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반려동물 장례업체 ‘21그램’ 이윤호 이사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들에게 ‘무지개다리’는 무척 슬픈 단어다. 작자를 알 수 없는 시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표현한 후 이 말이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물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언젠가 천국의 문 앞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고이고이 보내고 싶어 한다. ‘21그램’은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국내 최초의 반려동물 장례업체다. 이 회사를 공동 창업한 이윤호(37) 이사를 지난 5월 10일 서울 송파동의 21그램 사무실에서 만났다.

‘펫로스’ 슬픔 덜어주는 국내 최초의 전문업체

▲ 서울 송파동 ‘21그램’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이윤호 이사는 키우던 치와와를 잃은 후 반려동물 장례업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 장은미

“21그램은 (미국 의사 맥두걸의 연구에서 나온) ‘영혼의 무게’라는 뜻인데요, 인간과 차별 없는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에서 회사이름으로 썼습니다.”

지난 2014년 이 회사가 반려동물 장례 플랫폼을 열었을 때는 유골함 판매 등 부분적인 서비스만 제공했다. 그러다 약 2년 전 장례의 전 과정을 사업화하게 된 데는 이 이사 자신의 ‘펫로스(petloss)’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15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치와와를 떠나보내고 큰 상실감과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치와와처럼 실내에서 키우는 견종은 슬개골(무릎뼈)이 선천적으로 약한 편인데,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이 막 커지고 있을 무렵이라 바빠 제대로 돌봐줄 수가 없었다. 장례서비스도 전 과정을 사업화하기 전이라 무지개다리 건너는 길을 마음만큼 준비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반려동물과의 이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돌보던 동물이 죽으면 사람들은 복합적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보고 싶은 마음,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해서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죄스러운 마음,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후회 등 만감이 교차하는 거죠.”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우울감과 상실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뭐 그리 요란을 떠나’ 하는 시선까지 받게 돼 더욱 힘들다. 21그램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 중에도 ‘동물 장례식을 치르는 게 유난스러워 보이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사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말티즈

이런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며 정성스럽게 마지막 이별을 도와주는 임직원은 권신구(35) 대표 등 모두 7명. 하지만 ‘바닐라’라는 이름을 가진 말티즈종 개 한 마리도 당당히 ‘사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려견을 데리고 출퇴근하는 것이 입사 조건이었던 직원을 위해 추가로 ‘일자리’를 준 것이다. 회사 홈페이지의 직원 소개란에는 ‘바닐라 사원’의 얼굴도 나와 있다. 직무는 ‘남들 일할 때 간식 먹기, 택배아저씨 오면 짖기’다.

▲ 21그램 홈페이지의 직원소개란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바닐라 사원. ⓒ 21그램 홈페이지

다른 직원들도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야간 상담을 하다 전화기를 붙잡고 함께 우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 10년간 함께 살았던 고양이를 한국으로 데려온 지 두 달 만에 잃고 어찌할 바 모르던 고객, 반려견을 보낸 후 49일 동안 매일 납골당을 찾았던 고객 등을 직원들은 진심으로 위로하며 함께 아파했다고 한다.

▲ 이윤호 이사가 21그램이 취급하는 장례용품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장은미

어둡고 음침했던 장례식장을 밝고 따뜻하게

21그램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홈페이지에서 장례일정과 장례식장을 선택한다. 전국 반려동물 화장장 겸 장례식장 27곳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다. 필요한 경우 차량동행 서비스도 제공한다.

장례는 알코올로 동물의 사체를 닦고 의복을 입히는 과정인 ‘염습’과 관에 넣는 ‘입관’, 그리고 간단한 추모예식의 순서로 진행된다. 사람의 장례와 비슷하지만 약식이다. 이어 화장을 하고 봉안(납골)과 추모보석(반려동물의 유골을 자갈형태로 만드는 것) 등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

이 이사는 “국내 최초의 서비스라 선례가 없다보니 어떻게 예약을 받고 이윤은 어떻게 내야 하는지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주 막혔다”고 초창기를 회고했다. 현재 반려동물 장례비용은 사체의 무게와 서비스 옵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30만원 정도다.

이 이사는 원래 건축학과를 나와 권신구 대표와 건축사무소 동업자로 일했다. 2014년 21그램을 공동 창업한 후에도 건축일을 계속하던 두 사람은 2015년 경기도 광주의 펫포레스트 장례식장 건설을 맡았다가 장례사업 확충을 결심하게 됐다.

“동물 장례식장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기존의 장례식장들을 둘러봤는데 하나 같이 어둡고 음침한 모습이어서 충격이었죠. 이런 곳에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펐어요. 소중한 ‘아이’를 보내는 장례시설이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펫포레스트는 깔끔한 카페처럼 밝고 화사하게 지었다. 그리고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연구개발(R&D) 지원사업으로 2억원을 받는 등 자금을 확충해 반려동물장례업을 본격화했다. 지난 6월에는 창업투자회사인 비에이(BA)파트너스로부터 3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 경기도 광주의 반려동물 장례식장 펫포레스트 내부 모습. 일반적인 동물장례식장과 달리 카페처럼 밝고 화사한 분위기다. ⓒ 펫포레스트 홈페이지

동물 입양 전 책임감 있는 결정 필요 

21그램과 같은 동물장례업이 활성화한 것은 2017년 폐기물관리법과 동물보호법이 일부 개정된 덕분이다. 과거에는 동물의 사체를 폐기물로 분류해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도록 했다. 반려인구가 늘면서 이런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커지자 법이 개정됐고 동물사체를 ‘동물장묘업’으로 등록된 시설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 이사는 여기서 나아가 ‘동물등록제’가 제대로 시행돼야 우리나라의 동물복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려동물등록제는 유기동물을 막기 위해 3개월 이상의 개를 전국 시군구청에 등록하는 제도로,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수수료를 일부 내고 내장형 마이크로칩, 무선식별 식별장치나 등록인식표를 동물의 신체에 부착하는 것이다. 등록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4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했지만 등록률은 30%로 낮고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도 드물다. 이 이사는 등록대상을 고양이 등으로 확대하고 등록률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누가 얼마나 동물을 키우는지 파악하고 입양, 돌봄, 장례, 유기동물 해결까지 체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함께 ‘키우는 사람들의 책임감’도 강조했다.

“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별 고민 없이 유행에 따라, 혹은 그냥 예뻐서 분양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반려동물이 생각처럼 애교가 많지 않을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그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지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작은 생명체에게 ‘온 우주’는 바로 반려인이니까요.”


편집 : 이연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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