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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에 관한 기성세대의 편견
[상상사전] 일
2018년 07월 24일 (화) 20:23:09 김소영 기자 kim314sy@gmail.com
   
▲ 김소영 기자

대학생 시절 나는 노동자의 권리를 무척이나 신성하게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노동조합이 힘을 가진 도시,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연스레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을 거라 추측해본다. 취업한 선배가 나에게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일을 하소연할 때도 ‘그런 건 노조에 알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때 나를 쳐다보던 선배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세상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고나 할까? 나를 한심한 사람 대하듯 하는 선배를 보며 속으로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욕했다.

깊은 줄 알았던 내 뿌리는 생각보다 쉽게 뽑혔다. 회사 생활은 나에게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규칙적 생활, 성취감, 일체감 등 무형의 가치를 가져다 줬다. 오랜만에 겪는 안정적인 일상은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야근 때면 불평불만을 쏟아내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친구들과 카톡할 때 우리는 서로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자랑스럽게 바쁨을 과시했다. 친구가 바쁠 때 내가 바쁘지 않으면 왠지 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시절 나는 노동자의 권리 따위는 까마득히 잊은 채 회사원을 ‘흉내’내는 삶에 도취된 채 살았다.

   
▲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바쁨을 과시한 채 노동자의 권리를 잊었던 회사원 시절이 있었다. ⓒ pixabay

지금 생각해보면 노동권에는 조금도 관심 없던 친구들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사회운동가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휴식이었다. ‘패리스 힐튼의 개’가 되고 싶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친구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3~4년 경력의 치과 간호사였다.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상대하거나 의사 심부름을 해야 했다. 날카로운 말을 하는 예민해진 동료들과 동료의 실수에 덩달아 예민해지는 자기 모습에 피로함을 느꼈다고 한다. 취업준비생이던 나는 친구가 그런 불만을 말하며 쉬고 싶다고 말할 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경험이 없기에 친구의 업무 환경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그만두고 쉴 생각만 하는 친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처럼 일터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에 장시간 업무를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리자는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일과 여가의 균형) 현상이 등장할 수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을 오래 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건 tvN ‘윤식당2’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언급할 정도로 세계에서 유명한 사실이 됐다. 워라밸 현상은 업무시간을 줄여야 하는 당연한 움직임 외에 복지와 조직문화 문제에도 관심을 집중시킨 계기가 됐다. 한편에서는 워라밸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부장의 칼럼 '걱정되는 '워라밸' 신드롬'은 그런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의 칼럼은 ‘꼰대’ 소리를 들어가며 비판받았다. 

그의 칼럼이 문제인 이유는 국가의 시선으로만 청년들의 워라밸 열기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해외여행으로 안목을 넓히는 게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되는 측면도 물론 있다’는 문장이 그의 국가주의 관점을 말해준다. 청년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청년 개개인은 사라져갔다. 조직과 국가를 위해 입 다물고 묵묵히 일만 하던 청년들의 불만이 세대에 걸쳐 쌓인 결과가 워라밸 현상이다. 이제 청년들은 국가 경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워라밸을 말하는 청년들을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라며 비난할 수는 없다. 과연 청년들은 일하지 않고 자기 편하자고 놀고 먹기만을 바라는 걸까? 워라밸의 의미처럼 청년들은 조직 차원에서 일과 개인의 삶 사이 균형을 원한다. 워라밸 논란 속에서 단축된 노동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끝낼 수 있는 방법, 건강하고 발전적으로 여가 시간 보내기 등이 논의되고 있다. 청년들은 워라밸 현상을 통해 선배 세대와 함께 ‘밥벌이의 지겨움’에 관해 이야기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에는 조금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물려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어쩌면 실업자 수가 높은 것도,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만을 찾는 것도 워라밸이 정착하지 않은 지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청년들은 자기 나이 때부터 조직을 위해 꿋꿋이 일만 해온 선배 세대가 ‘꼰대’라 비난받고 여가 시간을 즐길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세대는 변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일을 시작하는 시간을 늦추어서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에 들어가고자 발버둥 친다.

워라밸 현상의 끝에는 ‘일이 사람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을 다스리를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청년세대에 또 다시 고통스러운 근무 환경, 실업 문제, 세대 갈등이 반복될 것이다.


 편집 : 박경난 PD

[김소영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김소영입니다.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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