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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벨, 무인택배함을 사는 여자들
[기획] 주거불안 여성 1인가구, 안전용품 수요 급증
2018년 11월 04일 (일) 10:56:13 박경난 PD,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서울 창천동의 4층짜리 원룸 건물에 사는 김은정(42·회사원)씨는 2년째 이웃에서 들리는 ‘쿵쿵쿵’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옆집 남자의 소행인 걸 알았지만 한 번도 시끄럽다고 항의하지 못했다. 시비라도 붙었다가 해코지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난 4월 18일에는 아침 출근하러 나서다 문 앞에 하얀 인쇄용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침마다 시끄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자신을 소음의 진원으로 지목하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퇴근길에 누군가 주먹이라도 쥐고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 김씨는 자신이 아니라는 내용의 포스트잇 메모를 아래층 복도에 붙였다. 다음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메모와 과자가 문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김씨는 상대 역시 ‘얼굴 보고 항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이 아닐까 짐작했다.

‘옆집 남자’가 해코지 할까 두려운 마음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정가은(27‧가명·대구시 북구 산격동)씨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12자리로 길게 설정했다. 원룸촌이다 보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다른 집 창문에서 누군가 비밀번호 누르는 걸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 집을 구할 때 무엇보다 편의점이 가까이 있는지 확인했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도망갈 곳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가까운 동네에서 범죄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는 현관문 안에 추가로 안전고리를 달려고 했는데 주인이 ‘문이 약해 안 된다’고 해 원망스러웠다. 정씨가 전에 살던 원룸건물에서는 누군가 혼자 사는 여성의 집 문에 콘돔을 붙여놔 관리인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일도 있다. 정씨는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한동안 조그만 소리에도 잠이 깰 만큼 걱정이 커진다”고 말했다.

   
▲ 원룸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경기도 수원시 영화동 한 골목길.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많다 보니 주거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 박경난

박미람(32·가명·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경북 경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회사에 다닐 때 치킨배달원이 문을 열자마자 “xx같은 x”라고 욕설을 해, 순간 얼어붙은 일이 있다. 알고 보니 배달원은 통화 중이었다. 박씨는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실제로 이상한 배달원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움에 혼자 있을 때는 가급적 배달을 시키지 않게 됐다.

이혜영(33·가명·회사원)씨는 결혼 전 경북 경산시의 다세대주택에 혼자 살 때 놀랐던 일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새벽에 50대쯤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 치더니 이씨 집 현관문 잠금장치를 열려고 했다. 술에 취해 집을 착각한 듯, 남자는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한참 동안 계속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나중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씨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숨죽인 채 떨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2017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8.6%로 가장 지배적인 가구형태가 된 가운데 주거안전에 불안을 느끼는 여성 1인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학생, 직장인 등 젊은 여성들이 범죄피해에 대한 불안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관련 안전용품과 서비스 시장도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 우리나라의 가구형태별 구성비. 외국인가구를 제외한 일반가구 중 1인가구가 28.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6년에 비해 1인가구는 0.7%포인트, 2인가구는 0.6%포인트 늘었고 3인 이상 가구는 줄었다. ⓒ 박경난

여성 1인가구 주거침입 피해 가능성 남성의 11배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7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여성 282만명, 남성 279만명으로 여성이 3만 가구 정도 더 많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논문집에 실린 강지현 울산대 교수의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3세 이하 여성 1인가구는 남성보다 주거침입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약 11배, 범죄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약 2.3배 높다. 2016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조사한 ‘서울 여성 1인가구 실태’를 보면 서울시 청년여성 1인가구 중 36.3%는 주거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89.8%는 남성 1인가구보다 범죄에 더 노출되어 있다고 인식했다.

이처럼 혼자 사는 여성이 주거안전에 불안을 느끼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보안서비스, 방범장치 등의 출시와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홈보안서비스의 경우 지난해 11월 에이디티(ADT)캡스가 1인가구를 겨냥한 ‘아이오티(IoT)캡스’를, 에스원이 지난해 3월 ‘세콤이지’를 내놓았다. 이에 앞서 케이티(KT)텔레캅은 ‘홈가드’를 2013년에 선보였다. 이들 서비스는 폐쇄회로(CC)TV에 센서를 연결해 침입자 감지 및 대응을 하는 것으로, 기존 방범시스템과는 차별되는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한다.

