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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차산업 융복합은 꿈이 아니었다
[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6차산업 현장
2018년 03월 02일 (금) 13:23:18 고하늘 김미나 박선영 조현아 기자 wlswnalsk@hanmail.net
‘경기’(京畿)는 왕도 주변 오백리 이내 땅을 말한다. 2016년 기준 경기도 농가 인구는 32만이다. 대도시권역이라는 통념과 달리 경상북도 다음으로 농가 인구가 많은 곳이다.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오교철)이 지원하는 농업전문언론인양성과정 장학생 4명(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이 농업리더장학생 8명과 함께 경기도의 123차산업 융복합, 곧 6차산업의 현장을 탐방하고, 오랫동안 농업과 농촌을 위해 힘써온 이들을 만났다. 2월 20일부터 2박 3일간 현장을 둘러보고, 추가 취재한 뒤 동계연수 참가기를 썼다. (편집자)

경기도 포천의 평화나무농장은 김준권(70)⋅원혜덕(62)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김 씨는 유기농업 실천 운동 선구자로서 정농회 창립 회원이며, 아내 원 씨는 풀무원농장의 설립자이자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 원경선 씨의 넷째 딸이다. 40여 년간 유기농업을 보급하고 실천해 온 이 부부는 유기농업의 상징적 인물로서 지속 가능한 농업의 방향을 제시한다.

“소 사육은 수익이 아닌 순환이 목적”

   
▲ 축사에는 소 말고도 산양유를 얻을 수 있는 염소와 베트남 토종 돼지가 자란다. 김준권 씨는 “과거엔 닭도 길렀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로 지금은 사육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대산농촌재단

“저희 농장은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소의 분뇨로 퇴비를 만듭니다. 유기농을 하는 데 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자급하는 퇴비가 없으면 외부에서 들여와야 합니다.”

첫날 평화나무농장을 방문한 연수단에게 김 씨는 “화학비료와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유기농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재생과 순환이 가능해야 본래 유기농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소를 기르는 것은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순환이 목적이라는 지론이다. 소 분뇨가 퇴비가 되고 퇴비로 길러진 농작물은 다시 소먹이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지난해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저희 소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이웃 축사는 100여 마리나 땅에 묻었죠. 밀집 사육을 피하고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축을 건강하게 길러 면역력을 높여주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요.”

평화나무농장은 다른 축사보다 천장이 높고 통풍이 잘돼 분뇨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김 씨는 “밀집 사육은 인간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며 “동물이 태어나서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축사에 20여 마리 소만 사육하는 것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축사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부가 수입을 얻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인간 생활에 가장 가치 있는 일, 농업

“1975년 원경선 선생님이 일본에서 유기농사를 짓는 고다준이치 선생님을 한국으로 초청하셨어요. 풀무원농장에서 3박 4일 동안 진행된 강연을 듣고 감명 받은 청년들은 각 지역으로 돌아가 유기농업을 전파했죠. 저도 그때 유기농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원경선 씨는 1975년 9월 우리나라에 낯선 유기농업을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1976년 1월 바른 농업을 하는 사람들 모임인 정농회를 결성했다. 당시 풀무원농장 연수생이었던 김 씨는 "풀무원농장도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게 어떻겠냐"며 원경선 씨에게 제안했다. 이때부터 풀무원농장은 합성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은 화학비료나 제초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국가에 반하는 행위로 여겨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식량 증산이 국가적 목표였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화학비료를 얼마든지 사용해도 문제가 없던 때였다. 김 씨는 “오히려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이 국가 정책을 따르지 않아 사상이 불순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정농회에서 연수나 총회를 할 때면 늘 형사가 동반했다”고 설명했다.

   
▲ 김준권⋅원혜덕 부부의 강의를 듣고 있는 연수단. ⓒ 대산농촌재단

“인간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예요.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써야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일까요? 고다준이치 선생님은 농업이야말로 인간 생활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다준이치 선생은 농업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고 일렀다. ‘왜 유기농을 해야 하는지’, ‘지금 하려고 하는 유기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등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그는 “당시 선생님의 가르침이 농업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으며, 지금도 마음속 깊이 그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을 노래하는 생명역동농업

“농(農)의 한자를 보면 가락을 뜻하는 곡(曲) 자와 별 진(辰) 자로 돼 있어요. 농사를 밭 갈고 씨 뿌리는 일로 한정하지 않고 별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거죠.”

