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어느 중산층 기자의 고백

▲ 박선영 기자

나는 중산층 기자다. 자기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 거칠어지고 두서없어진 이들의 시위를 취재할 때 나는 폭력을 거부하는 본능도 논리도 없이 격정뿐인 고함에는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복지 사각지대의 처참한 삶을 취재하며 차별과 고통에 연민을 갖고 글을 쓰지만, 동시에 내가 아님에 안도하는 마음이 내 몸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음을 안다.

나는 때로 내 계급적 위치를 탓한다. 중산층으로서 내가 누린 혜택은 기자인 나를 그들의 틀 안에 가뒀다. 찌든 가난, 가진 자들의 핍박과 차별을 겪어보지 않은 기자가 온몸으로 겪어온 이들의 경험담을 온전히 전달할 방법은 없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 표현의 자유, 젠더 감수성을 배웠지만, 생존, 처절한 싸움, 폭력밖에 남지 않은 이들의 선택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기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파편적이었기에, 내 글에는 많은 이들이 배제됐다.

▲ 기자로서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 pixabay

중산층 기자인 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빈곤을 연민하면서도 기득권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중산층으로서 사회적 약자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그들을 다룬 게 시혜적 행위가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 기득권이 누리는 혜택이 정당하다고 믿고, 그들을 위해 일하면서 느꼈던 평온함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나는 ‘중산층 신문’를 만드는 기자다. 사회적 약자를 기계적 중립으로 다루면서 공정하다고 믿어왔다. 기득권을 옹호하면서 그들의 가치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 기사는 내가 연민하던 이들을 돕기는커녕 가학했다. 그들을 더 궁핍하게 하는 데만 쓸모가 있다.

이제 중산층 기자로서 내 정체성을 버리려고 한다. 연민에서 공감으로, 동경에서 의심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내 독자는 기득권층도, 광고주도, 중산층도 아닌, 사회적 약자임을 천명한다. 내 기사를 읽지 않는 이들을 위해 쓰는 글만이 읽을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기사만이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뿌리 깊이 내재한 불평등 사회구조를 조금이나마 흔들 수 있으리라.

중산층 저널리즘을 탈피하겠노라고 선언한 나는 이후 지방선거에 나가는 정치인을 만나러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깨끗한 냄새가 나는 밝은 공간에 들어서자, 비서관이 웃으며 깍듯이 자신의 상사에게 나를 안내한다. 인터뷰 대상인 정치인은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다과를 권한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기자수첩을 꺼내는 순간 내가 무엇을 교환하러 왔는지 깨달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갑자기 볼이 뜨거워진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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