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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단다”
[역지사지] ‘애완견’ 미미의 별난 기억
2018년 06월 20일 (수) 20:28:58 조은비 기자 finestrain@naver.com
   
▲ 조은비 기자

안녕. 내 이름은 미미예요. 나는 태어나서 두 달 만에 주인집으로 오게 됐어요. 주인은 내 이름을 지을 때 한참 고민하다가 내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너 정말 예쁘구나. 어렸을 때 특별히 아꼈던 인형 이름으로 널 불러야겠어. 이제부터 네 이름은 미미! 미미야.” 그리고는 내 작은 몸을 세게 끌어안았죠. 그렇게 나는 애완견 미미가 되었어요. 감정과 감각이 있는 생명체인 내가 무생물인 인형과 똑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 서글펐지만 그래도 난 주인에게 감사했어요.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살았던 지옥에서 나를 꺼내준 분이기 때문이에요.

나는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났어요. 인간들이 만든 우리의 지옥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인은 알고 있을까요? 이곳에선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모든 일이 이뤄져요. 우리를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우리에게 불법으로 발정 유도제를 투여해 계속 교배를 시켜 임신하게 하고 새끼를 낳게 해요. 우리는 이 과정을 기계처럼 반복하다가 온몸이 망가지면 버려져요. 나는 아주 아주 운이 좋아 선택받았을 뿐.

내게도 나를 낳아준 엄마가 있었어요. 우리는 각자 번식장에 갇혀 거의 격리돼 있었지만 하루 딱 한 번 진짜 젖을 먹는 시간에 만날 수 있었어요. 내가 팔려오기 직전 엄마는 내게 한 가지 당부를 하셨어요. “아가야, 어디에 있든 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단다.” 이 말은 엄마의 유언이 되고 말았어요. 그날 난 엄마의 차가운 시체가 실려 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엄마의 소원을 영원히 잊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내 뿌리는 인간의 이기심이 집약돼 탄생한 지옥, 강아지 공장이라는 사실을요.

참, 엄마가 어쩌다 돌아가셨냐고요? 엄마는 ‘브리더’(Breeder)라 불리는 인간, 아니 우리를 제멋대로 인간의 취향에 맞게 변형시키려고 교배를 자행하는 육종가들에게 너무나 시달리다가 그만… 그렇게 됐어요. 우리 엄마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개량된 강아지를 생산할 수 있는 혈통견 유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브리더의 괴롭힘을 당했어요. 비가 엄청 많이 내리던 날이었어요. 우리 엄마는 잦은 교배와 출산으로 언제나 몸이 성한 곳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밤새 끙끙 앓고 있었어요. 그때 가장 높은 브리더가 와서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며 우리 엄마를 안락사시키는 게 좋겠다고 지시했어요. 우리 엄마는 그들의 주삿바늘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 애견 가게에 온 지 오래된 강아지일수록 크게 짖으며 서서 유리 상자에 매달려 인간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린다. 작고 어린 강아지일수록 인간의 선호도가 높아 비싼 가격에 팔린다. ⓒ 조은비

엄마가 일반 쓰레기로 분류돼 버려지던 날, 나는 처음으로 깨끗이 씻겨졌어요. 막내 브리더는 내 털이 엉기지 않도록 빗질도 해주고 좋은 냄새가 나는 향수도 뿌려주더군요. 곧이어 나는 투명하고 작은 유리 상자 안에 갇혀 건물 1층으로 이동했어요. 썩은 동료의 사체가 뒹구는 곳에서 더러운 통에 머리를 대고 먹이를 먹어야 하는 공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곳이었어요. 그곳에 가니 통 볼 수 없던 친구들이 인간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애교를 부리고 있었어요. 애견 가게 손님들은 오며 가며 나를 물건처럼 구경했어요. 나는 몇 밤 지나지 않아 지금 주인을 만나 그 지옥에서 나오게 됐어요.

주인은 내 탐스러운 하얀 털을 가장 좋아해요. 매일 아침저녁 정성스레 내 털을 최고급 애완견용 빗으로 빗겨줘요. 그가 지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요. 주인이 빗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나는 엄마의 유언을 뼛속 깊이 되새겨요. 그러면 엄마의 마지막 모습도 함께 떠올라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견뎌낼 수 있어요. 나에게 헌신적인 주인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인간과 적대하는 게 미안하긴 해요. 하지만 우리를 포함한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짓는 이 나라 법이 바뀌기 전까지 대항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주인이 이해하고 함께 지지해줬으면 해요.

내 주인은 나를 많이 예뻐해 주지만 이건 진짜 사랑이 아니에요. 자기만족을 위한 인간 중심적 욕망 추구일 뿐이에요. 나는 강아지 농장에서 불량한 위생상태와 사육방식으로 죽어가고 있거나, 유리 상자에서 탈출할 날만을 기다리는 내 동료들을 알고도 모른 척 눈 감을 순 없어요. 그거 아세요?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우리 종족 비극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을요. 인간의 미적 취향과 유행을 좇다가 자행된 친족 교배로 우리가 고질적인 유전병을 얻게 됐다는 것을요. 인간의 고상함 뒤에 숨겨져 있는 잔혹함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해요.

   
▲ 인간의 미적 취향에 따라 개의 신체는 변화했다. 영국 브리더들은 큰 눈, 풍성한 털 등 인기 있는 형질을 빠르게 고정하기 위해 근친교배를 자행했고 개의 고질적인 유전병을 초래했다. ⓒ change.org

놀랍게도 우리를 생명이 아닌 기계로 살게 만든 장본인은 영국 아래 프랑스에 살던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랍니다. 그는 인간 외 동물은 기계로 생각했어요. 아시다시피 그의 철학은 유럽 대륙을 휩쓸었죠. 우리는 그의 패러다임 속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죽은 지 200년 뒤 브리더의 활약과 중산층의 수요로 시작된 도그쇼가 강아지 비극적 역사의 시작이었죠. 인류에게 전쟁 같은 큰 위협이 닥칠 때마다 우리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과시 심리는 더욱 커져갔어요. 한국도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펫코노미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죠.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어요. 우리를 생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인간의 목소리가 꾸준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크러프츠도그쇼에는 10년 전부터 근친교배로 낳은 강아지는 출전하지 못해요. 도그쇼를 중계한 영국 BBC는 2009년 혈통견의 유전병 문제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마다 한 생중계를 중단했어요. 한국에서도 몇 해 전 우리가 살던 강아지 공장의 실태를 알린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문제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유명 여자 연예인도 버려진 우리를 기르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고요. 펫코노미 시대, 우리가 진정 ‘생명’으로 인정받을 날도 머지않은 거겠죠?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장은미 기자

[조은비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 환경부 조은비입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느끼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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