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
주제 ② 한국 미디어 생태계와 저널리즘의 복원

병이 있으면 병을 치료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다. 부정부패가 있으면 폭로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부정부패나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얼마나 이게 망가졌느냐’를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이걸 치료할 수 있다’고 얘기해야 세상이 비로소 바뀌기 시작한다.

문제 부각보다 해법을 이야기할 때

“솔루션 저널리즘은 세상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가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은 ‘솔루션 저널리즘 전도사’를 자처한다. 그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저널리즘 특강 2부 강의 주제를 ‘한국 미디어 생태계와 저널리즘의 복원’으로 잡았다. 국내 미디어업계를 진단하고 해법을 내놓았다. 나름대로 ‘솔루션’을 제시한 셈이다.

▲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은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솔루션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임형준

솔루션 저널리즘은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이 사장에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가 대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중의 담론을 위해서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라고 말했다’ 같은 ‘따옴표 저널리즘’식의 문제만 드러내는 보도가 아닌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보도를 말한다. 미국의 비영리 미디어 연구기관인 포인터 인스티튜트는 “단순히 따옴표 저널리즘(he said, she said coverage)을 넘어서는 솔루션 기반의 저널리즘이 좀 더 건설적인 담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문제’라고 말하는 게 왜 문제일까? 이는 이 사장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부정적인 뉴스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정파적이고 확성기를 틀어놓듯이 한 얘기를 계속할 뿐, 대안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기사가 부족하다. ‘이것이 문제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이것이 해법이다’라고 보도하기는 어렵다. 지난 5월 3일 경북 구미 한 원룸에서 20대 아버지와 두 살배기 아들이 숨진 채로 발견됐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는 언론은 없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그동안 문제 해결 과정을 가볍게 여긴 데서 출발한다. 이 사장은 언론의 보도 방식이 사회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덴마크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캐서린 질덴스테드의 말을 인용하며 언론을 질타했다.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내는 것은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것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언론은 늘 돌을 던지고 나서 다른 데 또 돌을 던지러 떠납니다.”

기자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사건·사고를 처리하기 바쁘다. 부정적인 편견을 쏟아내는 언론의 관행이 유리창이 깨진 집을 계속 늘리고 있다. 언론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이 사장은 “언론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질 근거를 만들고,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심어주자”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뉴스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내일이 되면 의미가 없어지는데 언론의 역할을 거기에 머무르는 것으로 끝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국형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미디어 생태계 바꾸자”

그렇다면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고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닐까?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판별하는 10가지 질문항목을 내놨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사회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가?’ ‘문제에 대한 관련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가?’ ‘문제 해결과 해결책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파고드는가?’

▲ 문제만을 부각하는 저널리즘보다는 해법을 제시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필요한 때다. ⓒ MediaX

솔루션 저널리즘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 80여 곳은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를 꾸렸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고질적인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노숙자의 많고 적음을 보도하기보다는 노숙자가 된 근본 이유를 오랫동안 파헤쳤다. 아홉 달 동안의 실험은 노숙자 보호소 설립계획 마련으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내 다른 지역으로도 퍼졌다. 샌디에이고에 ‘샌디에이고 홈리스 어웨어니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홈리스 프로젝트를 솔루션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았다.

국내 언론사도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활용했다. 부산의 <국제신문>은 고령 인구가 많은 부산의 노인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심층 보도를 했다. 기자들은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에 월 17만 원짜리 셋방을 구해 7개월간 머물며 마을주민들과 함께 지냈다. 이들은 동네 어른들의 자활 의지를 북돋고, 생의 마지막을 활력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대안가족’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개금동 어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반찬을 팔고 있고, 부산시와 시의회는 올해 ‘대안가족 사업’을 시범사업으로 정해 예산 투입을 확정했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독자 참여로 이어진다. 몇몇 언론사가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도입했더니 실제로 독자 참여도가 높아졌다. 독자들은 계속해서 언론을 떠나고, 언론에 대한 신뢰마저 낮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허핑턴포스트>는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도입해서 해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독자 참여도가 높아지고 댓글도 매우 많아졌다. 댓글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횟수도 이전보다 3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실행하더라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철저하게 데이터와 근거로 입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솔루션을 과장하거나 적용할 수 있지 않은 솔루션인데 띄워주고 끝나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 언론이 솔루션 저널리즘 기법을 활용한 보도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 MediaX

솔루션 저널리즘이 문제 해결을 100% 보장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 그래서 간과하기 쉽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에 필요하다. 울릭 하게룹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 창업자가 말했듯, 저널리즘은 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언론사들이 연대해 이런 실험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신문광고는 효과보다는 보험의 수단

