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주주의 이끄는 청년, Z를 만나다] ① 네팔의 새 도로를 내가 닦겠다 – 라쉬미 아차르야

2025년 내내 국제 뉴스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등 반민주주의와 국수주의, 또는 제국주의 지도자들이 쉼 없이 등장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극우·혐오 세력이 준동하거나 집권하기도 했다.

다만, 세계 민주주의가 퇴행만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네팔, 인도네시아, 미얀마, 마다가스카르 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주축은 Z세대 청년이다. 미얀마 청년들은 군사독재에 대항한 무장투쟁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년 넘게 청년층이 주도하는 반정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청년들을 주축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9월 네팔 청년들은 부패 정권을 무너뜨렸다.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 운동, 저항을 이끄는 각 나라의 청년을 <단비뉴스>가 온라인으로 만났다. 국내 유력 언론이 크게 다루지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구촌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음을 2025년의 기록으로 남긴다. (편집자주)

 

라쉬미 아차르야(18)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살고 있다. 태어난 곳은 카트만두에서 60킬로미터(km) 떨어진 시골이지만, 8살 때 카트만두로 이사 왔다.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었던 부모는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을 떠났다.

부모의 노력과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라쉬미는 지난 여름, 카트만두에 있는 대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네팔의 낙후된 도로를 개선하겠다는 꿈을 품은 라쉬미는 토목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삼촌의 영향도 받았다.

네팔 카드만두에 거주 중인 라쉬미 아차르야 (18). 그는 네팔 Z세대 혁명 현장에 있었다. 라쉬미 제공.
네팔 카드만두에 거주 중인 라쉬미 아차르야(18). 그는 네팔 Z세대 혁명 현장에 있었다. 라쉬미 제공

라쉬미의 마음은 대학에 관한 소소한 기대로 부풀었다. 대학 1학년 첫 학기 개강은 10월 말로 예정돼 있었다. “빨리 대학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소설 읽는 걸 좋아하니까, 기회가 있으면 문학 공부도 해보고 싶었고.” 평화롭고 설레는 가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개강을 기다리던 중, 혁명이 일어났다.

부패한 정부에 분노한 청년들

지난 9월 8일, 카트만두에서 청년들을 주축으로 첫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의 핵심 요구는 두 가지였다. 첫째, 고질적인 기득권의 부패 문제 해결이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2024년 네팔의 부패 인식 지수는 34점이다. 180개국 중 107위다. 세계 평균은 대략 43점인데, 네팔은 10년째 20~30점대에 머물고 있다. 부패 문제를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2년 전 고위층의 서류 위조 사건이다. 부탄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재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 에너지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뇌물을 받고 서류를 위조한 것이다.

둘째, 소셜미디어 차단 조치다. 시위 발생 사흘 전인 9월 4일, 네팔 정부는 허위정보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자국 내 소셜미디어 폐쇄를 결정했다. 조치가 즉각 발동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네팔에서 소셜미디어는 자유로운 소통을 바라는 청년층은 물론 일상을 영위하는 서민들에게도 필수 도구다. 국제 대중운동 매체인 <피플스 디스패치>(People's Dispatch)는 소셜미디어 차단 결정에 대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 정보를 교환할 수단을 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9월 4일, 네팔 정부는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Youtube), 엑스(X) 등 26개의 소셜미디어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FreePik
9월 4일, 네팔 정부는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Youtube), 엑스(X) 등 26개의 소셜미디어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FreePik

이는 해외 이주 노동에 크게 의존하는 네팔 경제 구조와 관련이 있다. 네팔 국외고용부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120만 건 넘는 이주노동 허가서를 발급했다. 2024년 기준, 해외에서 일하는 이들이 네팔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은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66%를 차지한다.

디스코드, 청년들의 해방구

정부가 금지하려던 그 도구를 이용해, 반정부 시위가 번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소셜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를 통해 모였다. 2015년 미국에서 출시한 소셜 서비스 디스코드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1억 5천만 명이 넘는다. 메신저뿐만 아니라 파일 공유, 음성 및 영상 통화 기능도 제공한다. 최대 50만 명이 참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해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네팔 청년들은 대규모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디스코드의 특성을 활용했다. ‘부패에 반대하는 청년들’(Youths Against Corruption)이라는 이름의 디스코드 커뮤니티가 열리자 순식간에 15만 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참여하자거나,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시위를 기획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9월 8일 카트만두의 대형 교차로 마이티가르에서 평화 시위를 열겠다는 계획까지 마련했다.