선조들은 농(農)의 이치를 알고 있었을까?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농으로 인정받는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은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창안하여 1924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식물의 성장이 햇빛, 물, 온도, 영양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태양과 달, 12별자리의 움직임까지 살펴 농사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철에 재배하는 작물이라도 뿌리작물이냐 열매작물이냐에 따라 씨를 뿌리는 시기가 다르다. 국제생명역동농업협회는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 50여 개국이 가입했고, 한국은 2008년에 준회원국으로 인정받았다.

넓은 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증폭제는 생명역동농법의 핵심이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살포용 증폭제와 퇴비용 증폭제다. 만드는 방법은 9가지가 있고 각각의 효능은 다르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은 데메터(Demeter)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인증이 붙은 상품은 유기농보다 비싼 값에 판매되며, 소비자에게 최고 품질로 인식된다.

   
▲ 연수생들은 평화나무농장의 김준권⋅원혜덕 부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농장을 방문하는 교육생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기도 한다. ⓒ 대산농촌재단

김 씨는 20여 년 전 일본에서 농사짓는 프랑스인 피리오 드니 씨를 만나 생명역동농업을 알게 됐다. 김 씨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생명역동농업을 도입했으며, 2005년에는 생명역동농업연구회를 결성해 그 농업이 유기농업의 현장에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때때로 생명역동농업은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 사람들로부터 미신이나 주술 행위로 오해를 받는다.

“2016년 포천시 벼 재배단지에 증폭제를 제공했어요.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죠. 처음에는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냐고 반신반의하던 분들도 수확을 앞두고 보니 다음 해 재배면적은 확대하고 싶다고 했어요.”

‘멋’을 좀 아는 농부

이튿날 연수단은 파주 헤이리의 '논밭예술학교'를 찾았다. 논밭예술학교는 '쌈지농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예술, 생태, 농업 전반에 걸친 교육 프로그램과 아트 전시, 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하는 생태문화공간이다.

“제가 쓴 모자가 보이시나요? 제가 녹색당 모자를 쓰는 이유는 생명을 사랑하고, 생태를 노래하고, 평화를 그리는,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이 당과 제가 비슷한 색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멋진 티’를 내려고 이 녹색당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천호균(69) 쌈지농부 대표는 ‘멋’이라는 개념으로 말문을 텄다. 농촌 특산물과 농촌기업을 디자인 컨설팅해주는 ‘쌈지농부’를 세운 지 어언 8년. 유기농 농산물 유통 브랜드 ‘농부로부터’, 유아교육과 농사를 접목한 ‘쌈지어린이농부학교’ 등 농(農)의 가치와 대중을 잇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천 대표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고집해온 자신만의 철학으로 ‘멋’을 꼽았다.

   
▲ 연수단에게 자기 철학을 전하는 천호균 쌈지농부 대표. ⓒ 대산농촌재단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는 ‘멋’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겉으로 보이는 외면적인 것들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이야기를 ‘글’로 써서 다니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몇 년 전, 세월호 참사를 만났을 때는, 세월호의 그 생명… 우리 세대가 문명과 잘 사는 것, 경쟁을 쫓으면서 잃어버린 것을 미안해하며 세월호 모자를 쓰고 다녔어요.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야 하겠다, 이런 마음에 관련 집단, 세력을 찾다 보니까 녹색당의 강령이 딱 그거더라고요. 제 딴에는, 제가 생각하는 멋을 모자로 쓰고 다닙니다.”

