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조승진 기자

▲ 조승진 기자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 이후 한진그룹 일가의 빗나간 행태를 제보하는 직원들이 줄을 이었다. 단체 채팅방 한계치인 1천 명을 돌파해 방이 2개가 되었다. 억눌려 있던 직원들은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지난날을 고백한다. 급기야 아시아나로 불이 옮겨 붙어 총수 퇴진을 요구하는 연합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인 대기업 직원들도 오너 앞에서는 ‘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 취급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인 ‘슈퍼을’의 마음은 어떨까?

신자유주의 물결로 등장한 비정규직 중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다. 이들이 ‘슈퍼을’로 불리는 까닭은 노동자이면서도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회사와 고용계약이 아니라 도급계약 형식으로 맺어진 ‘사업자’다. 이들 노동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일정한 기본급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법적으로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전자제품 수리기사,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이 ‘사업자’로 불리는 것 자체가 왜곡된 노동시장의 산물이다. 이들은 회사 이익을 위해 태어났다. ‘고용 유연화’로 인건비를 줄여 사측 이익을 높이려 한 것이다. 회사는 책임질 필요 없고 일한 것 이상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선호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수요에 맞춰 서비스나 물품을 제공하는 ‘온디맨드 경제’(On demand economy)가 활성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특수한 노동’ 역시 더욱 필요해졌다. 이때 특수고용노동자는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한다는 이유로 ‘플랫폼(Platform) 노동자’라 불리거나 필요할 때만 섭외된다는 이유로 ‘긱(Gig) 노동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대리운전 앱, 가사노동 중개 앱, 배달대행 앱 등을 통해 일한다.

문제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일상이 하루살이와 같다는 데 있다. 소비자의 수요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의 소득을 보장할 안전장치는 없다. 회사 역시 이들의 소득을 보호해줄 의무가 없다. 회사와 특수고용노동자는 일한 만큼 가져가는 도급계약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한 만큼 가져간다’는 말은 ‘일하지 못하면 가져갈 수 없다’는 얘기다. 노동 제공 의사가 있어도 수요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의 소득도, 내일의 소득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이다. 법과 제도 또한 이들을 사업자로 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권리도 누릴 수 없다.

▲ 지난 2017년 10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요구하는 모습 이들은 아직까지도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 참여연대

즉각적인 해법은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권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노동3권과 4대보험가입 같은 기본 권리부터 보장해야 한다. 장기적인 해법은 경제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정규직층을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인건비를 과도하게 절감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노동자는 곧 회사 고객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소득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은 소비층이 얇아지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 관심도 필요하다. ‘슈퍼을’이라 불리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교수 시절 “세상은 스스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과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갑질’에 당하고 산 을들의 분노가 하나로 모인다면, 정치권도 시민의 뜻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분노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차원으로 넓혀보자. 가장 낮은 노동자인 특수고용노동자의 어려움을 살핀다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먼 훗날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뿌린 물세례가 노동계의 성수로 일컬어지게 만들어보자.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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