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7년 강원도 춘천. 과거로 여행을 떠나 현재를 바꾸려는 시도는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은 잃어버린 첫사랑, 추억, 고향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찾아 타임머신을 탄다. 66분짜리 영화 <망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맥거핀(관객의 주의를 돌리는 속임수)으로 활용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한 댄서를 미래의 춘천에서 2013년 현재로 파견된 ‘시간감시관’으로 설정하고 그의 눈으로 춘천의 한 재개발 동네를 바라본다.독특한 장치로 재개발 서글픔 담아 “요즘 춘천이 개발되는 방향을 보면 서울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간 박달도령과 그를 기다리다 상사병에 걸려 숨진 금봉낭자의 전설이 깃든 충북 제천시 박달재. 소나무 오종종히 서 있는 그 고갯길을 따라 백운면 애련리로 들어가다 보면 폐교된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를 고쳐 지은 원서문학관이 나온다. 배우 설경구가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하고 절규하던 영화 <박하사탕>의 그 기찻길 장면을 찍은 진소마을 앞이다. ‘폭설’, ‘해피 버스데이’의 시인 오탁번(72)은 기자가 찾아간 지난해 10월 20일 원서문학관 마당에서 맨손으로 마늘밭 거름을 섞고 있었다. 시어를 엮어
지난해 10월 18일 저녁 7시 무렵, 서울 상일동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의 티켓 창구는 수백명의 인파로 붐볐다. 응원구호가 쓰인 손팻말을 든 여학생들, 큰 배낭을 멘 금발의 외국인 커플, 차분히 공연책자를 들여다보는 노신사까지, 각양각색의 관객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막 5분 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로비에 울려 퍼지자 곧 객석 850개가 가득 찼다. 넓은 무대 위에는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별다른 소개 없이 한 남자가 나와 의자에 털썩 앉았고, 또 다른 남자가 걸어 나와 바로 옆 의
충북 충주시 신니면 부용사 자락의 호젓한 산골. 주인 모를 납골당 아래 빨간색 벽돌집이 교교하게 서 있다. 주황색 불빛이 환한 창은 온통 깜깜한 산골에 둥실 뜬 달처럼 보인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30평 남짓한 실내에는 첩첩히 쌓인 책 더미와 찻그릇, 유화가 널린 공간 사이로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다. 마른 뺨에 이마가 도드라진 얼굴, 뒤로 묶은 꽁지머리의 경서도 소리꾼 권재은(55)이 거기 앉아있었다. “소리가 별 것 있나요.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내 안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하는 거죠.” 판소리가 소설이라면 경서도 소리는 시경서도
“다른 시 좋은 거 많은데 희한해......”나태주(66·공주문화원장) 시인은 그의 시 ‘풀꽃’ 얘기가 나오자 천진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43년간 시골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선생님다운 순박한 웃음이었다.‘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달랑 세 줄의 이 짧은 시는 2005년 발간된 그의 스물여덟번째 시집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수록됐다가 2009년 푸른길출판사가 낸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서울 종로의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이 정도로까지 무너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한 심정입니다."<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요즘의 KBS 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7년 한국방송(KBS) 기자로 입사해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 등을 이끌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 각종 탄압을 받다가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MB 시대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KCIJ)를 설립하고 '비영리, 비당파,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의 대표를 맡았다. 또 국내 유일의 2년제 정규 저널리즘스쿨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경기도 수원의 벼룩시장과 안양시 관양시장, 남양주시 나눔장터 등에는 전국의 장을 돌며 판을 벌이는 ‘예술장돌뱅이’들이 종종 나타난다. 손한샘(45)씨를 주축으로 지난 2008년 결성된 프로젝트 예술가팀 ‘겸손한 미술관’에 속한 화가 10여명이 그들이다. 이 예술장돌뱅이들은 시장에서 만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대화를 모티브로 그림 등 작품을 만들고 물물교환도 한다. 이 중 화가 김현승(34)씨는 지난 2012년부터 ‘감성우체국’이란 이름으로 손님과 함께 손글씨엽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생각으로 예술가들이 장터로 나
다음달 3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프로그램인 ‘한국영화의 오늘’ 에는 완성도가 높은 독립영화 10편을 소개하는 ‘비전’ 부문이 있다. 여기에 첫 장편영화 <셔틀콕>을 걸게 된 이유빈(32·여) 감독은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인 중 한 사람이다. 국내 상업영화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성장영화(청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이 감독을 <단비뉴스>가 지난 23일과 지난 6월 두 차례 인터뷰했다. <셔틀콕> 제작 어려워 연출 그만둘 생각도“그땐 내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스물다섯 살 때죠
