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유권자가 말한다] ① 기후재난 최전선의 사람들
* 이 기사는 단비뉴스에서 우수 콘텐츠로 선정돼 2025년 5월 단비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민가를 휩쓴 산불, 열사병을 부른 폭염, 반지하방을 덮친 홍수.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기후 대응은 국민의 생존과 경제적 안정을 좌우할 시대적 과제가 됐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 출범할 정부는 과연 이런 과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단비뉴스>는 기후 대응에 삶이 좌우되는 대표적 시민들을 ‘기후유권자’로 보고, 이들이 대선 후보에게 바라는 것을 지상 중계한다. 기후재난의 최전선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 지속 가능한 에너지전환을 위해 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 차례에 나눠 전한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① ‘어묵 먹방’ 대신 위태로운 노점상 삶에 관심을
박윤선(71) 씨는 손수레(리어카)를 개조한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튀김 등을 파는 노점상이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도로에서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일주일에 닷새를 영업하며 40여 년 동안 자녀를 키우고 생계를 꾸려 왔다. 긴 세월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요즘은 매해 여름이 다가오는 게 걱정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 비가 아주 많이 와서 여기 신촌길이 온통 물에 잠겼던 적이 있어요. 원래 노점이랑 천막을 바람에 날아가지 말라고 물통 같은 것들로 고정해 두는데, 그게 다 물에 둥둥 떠내려가 버린 거야. 작년 여름에는 태풍이 와서, 옆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이 죽을 뻔하기도 했어요. 나무로 된 리어카를 쓰다 보니 바람에 리어카가 차도로 넘어가 버린 거야. 리어카를 지키려고, 넘어가지 말라고, 그걸 안고 있다가 그만 거기에 깔려 버린 거지.”
폭우에 집기 떠내려가고 강풍에 사고당하기도
지난 13일 신촌역 인근 서부지역노점상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박 씨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리어카에 깔렸던 노점상은 박 씨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는데, 사고 후 몇 달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신촌역 일대는 2018년 여름 폭우로 침수됐고, 지난해 여름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여러 차례 닥쳤다. 고령층이 많은 노점상은 폭우나 태풍 등 자연재해에 특히 취약하다. 빈곤사회연대 등의 2022년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 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 토론회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국내 노점상의 평균 연령은 61.5세고, 60대(37.7%)와 70대 이상(20.8%)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박 씨는 “사고가 날까 무서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영업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뜨겁고 변덕스러워진 날씨 탓에 여름 장사를 접는 날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7~8월은 영업하는 날이 두 달 합쳐서 열흘도 못 된다고 한다. 박 씨는 “5년, 10년 전에는 여름이라도 저녁에는 선선해서 장사할 수 있는 날이 꽤 있었는데, 이제는 열대야(기온이 25도 이상인 밤) 때문에 영업 자체를 못 하는 날이 더 많다”며 “노점상 중에는 장사를 포기하고 알바를 하면서 여름을 버티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많은 노점상이 한여름에 무리해서 장사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해 8월 발표한 폭염 리서치 결과를 보면 최근 10년(2014년~2023년) 동안 전국 주요 25개 도시별 평균 폭염 발생 일수는 51.08일이었다. 그 이전 10년(2004년~2013년)의 20.96일에 비해 30일가량 늘어난 것이다. 폭염은 일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를 넘는 상태를 말한다. 또 한 시간 누적 강수량이 72밀리미터(mm) 이상인 극한 호우의 빈도는 1970년대 연 9.7일에서 2020년대 연 22.3일로 크게 늘었다. 기후과학자들은 화석연료 남용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올라가면서 폭염, 폭우, 태풍, 혹한, 산불 등 기후 관련 재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전국민주노점상연합 등 관련 단체들은 고정형·이동형 마차, 오일장 노점, 푸드트럭을 합쳐 전국에 25만~30만 명의 노점상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법 외의 존재’로 취급받는 노점상에게는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 씨는 “노점상이면 덥고 추운 건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 세금도 안 내면서 바라는 게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우리도 당당하게 영업 신고하고 세금 내고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에게 “노점상의 삶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늘 노점에서 어묵이며 떡볶이 먹는 사진을 찍으면서, 정작 노점상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관련 공약을 내주는 사람이 있어야 좋은 법인지 나쁜 법인지 평가를 하지 않겠어요? 우리도 유권자고 국민이잖아.”
