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기후 단일의제 대선 TV 토론회 촉구 기자회견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게 요구합니다. 국민 앞에서 직접 말해 주십시오.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어떤 관점과 철학을 가졌는지, 공약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기후재난으로부터 미래세대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기후 단일의제 대선 텔레비전(TV) 토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수아(21·숙명여대 법학과) 대학생기후행동 활동가가 말했다. 이 활동가는 헌법의 환경조항을 들어 “기후위기를 극복할 정치적 책임이 국가 지도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시민단체 기후정치바람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공동 주최한 회견에는 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등 60여 명이 참여했다.
‘기후 문제 회피하는 후보 가려내자’ 단호한 의지
이날 회견은 이 씨를 비롯한 활동가 4명의 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김주온(34) 기후정치바람 활동가는 “기후위기에 지도자가 어떤 원칙과 정책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며 “기후 문제를 회피하는 후보, 응답조차 하지 않는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판을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57)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후 TV 토론회는 누구도 예외 없이 닥친 위기에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미리 평가하는 중요한 자리”라며 “기후위기에 위협받는 시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대선 후보자들은 토론회에서 정책과 대안으로 답하라”고 요구했다. 신영은(41) 문화연대 활동가는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각종 불평등과 차별, 무비판적 기술·개발 중심주의를 극복하려면 국가 중심의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에게 기후위기 의제가 어떠한 정책보다 급하고 중요한 의제임을 깨닫게 하는 자리를 마련하자”고 말했다.
전세이라(44) 기후정치바람 활동가와 그의 아들 이승호(13·서울 상원초) 어린이는 기자회견문을 번갈아 낭독했다. 이들은 “시민 3명 가운데 1명이 기후위기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위기는 에너지, 일자리, 복지, 안전을 아우르는 전 사회적 위기”라며 “대선 후보들이 다양한 사회 문제를 기후의 시각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회견문에서 “지난 탄핵을 통해 민주주의와 리더의 중요성을 경험했다”며 “이제는 후보자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냉철하게 검증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이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언론사는 기후위기 속에 놓인 인구 소멸, 경제 불황 등 복합적인 위기에 대해 후보자들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 검증할 수 있도록 기후 단일의제의 TV 토론회를 개최하라”고 다시 한번 촉구했다.
재생에너지 확충과 취약층 지원 등 정책도 제안
이날 참가자들은 ‘생물 멸종 비상사태’ ‘우리의 도시도 빙하처럼 무너질지 몰라’ 등 기후재난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힌 실크스크린 손팻말 등을 들고 줄지어 섰다. 또 ‘무한 성장 말고 함께 존재하자’ ‘대선 후보자는 기후 질문에 응답하라’ ‘기후위기 회피하면 대통령 자격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실크스크린은 섬유, 플라스틱에 이미지를 인쇄하는 기법이며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들은 기자회견 전에 실크스크린의 문구를 흰색 티셔츠에 찍어내는 행사도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행사 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 확충, 기후약자 보호 등 대통령 후보자에게 요구할 정책도 제안했다. 이상명(59) 경기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시민 누구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하는 사회에 살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내건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철(34) 환경정의 활동가는 “노인, 저소득층, 주거 취약층 같은 기후위기로 더 피해를 보는, 가혹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도 대선 후보자들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시민환경단체가 기후를 단일의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하려는 시도는 제20대 대선이 열린 지난 2022년에도 있었다. 청년 기후단체 4곳이 연합해 만든 '플랜제로'는 당시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위기 토론회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윤석열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 4명의 캠프도 방문했다. 그러나 이미 계획된 토론회만 진행하겠다는 중앙선방위와 후보자들의 비협조로 성사하지 못했다.
결국 2022년 대선은 물론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기후위기는 주요 의제로 부상하지 못했고, 정부와 정치권의 기후 대응은 계속 미흡했다. 지난해 11월 제29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발표된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CCPI)는 67개국 중 6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한편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치바람은 다음 달 6일까지 누리집 ‘기후묻다’(climateask.org)를 통해 대선 후보에게 제안할 기후 관련 공약과 질문을 받고 있다. 1만 5000명의 의견이 모이면 대선 후보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언론사 등에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후 단일주제 TV 토론회를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