한국에서는 뉴스를 볼 때 언론사를 직접 방문하는 일이 드물다. 언론사 누리집에 직접 방문하는 비율은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50%가 넘어간다. 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의존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신문광고는 광고효과보다는 보험이고, 거래 수단일 뿐이라고 이 사장은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지면 광고보다 협찬이나 후원 명목으로 음성적으로 광고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장은 후원과 협찬이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은 얼굴 없는 기부 천사인가’라는 말이 몇 해 전에 <한겨레 노보>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삼성이 광고를 내지 않고 광고료를 입금해준다는 것입니다. 협찬이나 후원의 비중이 70%까지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언론사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삼성은 언론사의 최대 광고주다. 삼성이 광고를 줄이면 언론사들 살림이 어려워진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장은 직접 삼성의 광고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2007~2008년 2년 동안 7개 신문사 광고를 전수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2007년에는 270건이나 광고를 낸 곳이 귀뚜라미 보일러였습니다. 2등이 SK텔레콤이었고요. 그런데 2008년이 되면 확 바뀝니다. 2008년에 1등은 440건이나 광고를 낸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2008년에 왜 광고를 많이 냈을까요? 2007년에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재판받는 동안 광고를 끊어버렸지만, 재판이 끝나자마자 광고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 삼성전자의 광고집행 건수. 삼성은 이건희 회장 재판이 끝나고 광고를 풀기 시작했다. ⓒ 이정환닷컴

그는 삼성의 광고 중단으로 신문사들의 어려운 상황을 <경향신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때 <경향>이 종잇값을 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일 시점에는 구독이 늘었습니다. 당시 신문 구독료가 1만2천원이었는데, 구독이 늘수록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신문 구독료는 종잇값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고, <경향>은 삼성이 광고를 끊어서 적자가 심했습니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삼성의 언론사별 광고비 집행규모. 재벌이 광고를 줄이면 역설적으로 언론사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 ⓒ 이정환닷컴

기형적인 수익모델, 그래도 끊지 못한다

과거 종이신문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비판기사를 초판에 실어놓고 광고를 받고 빼주는 게 관행적인 영업 기법이었다. 그 당시는 종이신문이 가진 영향력이 커서 가능했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언론사 수익모델은 기형적으로 변했다. 온라인에서는 조회수를 수익평가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한국 신문은 온·오프라인 수익모델이 모두 망가져 있다고 평가했다.

“온라인 뉴스는 클릭 한번에 1원 정도를 벌 수 있습니다. 기사가 실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광고들을 모두 합치면 10원에서 20원 정도 돈이 나옵니다. 보통 트래픽이 10만 건 정도면 언론사들은 100만원의 수익을 올립니다. 그러니 좋은 기사보다 아이돌 그룹 기사를 쓰는 게 돈을 더 벌죠. 이 마약을 끊지 못합니다. 왜냐면 당장 돈이 되고, 이게 아니면 언론사들이 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수익모델이 망가져 있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는 2016년부터 구독료가 광고료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한국은 <네이버>에서 무료로 뉴스를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처럼 온라인에서도 구독료로 먹고살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없다. 이러한 외국 사례로 미루어 한국 언론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래서 “<네이버>가 뉴스를 버려야 언론이 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사장은 잘못된 수익구조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는 뉴스가 파편화하면서 맥락을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기사가 있으면, 관련된 기사나 다른 측면의 기사 등을 붙여서 독자들이 체계적으로 읽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언론의 논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체계를 다시 구성하면 좋지만, 인터넷에서는 뉴스를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좋은 뉴스가 읽힐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네이버 뉴스에 따라 한국 뉴스가 요동친다

이 사장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네이버> 점유율이 뉴스 이용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치는 점을 지적하면서 <네이버> 메인에 어떤 기사가 걸리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여론이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MediaX 자료에 따르면 검색 점유율은 <네이버>가 76.3%로 1위다. <다음>이 16.0%로 2위, <구글>이 7.7%로 3위다. <네이버>는 2, 3위 점유율을 합친 것보다도 3배 이상 높다. 뉴스 점유율은 <네이버>가 55.4%로 1위, <다음>이 22.4%로 2위다. 다음으로 <네이트>가 7.4%로 3위, <조선> <동아> <중앙>이 각각 2.1%, 1.4%, 0.8%이고, 기타 131개 뉴스 사이트가 10.5%를 차지한다.

▲ 검색 점유율(왼쪽)와 뉴스이용 점유율(오른쪽). 검색과 뉴스이용 점유율 모두 <네이버>가 압도적이다. ⓒ MediaX

<네이버> 뉴스 이용 점유율은 <다음> <네이트> <조선> <중앙> <동아>와 기타 131개 사이트를 합친 것보다 높다. 이 사장은 “네이버에 어떤 기사가 메인에 걸려있는가에 따라서 1천만뷰가 넘는 것도 있을 것”이라며 “어떤 기사를 1천만뷰씩 국민들이 읽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이버가) 작정하고 기사를 내보내면 여론을 바꾸는 힘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알고리즘으로 간다면 공정한 기사 배열이 필요하고 아웃링크와 별개로 결국 알고리즘 방식으로 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알고리즘으로 간다면 최소한의 알고리즘 철학을 공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사장은 끝으로 ‘포털 공룡’ <네이버>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이 사장의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 임형준

“<네이버> 문제는 한국 여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네이버>를 감시하고 싸우는 것,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에서 여론 왜곡과 파편화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한승동 김영미 오연호 강정수 이정환 최경영 박인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홍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