디스코드 커뮤니티, ‘부패에 반대하는 청년들’은 9월 시위의 계획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디스코드 갈무리
디스코드 커뮤니티, ‘부패에 반대하는 청년들’은 9월 시위의 계획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디스코드 갈무리

돌 하나에 날아든 실탄

마침내 9월 8일이 왔고, 집회는 계획대로 평화롭게 열렸다. 정오 무렵, 상황이 돌변했다. 네팔 금융 중심지인 뉴 바네슈워 길목에 설치된 경찰 통제선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로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강경 진압으로 충돌이 격화되자 경찰은 군중을 향해 실탄을 발포했다.

경찰의 발포 이후 시위 양상도 변했다. 시위대는 정부 청사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부패 척결, 그리고 소셜미디어 차단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권교체 요구로 이어졌다. 시위가 격화되자 정부는 소셜미디어 차단령을 철회했지만, 카트만두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을 취하면서도, 시위 진압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날 하루 동안,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19명이 숨졌다.

평화롭던 불꽃이 들불처럼 번지던 날, 라쉬미는 카트만두를 떠나 시골 고향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모처럼 친척을 만났다. 이때 시위를 알리는 뉴스, 그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심장이 뛰었던 그 순간을 라쉬미는 잊을 수 없다. “시위대는 돌 하나를 던졌지만, 경찰은 총을 쏴 사람을 죽였잖아요. 그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다음 날인 9일 새벽의 해가 뜨자마자, 라쉬미는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갔다.

시위대가 점거한 카트만두의 바네슈워 거리. 라쉬미는 그날 카트만두의 모든 도로가 시위대로 막혀 도보로만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라쉬미 제공
9일에 촬영한 카트만두의 바네슈워 거리. 라쉬미는 카트만두의 모든 도로가 시위대로 막혀 도보로만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라쉬미 제공

시위 이틀째를 맞은 9일 오전 9시 무렵, 라쉬미가 내린 버스 터미널에서도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시위대는 도로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누가 권하지 않았어도, 이제 막 카트만두에 도착한 라쉬미는 가장 처음 만난 시위 무리와 동행했다. 그도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오전 11시쯤, 라쉬미는 총성을 들었다. 그가 구호를 외치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경찰이 쏜 것이었다. 5분 간격으로 3차례 총성이 울렸다. 한 번 사격 할 때마다 5~6발가량 발포한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시위 군중은 흩어졌다. 라쉬미도 도로를 따라 달렸다. "아비규환이었어요. 두려움 말고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죠."

불타버린 정부, 의회, 법원

라쉬미는 터미널에서 벗어나 40분간 이동했다. 낮 12시 무렵, 행정부와 입법부가 자리 잡은 ‘사자 궁전’(싱하 두르바르)에 다다랐다. 궁전이라 불릴 정도로 호화로운 이곳에는 총리 관저와 여러 정부 부처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불에 타고 있었다. 라쉬미보다 먼저 사자 궁전에 도착한 시위대가 불을 질렀다. 궁전을 지키던 무장 병력은 총을 내려놓고 군중을 지켜보기만 했다.

라쉬미가 사자 궁전에 진입하며 촬영한 영상. 라쉬미 제공

라쉬미는 다시 네팔 대법원으로 향했다. 대법원은 궁전에서 5분 떨어진 곳에 있다. 오후 1시 무렵 도착하여 목격한 대법원 청사도 불에 타고 있었다. 하늘엔 서류가 흩날렸다. 일부 시위대는 법원에서 끄집어낸 집기를 부수거나 불에 태우고 있었다. 라쉬미는 대법원에서 20분 떨어진 카트만두 지방법원도 찾았다. 시위대가 이미 휩쓸고 간 자리에는 매캐한 연기와 잔해만 남아있었다.

9일 대법원의 모습. 집기를 파괴하는 시위대 뒤로 연기가 나고 있다. 라쉬미 제공
9일 대법원의 모습. 집기를 파괴하는 시위대 뒤로 건물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라쉬미 제공

오후 2시쯤, 라쉬미는 의회를 찾아갔다. 시위대와 취재진이 뒤엉켜 있었고, 청사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청사 창밖에서 찢어진 네팔 국기를 휘날리거나, 물건을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담벼락엔 ‘우리가 피를 흘렸으니, 당신들도 피를 흘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라쉬미는 파괴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만류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막을 수 없었어요. 오히려 (왜 파괴를 막느냐며) 나를 다그치는 사람도 있었죠.”

라쉬미는 파괴된 도심을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마음은 좋지 않았다. 시위대가 불태운 법원, 의회, 정부의 서류 가운데는 그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부패의 증거’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분노에 동의하지만, 파괴까지 찬성할 순 없었다. “너무 슬펐어요. 특히 궁전은 (네팔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곳이고, (권력자만이 아니라) 네팔 국민 모두의 것이잖아요. 파괴해선 안 되죠.”