그에게 ‘멋’은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또렷한 신념이었다. 또한 사회적 예술가로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의 바탕이기도 했다. 실제로 천 대표는 1년 전, 파주 산자락에 보호종인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허물고 진행될 예정이던 산업단지 공사를 자신의 광화문 청원을 통해서 중단시킨 바 있다. 그는 작은 실천이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며, 이런 행동들이 자신만의 ‘멋’을 부리는 실천의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

천호균 대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특히 자연과 맺는 관계의 모습을 강조했다. 자연의 소중함을 뒤로하고, ‘땅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우리에게 결여된 것. 바로, 이 세상의 공기, 물, 생물, 먹거리 등의 자원과 공존하며 이 땅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기는 더럽히면서 숨들은 다 쉬려고 하죠. 자기가 공기 깨끗하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공기,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이상 기후. 이러다가 언젠가는 숨을 못 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오죠? 마찬가지로 농사는 짓지 않으면서 밥은 다 먹으려고들 해요. 음식은 당장 못 먹으면 방법이 없잖아요? 밥을 먹으려면 농사를 직접 짓거나, 자식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농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고마워하고 그 정도는 되어야 밥 먹을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밥 먹을 자격’을 얻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오셨고, 이렇게 재단과도 관계를 맺은 거 아닐까요.”

   
▲ 논밭예술학교에서 나온 점심 상차림. 화학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은 천연 발효 비건(VEGAN) 통밀빵과 신선한 샐러드, 리코타 치즈와 오디잼 등이 차려졌다. 헤이리 ‘농부로부터’에서 가져온 ‘이흥수 빵 짓는 농부’의 빵이다. ⓒ 고하늘

패션기업 ‘쌈지’에서 ‘쌈지농부’로 전직

농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열정적 생태주의자인 그도 원래부터 천직 농업인은 아니었다. 천 대표는 연 매출 2000억에 이르렀던 패션 전문 기업 ‘쌈지’의 성공한 대표였다. 하지만 나이 마흔 즈음에 농사와 논밭, 자연의 가치를 새롭게 느껴 그때부터 농(農)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농업을 예술로 만드는 일’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상업 브랜드 ‘쌈지’와는 결별하고, 독립된 사회적 가치를 지닌 ‘쌈지농부’라는 법인이 탄생했다.

“저는 서울에서만 쭉 자라 ‘농사가 예술’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장사할 적에 아트 마케팅이라고 해서 물건을, 그 ‘생각’을 가지고 고객과 얘기하자, 그렇게 생각했지. 실제로 살아 있는 디자인, 진짜 예술의 공부는 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내가 이걸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죠. 그런데 씨를 뿌리고, 열매가 맺는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한 계절이 지나가면서 느끼니까 ‘이것이 진짜 디자인, 살아 있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살아있는 디자인, 생명을 직접 간수하는 농부들이 너무나 훌륭해 보였어요. 비, 햇살, 바람 같은 자연에게도 너무 고마웠죠. 자연의 고마움, 농부의 훌륭함을 나이 마흔 다 돼서 처음으로 느끼고 알게 된 거죠.”

천 대표에게 농사는 ‘예술’ 그 자체였다. 작가가 긴 고뇌 끝에 위대한 작품을 만들 듯, 농부는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생명 깃든 곡식을 창조해낸다. 시를 짓듯, 소설을 짓듯, 그렇게 농부는 땅과 곡식을 짓는다. 그는 농사를 가장 위대한 예술 작업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 논밭예술학교의 벽에 걸린 대표 문구들. ‘생각의 밭, 마음의 논을 가꾼다’와 ‘농사가 예술이다’ ⓒ 김미나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일이 ‘예술’이라 그러죠?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신이 인간에게 자연을 느끼고 만물을 배려하라고 ‘더듬이’를 주었다. 인류 역사 중 인간의 욕망, 탐욕, 중독 등으로 거의 모든 더듬이가 다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인간 중 자연을 보호하고 흙을 살리고 생명을 간직하는 농부에게는 그 ‘더듬이’가 남아 있다고 봐요. 자연과 같이 있으니까. 농부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면, 마치 자기 몸이 비를 맞는 듯 시원하고 상쾌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것이 더듬이가 살아서 자연과 공존한다는 증거지요. 농부들에게 남아있는 ‘더듬이’, 그 감수성, 감성, 그것이 소위 말하는 ‘창조’, 신이 인간에게 주신 영역이 ‘창조’라고 하잖아요? 인간이 따라 할 수 있는 신의 창조에 가장 가까운 영역이 농(農)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을 느끼고 만물을 배려하는 더듬이가 남아있는 농부. 그리고 그 더듬이를 존경하고 따라가려고 하는 예술가들. 농부와 예술가들이 ‘창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아닐까요?”

