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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좋은 세상에 살 줄 알았는데…
[역지사지] 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
2018년 09월 04일 (화) 22:46:25 김소영 기자 kim314sy@gmail.com
   
▲ 김소영 기자

네가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면 철없다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자란 한국사회는 일상의 면면이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고등학생들은 이등병과 같았다. 교련복을 입고 등교해 선생들에게 맞아가며 배웠다. 그런 환경에 불만 많던 나는 우리 아이만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키우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지. 감사하게도 많은 이들이 피 흘려가며 싸운 덕분에 그런 세상이 왔고. 그리고 태어난 너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라 믿었다. 우리 딸이 부족함을 모르는 밝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 우리 딸이 부족함을 모르는 밝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 Pixabay

아빠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마냥 천진난만하던 너를 데리고 세상 이곳저곳 둘러볼 때는 몰랐다. 아마 네가 말대꾸를 시작했을 때부터일 거다. 나는 그저 내 욕심대로 네가 크기를 바랐다. 변명하자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기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단다. 너는 우연히 우리에게로 왔을 뿐이지 삶의 방식이건 꿈이건 너를 구속할 권리까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단 걸 깨닫지 못했다. 내가 과거 선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 또한 나에게 반항심이 들었겠지.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 알았다면 엄격한 말을 할 시간에 조금 더 너를 사랑해주고 예뻐해 줄 것을. 어느 순간 너는 나와 네 엄마가 지어놓은 둥지를 떠나 있더구나. 답답함에 달아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너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한 것 같다. 네가 떠나고 나와 네 엄마에게 눈을 돌리니 우리는 너와 달리 세상에 뒤처져 있었다. 너의 도움 없이는 휴대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고 컴퓨터로 연말정산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네가 기특하면서도 너에게 더 이상 도움을 주기보다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로서 무력감이 들더라. 그럴수록 너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엄마아빠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였던 네가 이제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야 하는데 아빠는 왜 옛날이 그리운 걸까? 가끔 네가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할 때면 견뎌야 한다고 냉정한 말을 해도 내심 아직 아이로 남아있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아빠도 너를 품에 가두고 싶은 이기심을 아직 다 버리지 못한 걸 이해해주렴.

지금 이 순간, 너는 네가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있겠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엽다. 한창 예쁘게 꾸미고 놀러 다닐 나이에 추리닝 차림으로 안경 쓰고 도서관에 다니는 딸을 보는 아빠 마음을 이해할지 모르겠다. 너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말하겠지. 인생은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네가 깨달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혹시 너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어도 그럴 수 없는 세상이지. 네가 어릴 때는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고만 생각했는데... 너를 키우고 보니 아직도 세상은 옆도 보면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각박한 사회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딸이 누구보다도 자랑스럽다. 엄마아빠는 항상 너를 믿는다는 걸 알고 있지. 파이팅, 우리 딸.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단비뉴스 국제부 박경민입니다.
"In the end, we will remember not the words of our enemies, but the silence of our friends." -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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