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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기억하려면 보존하라
[단비발언대] 박수지 기자
2018년 05월 15일 (화) 23:07:14 박수지 기자 danbi@danbinews.com
   
▲ 박수지 기자

광주가 고향인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 갈 때 옛 전남도청 앞을 지나곤 했다. 오래된 구 도청은 허름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벗겨진 흰색 페인트 뒤로는 회색 시멘트가 보였고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나는 그런 구 도청을 지날 때마다 왠지 가슴이 아릿했다. 1980년 5월 당시의 함성과 총성이 들리는 듯했고 최후 항전지였던 도청 안에서 끝까지 계엄군과 맞서다 숨진 시민군들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옛 전남도청을 봐도 큰 감동이 밀려오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 자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면서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옛 전남도청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문화’라는 이름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말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이제 80년 광주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치열한 총격전이 남긴 총탄의 자국은 흰 페인트로 덮여 그날의 기억을 감춰버렸다. 시민군이 상황실, 방송실, 회의실 등으로 활용한 본관 방송실은 완전히 철거됐고 거기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당시의 급박한 상황은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됐다.

   
▲ 구 전남도청을 리모델링해 2015년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은 ‘주차타워’가 될 위기에 처했다. 이 건물 외벽에는 시민군이 계엄군을 향해 쏜 총탄 자국 13개가 남아있다. 또 작년 이곳 10층에서 발견된 총탄 자국은 헬기에 의한 사격으로 결론 나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의 새로운 계기가 됐다. 시간이 흘러도 역사적 공간을 통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표가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전일빌딩과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5·18 사적지들은 여러 이유로 훼손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일당이 늘어놓는 궤변은 힘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헬기사격이 유언비어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보수단체들은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이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 말한다.

역사는 단순히 사건의 기록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공간은 문자로 전달되지 않는 기억과 감동을 전달한다. 특히 5·18은 37년이 지났음에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정립되지 않은 역사다. 정권에 따라 참모습이 흔들리며 왜곡과 폄훼로 얼룩져 더 가슴 아픈 역사다. 그런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억 투쟁’과 더불어 진실을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는 일이다.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말 못 하는 ‘역사적 공간’이 진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대변할 수 있다.

   
▲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헬기사격 탄흔. 광주시는 3월 총탄 자국을 원형 보존해 리모델링,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JTBC

피에르 폰 마이스는 <형태로부터 장소로>에서 ‘건축공간은 영속성으로 인해 이중적 역할을 취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역사의 증인’으로서 역할이고, 두 번째는 ‘미래를 위한 기회’로서 역할이다. 5·18 사적지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 80년 5월에 관한 비틀린 기억을 바로잡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역사문화상징물로 거듭나 미래를 비추는 등댓불이 될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계엄군의 진입을 앞두고 여대생과 중고생들을 돌려보내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5·18 민주화 항쟁을 잊지 말고, 저항한 시민들을 승리자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 현장을 그럴싸한 포장지로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보존’을 통해 윤상원의 처절한 당부를 실천해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도 사라지고,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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