한 달 5만 원이 없어 감수하는 ‘불면의 밤’
지난 11일 오후 3시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좁은 골목길 안쪽의 플라스틱 의자에 주민 2명과 함께 앉아 있던 윤성근(68) 씨가 자신의 방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10여 개 쪽방이 있는 건물 안쪽에 위치한 그의 방은 낮인데도 어두웠다. 그가 백열등을 켜자, 성인 남성이 다리를 뻗고 눕기도 어려워 보이는 좁은 공간에 전기밥솥과 프라이팬 등 가재도구가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바로 선풍기를 틀었다. 이날 밖은 선선한 봄 날씨였지만, 방안은 열기가 느껴졌다. 윤 씨는 “여긴 환기가 잘 안돼 덥다”며 “5월부터는 선풍기를 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시민 참여를 통한 사회·경제적 환경 여건별 폭염 체감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여름철 쪽방의 최고온도는 34.93도로, 단독주택 32.27도, 아파트 31.81도보다 높았다. 대다수 건물이 슬레이트나 얇은 콘크리트 등으로 구성돼, 내부로 들어오는 열을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 씨는 월세로 25만 원을 낸다고 했다. 수도료와 전기료가 포함된 금액이며, 보증금은 없다. 에어컨을 갖춘 쪽방도 있는데, 5만~10만 원을 더 내야 하므로 더위를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기초생활수급비에서 월세를 내면 40만 원 남는데, 반찬 사 먹고 생필품 사기에도 돈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쪽방촌에 사는 주민 대부분은 건강 문제 등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기초생활수급비에 의존한다. 수급비는 가구의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2025년 기준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월 76만 원 정도다. 윤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지만, 30년 전 횡단보도를 건너다 뺑소니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고, 허리에 후유증이 남아 직장 생활을 평탄하게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윤 씨는 “겨울에는 연탄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만한데, 여름에는 더워서 잘 때 말고는 방에 못 들어온다”고 말했다. 열대야에는 잠을 청하기 어려워 근처 공원을 전전한다고 한다.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 공동 세면대의 수도꼭지 하나로 다른 입주자와 취사까지 해결해야 하니 제대로 씻기도 어렵다. 그는 “바퀴벌레가 이 작은방에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임대주택에 가면 좀 낫겠는데 보증금 때문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다음 정부에서 임대주택 보증금을 싸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름 구조 현장, 소방관 방화복 속은 50도
청주기상지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4 충북 연 기후 특성’ 자료를 보면 지난해 충북의 평균기온은 13.8도로,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를 기록했다. 평년 대비 2.2도 높았고, 종전 가장 더운 해였던 2023년의 평균기온 12.9도보다도 0.9도 올랐다. 27년 동안 소방관으로 일하며 폭염 피해 구조 활동을 벌여온 제천소방서 예방안전과 임태규(52) 주임은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주임은 여름철 구조 현장에서 노인이나 야외 노동자를 특히 많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산이나 밭에 일하러 간 노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가족이 찾으러 나가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주변 행인이 발견해 신고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한다. 또 금속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용접과 절삭 기계가 높은 열을 발생시켜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사례도 많다. 그는 “열악한 주거 환경도 온열질환으로 이어진다”며 “에어컨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은 단독주택에서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임 주임은 또 “여름철 폭염이 소방관을 가혹한 환경으로 몰아넣는다”고 말했다. 방화복과 소방 장비가 무거운 데다, 여름철에는 방화복을 입었을 때 다른 계절보다 더욱 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과 구조 활동을 할 때 소방관이 착용하는 방화복의 무게는 20킬로그램(kg)에 달한다. 기온이 35도 이상일 때 통풍이 안 되는 방화복을 입고 화재 진압 현장에 출동하면 방화복 내부 온도는 50도 가까이 된다. 임 주임은 “소방 장비가 경량화되고, 인력이 충원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충북소방지부 제천지회장인 연병호(56) 제천소방서 주임은 소방관 4교대 근무제 도입, 퇴직 후 즉시 연금 지급, 건강검진 지원을 희망했다. 