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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이 도떼기시장 되지 않도록”
[단비인터뷰]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 박헌준 회장
2018년 10월 05일 (금) 21:40:10 김서윤 기자 onion219@hanmail.net

“친한 친구의 모친상에 조문을 하러 갔는데,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유가족이 장례를 진행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어요. 찬송가와 목탁 소리가 뒤섞여 도떼기시장 같았죠. 또 술과 화투가 빠지지 않으니 거친 욕설이 오가기도 했고요. 우리 인륜지대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제일 음지에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그날따라 유독 컸습니다. 마지막 길이 경건하고 멋지고 아름다울 수 없을까, 장례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더군요.”

지난 2002년 창사 후 상조업 최초의 홈쇼핑 진출 등 파격적 마케팅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선 프리드라이프(현대종합상조)의 박헌준(66) 회장이 털어놓는 창업 동기다. 충북 제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도 포기해야 했던 그가 ‘세일즈맨의 신화’에 이어 ‘장례문화 혁신의 선구자’가 되기까지의 역정을 지난 5월 28일 서울 여의도 동화빌딩의 회장실에서 들었다. 이어 지난 3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관현악단의 연주가 어우러지는 장례식

   
▲ 서울 여의도 동화빌딩의 프리드라이프 집무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박헌준 회장. ⓒ 김서윤

우리나라에 처음 상조 서비스를 들여온 회사는 부산상조로 1982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에 이르러서도 대부분의 장례식장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였다. 경황없이 큰일을 치르게 된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의 바가지 등 횡포에 시달렸다. 프리드라이프가 현대종합상조라는 이름으로 개업할 당시에도 아직 상조업을 규율할 법규가 없었고, 영세 상조회사들의 난립으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박 회장은 이런 여건에서 ‘고객 최우선주의’를 내세워 장례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정비를 위해 뛰었다고 말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어두컴컴한 지하 대신 환한 빛과 상쾌한 바람이 드나드는 지상의 식장에서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음악을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가운데 마지막 길을 보내드릴 만큼 아름답고 경건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박 회장이 또 하나 자부심을 느끼는 일은 이 분야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업사원에게 일정 기간 분할지급하는 수수료를 퇴직 후에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영업사원 중에는 입사 초기에 친인척들을 상조에 가입시킨 뒤 중간에 실적이 좋지 않으면 스스로 퇴사하는 바람에 예정된 수수료를 못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중도퇴사자에게도 끝까지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한 프리드라이프의 방침은 동종 업계의 반발을 샀지만 이 회사 퇴직자들은 지금도 홍보요원을 자처할 만큼 고마워한다.

   
▲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쉴낙원 김포장례식장'. ⓒ 프리드라이프

업계 후발주자에서 부동의 1위로

프리드라이프는 후발주자였지만 창업 8년만인 2010년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2017년 기준 7년 연속으로 상조업계 자산총액 1위, 선수금 규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상조업체는 2010년 당시 전국적으로 337개나 난립해 소비자 피해도 많이 발생했는데, 2017년 9월 현재 168개로 줄었다. 박 회장은 많은 동종 기업들이 도산하는 가운데서도 남다른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을 ‘혁신과 도전’으로 압축했다.

“우리의 첫 도전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상품 설계였습니다. 당시 판매되던 상조상품들이 대부분 3년에서 5년 납부로 월 납부금이 비쌌어요. 우리는 고객 대부분이 서민이라는 점을 고려, 기간을 10년으로 늘리고 월납입금 부담을 낮췄죠. 그리고 사망신고부터 장지까지 종합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그다음 도전은 홈쇼핑이었다. 처음 홈쇼핑 방송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상조회사 상품을 홈쇼핑에서 팔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간신히 방송 기회를 얻었다. 놀랍게도 첫 방송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어렵게 섭외한 탤런트 노주현(76)씨와 박 회장이 함께 방송에 출연, “더 이상 이웃끼리 상부상조로 해결할 수 없게 된 장례를 믿을 수 있는 전문회사에 맡기라”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박 회장은 “슬픔을 이용해 장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교복 입은 친구를 똥지게 진 채 만났을 때

어린 시절 그는 중학교에 합격했는데도 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병든 아버지와 육 남매를 어머니 혼자 먹여 살리는 집이니 투정도 할 수 없었다.

“똥지게를 짊어지고 밭으로 나갈 때마다 교복을 입은 친구들과 마주쳤으니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만 같았죠.”

공부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박 회장은 누에고치를 판 돈을 몰래 갖고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열네 살 때였다. 완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서울에서 전봇대에 붙어있는 ‘신문배달원 숙식 제공’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 부스로 찾아온 남자를 따라가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그곳이 동대문구 답십리동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 구두닦이, ‘아이스께끼’와 찹쌀떡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졸업 후 울산 현대중공업에 취직했는데 자신에게 맞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여의 직장 생활을 접고 울산 해수욕장에서 포장마차를 열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실패였고, 6개월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실의에 차 있던 어느 날, 버스에서 운명처럼 ‘사부님’을 만났다. 어떤 남자가 승객을 상대로 악어가죽 지갑을 파는데, 어찌나 당당하고 말솜씨가 현란하던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그는 며칠을 따라다니며 제자로 삼아달라고 졸랐고, 결국 ‘사부님’의 도움을 받아 외판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책과 전자제품 등을 닥치는 대로 팔던 그에게 현대화재해상보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1996년부터 보험영업에 뛰어든 그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설계사에게 주는 연도대상을 3번이나 받았다. 그는 ‘철저한 시장분석을 통해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것,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파악하고 한발 먼저 다가가는 것’을 성공적인 영업의 비결로 꼽았다. 그는 “보험영업의 경험이 상조업체를 창업한 후 소비자 요구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충해 나가는 데 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어려웠던 시절을 늘 기억한다는 박 회장은 사업이 궤도에 안착한 2010년부터 이주민을 지원하는 단체인 (사)지구촌사랑나눔과 협약을 맺고 국내 무연고 외국인 근로자들의 장례서비스를 무료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40명 넘는 직원들이 7개월간 팽목항 현장에 머물면서 자원봉사로 시신 수습 등 현장지원을 했다. 2009년부터 ‘프리드 장학생’ 제도를 통해 학비를 지원하는 등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프리드라이프는 축적된 장례의전 노하우를 인정받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향소 준비 등을 맡기도 했다.

   
▲ 지난 2009년 8월 23일 거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앞서 프리드라이프가 준비한 분향소. ⓒ 프리드라이프

‘쉴낙원’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희망

프리드라이프는 ‘쉴낙원’이라는 이름의 복합 장례문화 공간을 서울 금천구와 경기도 김포 등 전국 4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진정한 휴식을 의미하는 '쉼(休)'과 아름답고 영원한 안식처를 뜻하는 '낙원(paradise)'을 조합한 쉴낙원은 '아름다운 이별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외관과 품격있는 실내장식 덕에 최근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소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장례 전문 기업 ‘소모타’나 미국의 장묘회사 ‘에스씨아이(SCI)’처럼 각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쉴낙원을 국내에서 100곳 이상 운영하고 장차 세계 곳곳에도 2000여 개를 세우고 싶다는 구상을 덧붙였다.


편집 : 황진우 기자

[김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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