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미디어 날 기자 겸 공동대표 이재표·박소영
지난해 3월 15일 저널리즘센터 <미디어 날>이 창간했다. 미디어 날은 비영리 독립언론이다. 오직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사람 이야기를 중심에 둔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방식의 기사를 지향한다. 이재표(57)와 박소영(47)이 함께 만들어, 대표와 기자를 겸하고 있다. <단비뉴스>가 1월 3일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미디어 날 사옥에서 이들을 만났다.
11년과 22년을 몸담았던 <충청리뷰>
이재표·박소영 기자는 미디어 날 공동대표이자 전 직장 동료다. 두 사람은 충북 청주에 있는 <충청리뷰>에서 오랫동안 지역 기자로 일했다. 청주는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글을 좋아했던 이재표 기자는 대학 졸업 후 언론사 입사 준비를 했다. 기자는 글과 가까운 직업이다. 약 1년 뒤 1996년 불교방송(BBS)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과 앵커까지 도맡았다. 많은 기사를 빠르게 써서 보도해야 했다. 쓰고 싶은 기사를 깊게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선배 추천으로 2005년 충청리뷰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쓰고 싶은 기사를 깊게 취재할 수 있었다. 2009년 약 2년에 걸친 취재 끝에 김재욱 전 청원군수 선거법 위반을 보도하기도 했다. 마을신문과 공동체에 관심 있었던 이 기자는 2013년 충청리뷰를 나와 마을신문 네트워크 사업과 라디오 방송 등을 도전했다. 마음처럼 잘되지 않자, 다시 충청리뷰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미디어 날을 만들기 전까지 총 11년을 몸담았다.
시를 좋아해 고등학교 내내 문학회 활동을 했던 박소영 기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뜬 충청리뷰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대학교 4학년 때 들은 교양 수업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기자에 관해 물었다. 교수는 ‘정말 보람된 일을 하는 직업’이라 설명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덜컥 입사했다. 그때가 2001년이다. 그렇게 22년 6개월을 충청리뷰에 있었다.
좋은 기사를 쓴다는 자부심 덕분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다. 충청리뷰는 도민주주로 시작한 작은 언론사였지만, 1994년 노근리 사건과 2003년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 접대를 최초 보도했다. 그들은 충청리뷰를 “자유롭고, 좋은 기사를 쓰는 곳”이라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주식회사”
2018년 독립언론이었던 충청리뷰에 시멘트 제조업인 금성개발이 대주주로 등장했다. 과정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청리뷰는 검찰 인권 침해 기사를 보도했다. 검찰은 광고주들을 수사해 충청리뷰를 압박했다. 이 일로 충청리뷰는 광고가 끊기고, 빚이 쌓였다. 결국 지분을 팔았고, 금성개발이 주주로 들어오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청리뷰는 어려워지고, 금성개발은 성장했다. 2018년 금성개발은 대주주가 됐다.
2023년 거대 자본을 가진 대주주는 보도 자유와 독립성을 훼손했다. 당시 충청리뷰는 <뉴스타파>와 6개 언론사, 시민단체가 참여한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 일원이었다. 취재단은 전국 지방검찰청을 대상으로 검찰의 세금 부정사용과 예산 오남용 문제를 검증했다. 충청리뷰는 충북에 있는 검찰청 담당이었다. 박 기자와 이 기자는 충북 지역 검찰 특활비 기록을 받아냈다. 그런데 대표이사에게서 “대주주가 (취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이 기자는 검찰 예산 검증 보도가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다룬 칼럼을 썼다. 보도 당일 해당 지면은 무단 삭제됐고, 광고로 채워졌다. 편집국장이었던 이 기자는 보직해임도 겪었지만, 충청 지역 시민단체와 독자들의 항의로 철회됐다. 박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충청리뷰는 도민들과 독자들이 지켜온 것이다. 약자의 소리를 들어왔고, 저항적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청리뷰를 지키기 위해 지역 시민단체가 성명서와 민원을 냈지만, 결국 지킬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주식회사였다는 것이 판명 났다”
주주 압박에 저항한 두 기자
두 사람은 절망했다. 이들은 2023년 12월, 미련 없이 충청리뷰를 떠났다. 이 기자는 충청리뷰의 편집국장, 박 기자는 부편집국장이었다. 6명이었던 충청리뷰 기자 가운데 4명이 퇴사했고, 2명은 충청리뷰에 남았다. 같이 퇴사한 2명 중 한 명은 다른 언론사에, 한 명은 정년 퇴임했다.
뜻이 잘 통했던 이 기자와 박 기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열기가 식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르게 창간 준비를 했다. 두 기자는 보란 듯이 좋은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 기자 경력만 29년과 22년이다. 기자 생활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틈틈이 생각했기에 어렵지 않았다.