시위대의 파괴를 막으려는 일부 시민들이 네팔의 정부 부처 가운데 하나인 고고학부(Department of Archaeology) 청사 앞을 지키고 있다. 라쉬미 제공
시위대의 파괴를 막으려는 일부 시민들이 네팔의 정부 부처 가운데 하나인 고고학부(Department of Archaeology) 청사 앞을 지키고 있다. 라쉬미 제공

온라인으로 선출한 총리

정부, 의회, 사법의 상징이 모두 불타 버린 9일, 샤르마 올리 총리는 사임했다. 몇몇 장관들도 줄줄이 물러났다. 쫓겨난 총리는 일단 군부대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심지어 정치적 부활도 노리고 있다. 이제 전직 총리가 된 샤르마 올리는 소속당인 공산주의 계열 정당 ‘네팔 공산당-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UML) 대표 자격으로 여전히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UML은 오는 12월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시위 사흘째인 10일. 청년들이 주축이 된 혁명 참가자들은 디스코드 커뮤니티에서 임시 총리를 투표로 선출했다. 사회운동가, 야권 지자체장 등 5명이 후보에 올랐고, 시민 7700여 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2017년 은퇴한 네팔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 수실라 카르키(73)가 50%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임시 총리 투표 역시 ‘부패에 반대하는 청년들’ 커뮤니티에서 이뤄졌다. 디스코드 갈무리​
임시 총리 투표 역시 ‘부패에 반대하는 청년들’ 커뮤니티에서 이뤄졌다. 디스코드 갈무리​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온라인 투표로 총리 선출을 확정할 순 없었다. 11일, 임시 지도자 선정을 위한 긴급회의가 육군 본부에서 열렸다. 내각제 국가인 네팔에서 총리에 비해 실권은 없지만, 여전히 국가수반으로 인정받고 있던 파우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했다. 군부를 대표하는 시그델 육군 참모총장이 배석했다. 이 자리에 청년 대표 10여 명도 참석했다. 네팔 청년들은 임시 지도자 선정 회의에 참석할 자신들의 대표를 디스코드 커뮤니티에서 투표로 선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청년 대표들은 전날 디스코드 커뮤니티에서 진행한 투표 결과를 그대로 따랐다. 청년 대표에 의해 추천된 수실라 카르키는 다음날인 12일, 임시 총리에 정식으로 임명됐다. 뒤이어 파우델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내년 3월 5일을 총선일로 지정했다.

현재 카르키 임시 총리는 네팔 정국을 수습하며 직무를 수행 중이다. 궐위 상태인 각 부처 수장들을 임명해 과도 내각을 구성하고, 공정한 총선 실시를 약속했다. 72명이 사망한 시위의 진상조사와 유족 보상도 약속했다. 시위가 잦아든 지금, 임시 총리의 행보를 지켜보는 라쉬미의 마음은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다. “대체로 만족스럽긴 한데, (간접 선출 방식인 의원내각제가 아닌) 즉각적 직선제 전환 요구에 대해 총리가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한 게 아쉬워요.”

수실라 카르키는 과거 부패 사건에 대한 엄격한 판결로 네팔 시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출처 주네팔 미국 대사관
수실라 카르키는 과거 부패 사건에 대한 엄격한 판결로 네팔 시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출처 주네팔 미국 대사관

그 배경에는 네팔의 복잡다단한 정치 격변이 있다. 왕정국가였던 네팔은 1940년대 이후 공산주의 계열인 ‘네팔 공산당’이 창당됐다. 이후 레닌주의 또는 마오주의 등 이념을 중심으로 공산당 계열 내부에서 분열과 이합집산이 반복됐다. 그러던 1994년 군주제 종식을 내걸고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MC)가 새롭게 창당했고, 1996년 왕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무려 10년간 계속된 내전은 2006년 평화협정으로 일단락됐지만, 그 영향을 받은 의회는 2008년 239년간 이어진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지금까지 17년째 네팔은 의원내각제를 시행했지만, 정치적 불안정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7년 동안 14차례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집권하면 2년도 못 채운 것이다. 싱가포르 국립대 산하 남아시아연구소(ISAS)는 이번 사태를 다룬 보고서에서 “부패와 족벌주의, 분열된 정치가 (Z세대의) 환멸을 일으켰다”라고 분석했다.

불공정에 대한 증오

네팔 Z세대 혁명을 일으킨 더 근본적 문제가 있다. 호주의 국제문제 연구기관인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부실한 교육 제도와 높은 실업률이 네팔 청년을 저임금과 낮은 생활 수준에 고착시켰다. (이로부터 형성된) 청년들의 오랜 불만이 소셜미디어 차단과 국가의 폭력 대응에 의해 폭발했다”라고 분석했다.

