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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 탈원전 왜곡보도 너무 심해”
[단비인터뷰] ‘탈핵지지’ 광고기획자 이원영 교수
2018년 09월 17일 (월) 21:11:28 박지영 기자 bing831@naver.com

“경주 5.8, 포항 5.4 지진을 잊었나요?”

지난 8월 14일자 <한겨레> 1면 하단에는 이런 제목의 의견광고가 실렸다. 2016년 경주지진과 2017년 포항지진이 발생한 위치와 고리·월성 등 인근 원전의 분포를 지도에 표시한 이 광고에는 33명의 ‘광고주’ 이름이 나란히 실렸다. 농부, 화가, 교사, 언론인, 변호사, 종교인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한 것이다.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 3.1절까지 모두 333번의 광고를 싣는다는 목표로 ‘탈원전 333 릴레이 의견광고 33인’을 기획한 이원영(61) 수원대 건축도시부동산학부 교수를 지난 10일 경기도 화성시 수원대 제1공학관 연구실에서 만났다.

내년 3.1절까지 33인의 의견광고 333회 계획  

   
▲ 시민 33명의 ‘탈핵지지’ 의견광고가 실린 8월 14일자 <한겨레> 1면을 든 이원영 교수. 이 교수는 “처음엔 반응이 소극적이었지만 의견광고가 한 번 나가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박지영

“대통령이 탈원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변화가 없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됐고요. 탈원전 운동을 살려내기 위한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원전감시기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재 원안위는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고 위원장은 차관급이다. 또 정부의 탈원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제도나 법률 개편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다른 에너지원보다 원자력에 많은 특혜를 주는 원자력진흥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원자력 관련 연구예산과 인력 등도 탈원전 기조에 걸맞게 조정되지 않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종훈(54·민중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5년부터 오는 2019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R&D) 예산은 4202억원으로, 원자력(1조1791억원)의 절반도 안 된다. 2017년 결산을 보면 원자력연구원 연구운영비는 1460억원인데 반해 신재생에너지를 다루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운영비는 809억원에 그쳤다.

이 교수는 이런 현실을 알리고 ‘위험한 원전에서 안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종이신문과 온라인 매체에 의견광고를 싣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지금까지 7차례 광고가 나갔다. 한 회에 시민 33명이 각 3만원씩 후원해 광고비 99만원을 내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참여했거나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은 300여명이다.

   
▲ 지난 4일자 <경향신문> 14면에 실린 탈핵지지 의견광고. 국내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던 지역과 단층의 분포, 가동 중인 원전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대형사고의 위험을 경고했다. Ⓒ 생명탈핵실크로드, 경향신문

‘탈핵이 경제위기 원인’이라는 신문들

“탈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엄청나게 흔들어대니까 사람들은 여론이 진짜 그런 줄 알거든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 교수는 정부의 탈핵 정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유력 보수언론들의 ‘탈원전 흔들기’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지난 8월 14일자 ‘탈원전 1년의 악몽...우량기업 한전이 적자 늪에 빠졌다’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1년 동안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전력의 영업실적이 6년 만에 최악이 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이는 과거보다 엄격해진 안전점검으로 원전의 가동률이 낮아진 것을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린 왜곡 보도다. 중앙일보는 지난 8월 20일자 ‘최저임금·탈원전의 일자리 죽이기’라는 사설에서 “탈원전 우상화로 일자리 정권에서 일자리의 씨가 마르고 있다”며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까지 주장했다.

이 교수는 “시민의 이름으로 탈핵 지지 광고 릴레이를 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탈원전 정책 비판 공세에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정부와 국회, 나아가 사회 전반에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민들의 의견광고가 실린 신문들을 펼치며 취지를 설명하는 이원영 교수. 참여한 시민들은 광고가 실린 지면을 오려 보관하는 등 자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 박지영

후쿠시마 참사 후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결성

국토계획을 전공한 학자로서 평소 ‘원전은 국토의 위험시설’이라고 생각해 온 이 교수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후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그는 그해 6월 독일에 가서 탈핵 현장을 답사한 뒤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설립을 주도했다. 2011년 11월 결성된 탈핵에너지교수모임에는 현재 전국의 교수 1052명이 가입, 탈핵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저술과 강연 등에 나서고 있다. 이 교수는 이 모임의 공동집행위원장과 총무를 거쳐 지금은 생명·탈핵 실크로드 순례단을 이끌고 있다.

이 교수는 탈핵 운동을 하며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느낀 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저널리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원전을 짓는 대기업 자본 세력과 결탁해서 원전에 대해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전의 건설과 운영, 연구개발 사업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대기업들이 언론사의 광고주로서 관련 기사의 논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요 보수언론은 원전 문제에 대해 사실을 거의 왜곡하다시피 보도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지진의 위치나 우리나라의 단층 지대, 원전안전 취약시스템처럼 국민의 생명에 직결된 중요한 문제들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태양광으로 에너지 전환을 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일부 부작용을 대단히 큰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해서 현실을 호도하죠.”

그는 재생에너지를 추진하는 우리나라의 행정체계가 독일 등 선진국보다 뒤떨어졌기 때문에 태양광, 풍력 등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이고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데, 보수언론들은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인 양 과장함으로써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 국토계획을 전공한 이원영 교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본 후 원전이 밀집한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 국토가 결딴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박지영

입법 활동 손 놓은 국회, ‘직무유기’ 각성해야 

이 교수는 국회의 ‘직무 유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은 일종의 ‘제도개혁’이므로 입법적 뒷받침이 필요한데 이를 책임지는 국회가 사실상 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시급히 도입돼야 할 제도로 ‘교차 감시’를 꼽았다. 건설부터 안전관리까지 원전에 관한 모든 일을 행정부가 맡는 현 시스템에서는 원전 안전성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전이 많은 프랑스는 의회 내에 감시조직(OPECST)이 있고 그 조직이 정부의 안전감시기관(ASN)도 감시합니다. 막강한 감시체제를 가지고 있죠. 미국과 독일 또한 마찬가집니다. 특히 독일은 지방 정부의 강력한 권한을 바탕으로 원전의 건설부터 안전까지 모든 업무가 교차 감시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원전 관련 비리나 사고가 유럽이나 미국에선 일어날 수가 없는 거죠. 우린 지금 그런 체제 자체가 없습니다.”

이 교수는 입법기능을 보좌하기 위해 입법조사처가 있듯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감시할 수 있는 ‘원전감시국’을 국회 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진희(54)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장 등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원자력과 다른 에너지원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에너지법의 제정, 안전 관련 예산과 인력의 확충, 탈원전에 부합하는 연구기관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탈원전 333 릴레이 의견광고’는 이 교수의 이메일(leewysu@gmail.com)이나 문자 등으로 참여희망자가 이름·직업 등을 접수한 뒤, 광고가 나가면 해당 언론사 계좌로 3만원을 직접 송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편집 : 박진홍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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