그는 “주 56시간 일하는 현재의 3조 2교대를 주 42시간 근무하는 4조 2교대로 바꿔 소방관의 과중한 업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방관은 고위험 직무로 조기에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 퇴직 후 즉시 연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경제적 불안정성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연 주임은 “체력이 달려서 60세까지 현장에서 일하기는 어려운데, 60세에 퇴직하더라도 공무원연금이 지급되는 65세까지는 수입이 없다”며 퇴직 후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는 연금과 건강검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염 속 위협받는 옥외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15년째 서울과 경기도에서 에어컨 설치 일을 하는 이진영(40) 씨는 “작년부터 날씨가 확실히 더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할 때 집마다 온도를 확인하는데, 고객들도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에어컨이 없는 실내·외에서 2~3시간씩 땀을 흘리며 일하는 그에게 여름철 폭염은 생존의 문제다. 하루에 300밀리리터(ml) 생수 10병과 이온 음료, 커피 등을 마셔도 더위를 식히긴 어렵다. 이 씨는 “6월부터 더위에 노출되기 시작해 7월 말이면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다”고 말했다. 폭염일수가 늘면서 에어컨 교체·신규 설치 수요는 지속적인 증가세다. 그는 “하루 설치 가능 대수가 7~8대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성수기인 7월 말까지는 사실상 휴무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폭염과 과로 속에서 위협받는 안전이다. 이 씨는 “여름철 건물 옥상에서 작업하다 더위에 쓰러지거나, 더위로 인해 일시적으로 눈을 감고 정신을 못 차리는 동료들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층 아파트 난간에서 하는 작업은 항상 위험하다. 실외기를 설치할 때 헬멧과 안전띠를 착용하지만, 안전 고리를 난간에 걸기 때문에 때때로 추락사가 발생한다. 2022년 고용노동부 발표를 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에어컨 설치 기사 추락사가 8건 발생했다. 이 씨는 “안전 고리를 고정하려면 벽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멍을 내야 하는데 집주인들이 꺼린다”고 말했다. 그는 “폭염에 노출된 현장과 괴리된 법이 아닌, 현실에 맞는 산업안전 교육과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며 “이런 법안을 만들겠다는 후보가 있다면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사무실 청소와 건물 외벽 청소 등을 하는 전문업체 ‘몽키힙’을 운영하는 한승필(35) 대표는 기후변화와 함께 변덕스러운 날씨가 잦아지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무서운 것이 ‘스콜’이다. 스콜은 짧고 강하게 쏟아지는 국지성 집중호우로, 한여름에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스콜로 인해 외벽 청소용 ‘스카이차’에 올라탄 작업자들이 시야 확보를 못 해 위험에 처한 경험도 있다. 한 대표는 “기후위기 대응과 노동자 안전을 함께 고려한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있다면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콜 같은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에 대비하려면 고층 외벽 작업에 특화된 실시간 기상 정보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온도와 풍속, 강우 가능성 같은 정보를 모바일로 신속히 전달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악천후 속에서 노동안전 지킬 ‘작업중지권’
민간 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전경대(41) 씨는 충남 보령시에서 쓰레기를 수집해 운반하고 있다. 미화원들은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택가와 관광지 일대를 수거차를 타고 돌며 작업한다. 휴일에도 순번제를 운영하며 주 5일 이상 일한다. 전 씨는 “제때 수집하지 않으면 시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생각에, 급작스러운 악천후에도 우비를 입고 그냥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10년째 미화원 일을 하는 전 씨는 갈수록 날씨가 변화무쌍해지고 강도 높은 폭우와 폭설 등을 만나는 날이 많아지면서,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할 때 비나 눈이 오면 시야 확보가 어렵고, 차량에 타고내릴 때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폐기물은 물을 머금어 더 무거워지고 작업 시간은 늘어난다. 폭우, 폭설의 강도가 높을수록 작업 중 사고가 일어나고 미화원이 다칠 가능성이 커진다. 전 씨는 “이런 상황에서 미화원들을 지킬 방법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전 씨는 “법에는 명시가 돼 있지만 그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서 저희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단계는 아니다”며 “‘알아서 쉬어라’가 아닌, 작업중지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정이 협의해서, 악천후에는 명확한 조건을 만들어서 조금 더디더라도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저는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튼튼한 고속도로와 안전한 자전거도로를
40년째 고속버스를 운전 중인 김영진(74) 씨는 도로 위에서 기후변화를 체감한다. 그는 “옛날에는 삼한사온(사흘 춥고 나흘 따뜻함)이 있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불시에 그냥 막 집중적으로 눈이 내리고 그런 영향이 있는 것 때문에 좀 힘들다”고 말했다. 날씨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돌발성 눈, 비가 많아져 버스 운행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얘기다.