네팔 정치의 불안정성은 부패와 분열이 연결된 결과다. 이번 무정부 상태를 자초한 집권 세력 UML도 그 전형이다. 2022년 말, 마오주의 세력인 MC는 레닌주의 세력인 UML과 연정을 구성하여 집권했지만, 지난해 7월엔 UML이 연정을 파기하고 ‘네팔 의회당’과 새로운 연정을 구성했다. 연립내각의 파트너가 수시로 바뀌는 동안, 강화된 것은 기득권 세력의 특권뿐이었다.

이를 냉소하는 네팔의 신조어 또는 유행어가 있다. ‘네포키즈’(nepo-kids)다. 족벌주의(nepotism)와 아이(kids)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성하여, 사치를 부리는 특권층 자녀를 지칭하는 데 쓰인다. 네팔 청년들은 #Nepokids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부유층 젊은이의 호화 생활을 폭로하거나 비판해왔다.

미스 네팔 출신 슈링칼라 카티와다(오른쪽)는 전 네팔 보건부 장관 비로드 카티와다(가운데)의 딸로, 네포키즈의 상징으로 지목됐다. 슈링칼라 카티와다 SNS 갈무리
미스 네팔 출신 슈링칼라 카티와다(오른쪽)는 전 네팔 보건부 장관 비로드 카티와다(가운데)의 딸로, 네포키즈의 상징으로 지목됐다. 슈링칼라 카티와다 SNS 갈무리

“부패 행위를 통해 기득권에 오른 사람의 자녀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면서, 불공정에 대한 (평범한 네팔 청년들의) 증오가 시작된 거죠.” 라쉬미도 그런 영상과 글을 많이 봤다. 직접 그 실체를 경험한 적도 있다.

컴퓨터 공학에 관심이 많은 라쉬미의 남동생은 지난 6월, 정보통신 특성화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그런데 합격 통보 이후 얼마 뒤, 학교는 동생의 입학을 거절한다는 새로운 결정을 통보했다. 아버지와 동생은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항의했다. 그곳에서 장학생으로 합격했으나 입학을 거부당한 다른 학생들을 만났다.

항의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교직원들은 “우리는 정책을 따를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중에 입학 명단을 보니, 학교 재단 관계자의 자녀, 정부 고위직의 친인척 등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들의 입학을 보장하려고, 정식으로 합격한 장학생들을 내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남동생은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동생이) 집에 부담 안 주려고 장학금 주는 학교에 지원했는데, 부패 때문에 (결국 입학을 거절당하고) 다른 학교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들어갔어요. 정말 많이 속상하죠.” 그 일을 겪은 뒤, 권력층 부패가 곧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라쉬미는 알아차렸다. 이후 라쉬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네포키즈 등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 시위에 참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시민의 손으로 지도자 뽑는 한국이 멋져요

시위는 잠시 잦아들었지만, 라쉬미의 소셜미디어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디스코드를 활용해 혁명 주역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지역민의 소식과 요구를 전달하고, 지역민들에겐 혁명 커뮤니티에서 오간 이야기를 정리해 전달한다. 시위로 파괴된 도시를 함께 복구하자고 독려하기도 한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몫을 해야 한다고 라쉬미는 생각한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일을 할 겁니다.”

유혈 사태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라쉬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상담 센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라쉬미 SNS 갈무리
유혈 사태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라쉬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상담 센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라쉬미 SNS 갈무리

라쉬미의 혁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정치 체제가 있다. 국회의원들끼리 총리를 정하지 않고, 시민이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는 나라다. “내각제를 운영하는 네팔에선 (정치인들의) 흥정으로 인한 내각 붕괴가 자주 일어나는데, 직선제를 하게 되면 정부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는 한국의 정치를 선망한다. “시민들이 직접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한국이 멋져요.”

제가 도로를 만들면 네팔로 오세요

직선제 시행과 더불어, 라쉬미는 “평화적이고, 청렴하고, 발전된 교육 수준을 가진 네팔”을 바란다. 특히 지역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지금껏 (정부는) 동부지역만 개발해 왔어요. 그래서 나머지 지역은 많이 낙후돼 있거든요. 심지어 네팔 서부지역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어요.”

네팔의 지리적 제약, 수도권 중심 개발로 인한 지역 불균형 문제를 라쉬미는 어릴 때부터 보고 겪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심도 그 현실에서 비롯했다. 낙후된 마을과 지역마다 도로를 짓고 사회 기반 시설을 만들어 사람들의 복지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토목공학과 신입생, 라쉬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기자에게 제안했다. “나중에 내가 네팔에 도로를 지으면, 당신이 와서 차를 몰고 그 도로를 달리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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