니가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 훈련중인 여자 광복군 대원들. ⓒ 정운현

그러면서 정 교수는 강원 춘천 출신의 유일한 여성 의병대장이었던 윤희순 지사를 비롯해 안경신, 남자현, 정정화 등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했다. 그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유관순만 있는 게 아니다”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인식과 이해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운현 이상수 한홍구 정희준 박창식 김필동 장승구 이주헌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황진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