논밭에서 명상하고, 그 명상을 ‘예술’로서 실현해가고자 하는 사람. 농사를 ‘멋’으로, 살아있는 ‘예술’로 생각하며, 농(農)을 기치로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쌈지농부’. 쌈지농부의 철학과 본연의 ‘멋’이 깃든 논밭을 주제로 한 갤러리 작품들과 디자인 컨설팅을 통해 탄생한 정갈하고 세련된 유기농 상품들은 헤이리 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천 대표는 농촌이 트렌디한 예술 마을이 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운 문화로 꽃피울 순간을 고대한다.

소규모 낙농가의 활로를 열다

   
▲ 조옥향 대표가 연수단에게 은아목장을 소개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은아목장은 3대가 함께하는 작은 마을이다. 조옥향(65) 대표는 두 딸이 목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 그들의 이름인 지은과 지아의 마지막 글자를 합쳐 목장 이름을 지었다.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하기 위해 목장의 다양한 수익 창구를 고민하던 조 대표는 목장과 젖소 그리고 우유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했다. 그를 막는 것은 그의 상상력뿐이었다. 두 딸의 자식들도 농부가 되어 악기를 다루고 글을 쓰는 음유시인이 되길 바라는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6차산업의 낙농가 모델로 인정받기까지 은아목장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2000년대 우유값이 폭락한 ‘우유 파동’으로 정부 정책이 증산에서 감산으로 바뀌고 쿼터제가 도입됐다. 80년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 낙농업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공장에서 가져가지 않는 우유는 길에다 버리고, 그 대응책으로 정부는 소의 수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조 대표는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부가가치를 더한 유가공품을 생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원유를 가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 배워야 했다.

“버려지는 우유로 다양한 버터와 치즈를 만들고자 농림부 공무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서 낙농인들이 유가공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비를 지원받았어요. 대산농촌재단의 해외연수도 참여하고 둘째 딸의 지도교수인 훗카이도 낙농대학의 고우치 교수를 설득해 일본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 연수단은 은아목장에서 만든 모차렐라 치즈로 피자 만들기 체험을 했다. ⓒ 대산농촌재단

조옥향 대표는 낙농가의 활발한 유가공을 가로막는 식품가공처리법의 규제에도 도전했다. 작은 낙농가는 제품 다양화를 통해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검역 기준이 대형 식품회사에 맞춰져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조 대표는 정부에 끊임없이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모든 공무원이 꽉 막힌 행정가는 아니었다. 6차산업을 연구한 이동필 장관에게 목장 유가공은 규제가 너무 심해 가공품을 많이 만들기 어렵다고 전했더니 축산 규제에 관한 포럼을 은아목장에 와서 열어주었다. 조 대표는 장관도 참석한 포럼에서 소규모 낙동가의 검역 애로를 설명했고 결국 다양한 유가공품 개발과 생산의 길이 열렸다.

“똥의 순환을 이해해야 착한 소비자”

셋째 날 오전에 방문한 이천시의 씨알살림축산은 신동수(72) 대표가 1990년에 설립한 축산물 처리가공업체다. 현장견학에 앞서 친환경 축산을 주제로 강의한 이경우(54) 기획영업본부장은 "농민이 올바른 방식으로 동물을 사육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그렇게 생산된 건강한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순환농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 이경우 기획영업본부장이 씨알살림축산을 소개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나다. 우리가 먹는 것이 내 몸을 형성하듯 동물이 먹는 것이 동물을 만들죠. 그러나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몸집이 크고 등급이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춰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음식 관련 산업이 왜곡돼 있어요. 우리는 먹는 고기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어요. 그 고기를 먹었을 때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씨알살림축산은 동물이 먹는 사료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동물 사료에서 50~60%를 차지하는 옥수수를 빼고 국내에서 생산한 우리 밀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아마씨를 넣었다. 그 결과 고기를 구성하는 성분이 바뀌었다. 사료를 바꾸기 전에는 오메가-6 지방산 비중이 훨씬 높았지만 사료를 바꾸고 난 뒤 오메가-6 지방산이 낮아지고 오메가-3 지방산이 높아졌다. 이 본부장은 "처음 사료를 바꾼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사람도 없어서 못 먹는 걸 동물들 주냐”며 미쳤다고 했지만 우리를 믿고 함께해준 농가와 소비자 덕분에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수단 안내를 맡은 심명순(54) 본부장은 "좋은 사료를 먹은 동물에서 나온 분뇨로 땅을 일구고 거기서 나온 것을 다시 사람이 먹는 친환경 순환농업, 즉 똥의 순환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고 착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수생인 홍해송(21⋅전남대 동물자원학)씨는 "옥수수를 대체할 수 있는 곡물을 써서 오메가-6 지방산을 줄이고 오메가-3 지방산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료를 바꾸는 것에서 나아가 초지를 중심으로 하는 축산업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정부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연수단이 씨알살림축산의 제품 생산 과정을 견학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땅을 향한 애착과 고집이 만든 유기농 딸기