폭우와 폭염 등 극한의 날씨는 김 씨가 늘 다니는 고속도로를 위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스팔트에 빗물이 많이 스며들면 도로 꺼짐과 갈라짐이 생길 수 있고, 시멘트는 강한 열을 받으면 팽창해 터지기도 한다. 서울과 충북 제천을 오가며 주 5일 하루 4시간 이상 운전하는 김 씨는 “변하는 기후에 맞게 더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 달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그는 “중앙고속도로 특정 구간에서만 도로포장 공사를 작년과 올해 두세 번이나 봤다”며 “그만큼 부실 공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자전거로 퇴근하는 회사원 오경훈(47) 씨는 “비 오는 날에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1주일에 세 번 회사가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서 20km 떨어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집까지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이용해 퇴근한다. 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을 피하고 운동도 겸하기 위해서다. 회사에 샤워실이 없어 출근길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그가 자전거를 타기 꺼리는 때는 비 오는 날이다. 오 씨는 "청계천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보행자들도 자주 다니는 데다 비까지 오면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된다"며 "자전거도로가 중간에 뚝 끊기는 경우도 있어 당황스러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들이 자전거도로와 보행로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책을 펼치고,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서울시에 설치된 자전거도로 1363km 중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도록 설치한 자전거전용도로(인도)와 자전거전용차로(도로)는 모두 269.7km로 19.8%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자전거와 보행자,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혼합형 도로여서 자전거 이용자가 보행자나 차와 충돌할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찜통’ 조리실에서 12시간, 씻을 곳도 없는 급식노동자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생식당에서 만난 20년 차 A(63) 조리사는 “5년쯤 전부터 급격한 추위와 더위로 노동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폭염이 심해진 여름이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방수 앞치마 긴 거 입고, 모자 쓰고, 토시 하고, 장갑 두 장을 끼고, 마스크 끼고 일을 하니까 여름이 아닐 때도 덥지만 한여름에는 정말 힘들죠. 특히 습한 장마철에는 더 그렇고. 에어컨을 틀어도 음식 조리하는 열기가 계속 올라오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요.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더 덥지.”
급식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다뤄 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학교 급식 조리실의 온도는 여름철 50도 이상으로 치솟기도 한다. 더운 환경에서 고강도의 노동이 이어지지만, 휴식을 취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세명대 조리원들은 오전 7시쯤 출근해 재료 다듬기 등의 작업을 시작하고, 저녁 배식을 마친 후 오후 7시쯤 퇴근한다.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휴식 시간이 있는데, 조리원 11명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은 성인 3명 남짓이 누울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A 조리사는 ‘냉난방 시설 확충’과 ‘휴게실 확장 및 샤워실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조리실 내부 냉방설비는 작은 천장형 에어컨 하나여서 더위를 식히기 어렵고, 급식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 없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종일 일하기에, 몸을 씻거나 열을 식힐 공간이 절실하다고 A 조리사는 말했다. A 조리사는 “평균 나이 60대 이상의 조리사들이 종일 땀 흘리며 일하는데, 잠깐이라도 시원하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해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바다, 해양 쓰레기가 슬픈 제주 초등생
제주시 애월읍에 사는 정두리(10) 어린이는 “여름 바다에 갔을 때 물이 뜨거워 놀 수 없었고, 수영할 때 돌 틈에 끼인 플라스틱을 보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립해양조사원 관측 데이터를 보면 2024년 8월 제주의 평균 수온은 28.7도로, 2015년 8월 24.4도에 비해 약 4도나 상승했다. 해양 쓰레기도 해가 갈수록 느는 추세인데, 2023년 제주연구원의 ‘제주 해양폐기물 발생 현황 및 관리 방안’에 따르면 제주에서 수거된 해양 폐기물은 2015년 1만 톤(t)에서 2021년 2만 2082t으로 늘었다.
2022년 6월 기후헌법소원을 낸 ‘아기기후소송단’ 중 한 명이기도 한 정 어린이는 지난 13일 단비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미래의 지구가 많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촌 동생이 태어났는데, 동생이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요. 잘하면 바로잡을 수 있긴 하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정 어린이는 제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개발 사업을 정부가 중단해 주기를 요구했다. 특히 “제주 제2공항이 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2공항 부지의 자연이 훼손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 제주 비자림로 확장 공사 현장에 가서 많은 나무가 베어진 것을 보았다”며 “그게 제2공항 가는 길을 만드는 공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 2공항 건설은 10년째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건설을 찬성하는 측은 관광객 증가로 인한 제주공항의 수용 능력 한계, 제2공항 신설로 창출되는 일자리 등 경제 활성화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제주 환경단체들은 철새 도래지 파괴, 숨골(지하수 함몰 구역) 훼손 등의 환경 파괴와 조류충돌 위험성, 과잉 관광 피해 등에 관해 우려하고 있다.
정 어린이와 같은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에 따른 고통을 생애 전체에 걸쳐 본격적으로 겪을 전망이다. 국제 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와 공동으로 2021년 펴낸 보고서 ‘기후위기 속에서 태어나다’에 따르면 2020년생 어린이는 1960년에 태어난 조부모 세대보다 6.8배 더 많은 폭염, 2배 더 많은 산불, 2.8배 더 많은 홍수 등의 재해를 겪을 것으로 예측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 기후 대응에 미흡하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직 입법 보완을 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