ADT캡스 최용일 보안기술연구소장은 “공동주택이 중심인 우리나라 주거환경을 고려했고 월 2~3만원대로 가격 부담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매출은 회사마다 밝히길 꺼렸지만 에스원 관계자는 “5년 전보다 1인가구 보안서비스 가입자가 16.2%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1인가구 서비스는 젊은 여성고객들 문의가 많다”고 덧붙였다.

‘몰카’ 막는 장치 등 방범상품 온라인몰에 6만4천건

온라인몰에서는 누군가 빈 집에 들어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것을 막는 장치 등 방범상품이 다양하게 팔리고 있다. ‘에스케이티(SKT) 스마트홈 문열림 센서’는 침입자가 문을 열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인에게 문자를 전송하거나 사이렌을 울린다. 지난해 출시된 이 제품은 최근 몰카 문제가 부각되면서 판매처가 크게 늘었다. <네이버> 포털에서 해당 제품을 검색하면 34개 판매처 중 26곳이 올해 등록된 것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창문이 일정 너비 이상 열리지 않도록 창틀에 고정하는 잠금장치, 외부에서 창문을 억지로 열면 벨이 울리는 윈도우벨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침입하려 할 때 경고음이 울리는 윈도우벨. 잠금 기능도 있어서 일정 범위 이상 창문이 열리지 않게 한다. ⓒ 도어캡

고시원이나 기숙사 등은 관리자나 임대인이 ‘마스터키’ 등으로 방문 열쇠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입주자가 방에 있을 때 관리인 등이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올 수 없도록 설치하는  ‘포터블 도어락’도 여러 제품이 팔리고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이 집에 있을 때 가장 긴장하는 순간 중 하나는 택배를 받을 때다. 택배를 가장한 강절도 등의 사건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을 열지 않고 택배를 받을 수 있도록 무인택배함을 설치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또 건전지를 넣으면 불이 깜빡여 녹화중인 것처럼 보이는 가짜 CCTV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네이버>에 ‘방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6만4천여 건(동일제품 다른 판매처 포함)의 관련 상품이 뜬다. 대부분 설치하기 쉽고 싼 제품들이다.

   
▲ 관리인, 집주인 등 마스터키를 가진 사람이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도록 문 안쪽에 설치할 수 있는 휴대용 잠금장치 ‘포터블 도어락’. ⓒ 라이트북 코리아, 텐바이텐
   
▲ 현관문 바깥에 설치할 수 있는 무인택배함. 입구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택배기사가 배달물품을 넣은 후 잠그고 가면 나중에 주인이 비밀번호를 눌러 물건을 꺼낼 수 있다. ⓒ 아빠는가구장이 홈페이지

저소득 여성은 적은 안전비용도 큰 부담 

정부와 지자체, 경찰도 여성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경찰청의 경우 KT텔레캅과 업무협약을 맺고 2013년부터 전국 모든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홈시큐리티 시스템을 월 9,900원에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경찰청 자료를 보면 이 서비스는 2016~2018년에 매년 가입신청 건수가 100건을 넘지 못했다. 가입자격을 전·월세 임차보증금 등을 기준으로 제한했고, 홍보가 부족했으며 월 1만원도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강 의원은 지적했다.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 김선균 경장은 “가입을 했다가도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인가구 살림법>이란 책을 통해 혼자 사는 여성이 알아야 할 사생활보호 및 보안요령을 소개한 공아연(35·트위터명 ‘세송’) 작가는 “여성이기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여성들이 보안서비스나 안전용품에 개인적으로 돈을 써야 할 만큼 범죄피해 우려가 큰 현실을 비판한 뒤 “누구라도 안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충북 제천시 모산동 한 원룸건물 출입구에 전자출입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여성 입주자들에게는 이런 안전장치가 집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된다. ⓒ 장은미

전문가들은 여성 1인 가구의 주거안전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노경혜(40) 연구위원은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만 홈방범 서비스, 안심귀가서비스, 밤길에 긴급대피 가능한 상업시설을 지정하는 '여성 안심지키미' 등이 시행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의 순찰 확대와 표지판, 가로등, 비상벨 설치만으로도 효과적인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창일 의원실의 하소라 비서관은 ‘2014~2017년 주거침입 관련 범죄가 총 7만 1868건’이라는 경찰청 분석을 소개하며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 통계는 따로 산출하지 않지만 성범죄 등 강력범죄에 여성 1인가구가 더 취약한 만큼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청률이 저조한 경찰 홈방범 시스템의 자격제한을 완화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 각 지자체가 경찰 순찰 확대와 CCTV 확충 등에 더 노력할 것 등을 요구했다.


편집 : 이민호 기자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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