이날 오후 연수단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가온들찬빛농장을 찾았다. 연수단을 반겨 준 노태환(54)⋅유정숙(51) 부부는 억척스럽게 유기농을 고집하며 딸기 농사를 짓는다. 자신을 '모태 흙수저'라고 소개한 노 공동대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농사만 36년째 지으면서 무리 없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농사 인생이 순탄치는 않았다.

   
▲ 노태환 대표는 가온들찬빛농장을 농촌과 도시를 잇는 생활문화체험장으로 키우겠다고 했다. ⓒ 대산농촌재단

그가 처음 농사를 짓던 1993년에 그의 하우스는 폭설로 몽땅 무너졌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빚을 내 두물머리의 국유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두물머리에서 10년 정도 농사를 짓던 그는 다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이들을 강제로 내쫓은 것이다. 3년 가까이 농부들과 함께 싸웠지만 결국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지금 농장으로 옮겨왔다.

"저도 갈등을 많이 했죠. 땅을 3번이나 옮기다 보니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그래도 먹는 것에 관한 강한 믿음이 있어서 유기농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자재로 생산되는 농산물이 사람한테 좋을 리 없으니까요.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만으로 재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먹거리를 나도 먹어야 하고 내가 아는 사람한테도 팔아야 하니까요."

   
▲ 연수단 성기윤(24⋅단국대 녹지조경학) 씨가 가온들찬빛농장에서 직접 딴 딸기를 들고 웃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가온들찬빛농장은 유기농업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두물머리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시작한 유기농 딸기체험은 단골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난해에는 직접 준비한 재료로 소비자와 함께 김장체험도 진행했다. 또 건전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팜 파티를 진행한다. 유 대표는 "농사를 지으면 쉬운 일 하나 없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며 시골에도 여러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유기농은 외국 비료를 들여와서 지어요. 심지어 퇴비도 외국에서 들여온 닭똥을 써서 유기농을 해요. 그런 것을 지양하고 농장 스스로 먹고 쓰고 다시 투입하고 생산하여 순환하는 농장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닭도 100여 마리 기르면서 농산물 찌꺼기로 사료를 주고 닭똥으로 거름도 만들고 해요. 아직 부족하지만 땅심만 더 갖춰진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 봐야죠."

자연과 인간을 되살리는 혁신 농축산업을 보다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은 2박 3일 연수를 통해 '돈'이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와 '깨끗한 환경을 고민하며 현장에서 땀 흘리는 농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연수에 참여한 이인안(24⋅충북대 산림학) 씨는 "이번 연수를 다녀오며 농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며 "농사는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즐겁고 행복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깨달았고 새로운 유기농법도 배울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할 때 이룰 수 있다. 지금은 일부 농가에서 '선구자'를 자처하며 열악한 형편에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중심을 잃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터전을 갈고 닦기에 농촌공동체의 회복도 희망이 있는 듯하다.


편집 : 유선희 기자

[김미나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장 김미나입니다.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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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의 새농민 “농사는 머리로 짓는 것”
· 백남기 농민 서거로도 찾지 못한 것
· 청년 마음 사로잡아 ‘소멸위기’ 벗어난다
고하늘 김미나 박선영 조현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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