가로세로가 각각 60~70센티미터(cm) 가량인 대형 나무팔레트 위에 흰색, 노란색, 주황색, 빨강색, 암적색, 검정색 등의 에나멜페인트 통 10여개가 놓여 있다. 목장갑을 낀 손에 길이 30cm, 너비 6cm 가량의 붓을 움켜쥐고 흰색, 진녹색, 주황색 페인트를 조금씩 덜어 팔레트에서 섞자 금세 에메랄드빛(녹색)이 만들어진다. 붓질 몇 번 만에 바위 위에 수풀이 생기고 계곡에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작업 중인 벽화주변을 맴돌던 동네 꼬마가 “나도 하고 싶어...”라며 칭얼대자 “옷에 (페인트) 묻는다”고 인자한 웃음으로 달래던
러시아 출신 한국학자 박노자 교수, 소설가 공지영, 가수 신해철,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강한 개성을 지닌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승호(48) 작가와 인터뷰집을 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전업 인터뷰작가’인 지씨는 2002년 ‘비판적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부터 최근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낸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30여권의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0여명의 ‘뉴스메이커’에게 집중 질문을 던진 지승호 작가를 이번엔
“보통 성폭행 사건이 나고 6개월 정도 지나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모두 안정 상태로 접어들게 돼요. 그런데 나주사건은 가족 전체가 언론에 너무 많이 시달렸어요. 살던 집과 아빠의 직장은 물론이고 아이의 학교와 일기장까지 모두 노출됐죠. 아빠는 언론이 자기들을 매장시켰다는 분노에 아직도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잔대요.”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에서 '나주 성폭행사건'을 검색하면 관련 뉴스 2800여건이 뜬다. 이 중에는 피해자가 지난해 8월 성폭행 당하고 구조된 직후 온몸에 상처 입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해진 후 일어나 해 뜨는 걸 보고 잠든 적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를 달랑 들어내도 먼지 한 톨 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은? 기름 낀 얼굴, 떡이 진 머리,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난 잉여다’를 되뇐 경험은?청년 실업자가 넘치는 사회, 어디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쓸모없는 인간’ 혹은 ‘남아도는 인간’이란 의미의 ‘잉여’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잉여들의 이야기를 쓰는 잡지’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2월 창간돼 최근까지 13호를 낸 <월간잉여>
한국방송(KBS)의 <다큐멘터리 3일>은 72시간, 만 사흘 동안 하나의 대상을 카메라로 밀착 취재한다. 그 대상은 때 놓친 학업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방송통신대의 공부벌레들이 되기도 하고, 필리핀 가난한 마을에 희망을 주는 설탕공장이 되기도 하고, 울릉도 나리분지에 숨어있던 설국(雪國)이 되기도 한다. 약 45분 방송으로 압축된 72시간은 갓 지어 꾹꾹 눌러 담은 밥처럼 따뜻하고도 밀도 있는 감동을 시청자에게 선사한다. '할 말 못하는 방송'에서 덜 비겁해지려는 선택2007년 5월 첫 방송된 후 지난 6월 300회를 넘긴 <다큐 3
“돈 천 석, 사람 천 석, 글 천 석이라는 뜻으로 ‘삼천 석 댁’으로 불리며 호의호식하고 살 수 있는 집안이었지. 그래도 나라를 되찾으려고 가문의 사람들을 다 이끌고 추운 겨울 망명을 떠나지...그게 시작이었어.” 서울 대림동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서 지난 6월 2일 <단비뉴스> 기자를 맞이한 김시진(78)씨는 깊이 주름진 얼굴과 손에 힘을 주어가며 집안 어른들의 ‘독립투쟁’을 설명했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이끈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4)의 종증조손(從曾祖孫)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종증조부등이 독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지난해 4·11총선의 최대수혜자로 부상했다가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을 거치며 ‘진보 분열의 핵’으로 추락했다는 지적을 받는 통합진보당. 이 정당의 비례대표로 의회에 진출한 뒤 ‘종북’ 논란과 자격심사 파동에 휘말리며 시련의 세월을 보낸 김재연(34)의원은 지난달 30일과 5월 28일 두 차례에 걸친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하게 낭비한 시간’을 안타까워했다.'위대한 진출' 이후 부닥친 통진당의 위기“저는 (북한 추종세력을 일컫는) ‘종북’이 아닙니다. 학생 때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
‘지방에서도 서울 문화를 접하도록 하겠다.’ 2008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말이었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는 칼럼에서 그 발언을 소개하면서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끌어와 비판했다. 문화란 인간의 삶이 표현되고 있는 행위와 행위를 이루어내는 전 과정의 사고,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의 현상을 말한다는 것이다. 만약 유 장관이 넓은 의미의 문화를 말한 것이라면 지역의 삶 전체를 폄훼하는 망언이다. 그러나 유 장관이 ‘문화’를 좁은 의미로 이해했다면 이 발언은 일면 옳다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문화’는 ‘교양’이나
“국정원 사태는 진보냐 보수냐 구분 없이 다 같이 분노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국민들이, 야당 지지자건 여당 지지자건 상관없이 다 분노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서울시청 앞 광장이 다시 ‘촛불’의 열기로 뜨거워진 여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41) 변호사는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와 민변 회원들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여당후보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했던 이른바 ‘댓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