충청리뷰를 나온 지 약 3개월 만에 미디어 날을 만들었다. 이름에는 ‘날 것’과 ‘날(day)’, ‘날카로움’ 등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2024년 3월 15일 충북 청주시 문화예술공간인 문화제조창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오직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고, 기업이나 기관의 광고와 후원도 받지 않는다. 주주도 없다. 창간과 동시에 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KNN)에 합류했다. 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는 독립언론들이 모여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뉴스타파함께재단이 만든 네트워크다.
새로운 도전, 계간지와 지역 문화공간
회원 수는 300명에 못 미치지만, 상당수가 충청리뷰 사태를 지켜봤던 이들이다. 함께 가슴 아파하고, 지지해 줬다.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며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디어 날은 웹 홈페이지 기사와 계간지 발행으로 독자를 만난다. 다른 언론사와는 다르게 인문·사회 계간지를 발행한다. 계절마다 ‘봄날’, ‘여름날’, ‘가을날’, ‘겨울날’을 발행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좋은 글과 생각해 볼 사회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준다. 첫 계간지 주제는 ‘반려’였다. 동물과 식물, 심지어 돌도 반려 삼는 시대에 인간은 누구와 어떻게 살고 사라질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다. 돌봄 공백을 메우는 AI와 충청도 고령화 문제 등을 담았다. 분량은 160여 장이다. 매달 미디어 날을 구독하는 회원들에게 배송된다. 청주에 있는 23개 서점에도 진열돼 있다.
웹 홈페이지에는 약 119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창간 동시에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 ‘두꺼비친구들’ 소송을 취재했다. 두꺼비친구들은 2006년 산남동 주민조직으로 결성된 단체다. 지자체가 이들에게 두꺼비 생태문화관과 두꺼비생태공원을 위탁했지만, 2019년 개발 문제로 마찰이 생겼다. 해당 기획 기사는 청주시와 농업정책위원회의 무리했던 소송 과정을 드러냈다. 소송 결과를 짧게 보도했던 다른 언론과 다르게 사건 이면을 자세히 취재하고, 4편에 걸쳐 보도했다.
뉴스만 만들지 않는다. 지역 문화공간도 가꾸고 있다. 미디어 날은 청주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건물 2층을 사무실로 쓴다. 바로 밑 1층에는 ‘카페 날’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은 공연과 강연, 문화사업 등을 진행한다. 지역도 공연과 강연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무실과 카페는 이 기자의 지인이 무상으로 내어줬다.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전문 언론
미디어 날은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전문 언론을 표방한다. 이들은 2010년 충청리뷰에서 안수찬 당시 한겨레 기자 강연을 듣게 됐다. 그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재발견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박 기자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이때 처음 접했다. “기자가 쓰는 기사 문법은 한정적이라 생각했는데, 기사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 다음 취재를 내러티브 형식으로 보도했다.
2010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피란민촌을 전수조사해 이주민의 가난한 삶을 보여줬다. 스토리를 전개하는 내러티브 형식으로 기사를 썼다. 박 기자의 첫 내러티브 기사였다. 2011년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내러티브의 힘을 믿었다. 자신도 있었다. 미디어 날은 한 사안을 깊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생존’이었던 독립언론 창간, 1주년을 향해
오는 15일, 미디어 날 창간 1주년이다. 이들은 꿈꿨던 언론을 만들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박 기자는 “뭘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기자도 채용하고 싶고, 영상도 다양하게 만들고 싶은데 자본이 없기 때문에 구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채용을 하지 못하고, 채용을 못 하니 인력이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하니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의 한계는 기업이 주주로 있는 언론사에서도, 주주가 없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기자는 “하고 싶었던 일이고,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며 “잘할 수 있고, 자신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해 주는 회원들이 있어 지난 1년을 더 잘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지 에너지가 빠진 것은 아니다. 벌써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자로 일했을 때 해보지 않았던 일들도 해야 한다. 계간지를 만들면 회원들의 배송지를 입력해 배송 준비를 하고, 회원 관리와 유튜브 편집, 행사 기획, 회계 등을 전부 담당한다. 박 기자는 지난 1년을 ‘생존’이라 표현했다.
권력과 자본 눈치 보지 않는 미디어 날
충청리뷰 시절 지역민의 사랑과 지역 언론의 한계를 느낀 탓일까. 이들은 지역을 사랑한다. 박 기자는 미디어 날이 지역의 많은 것을 ‘기록’하는 언론이 되길 바란다. 그는 “다양한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지역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두 기자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주요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다각도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쉼 없이 1년을 달려왔지만, 준비한 것들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왜 이거밖에 못 했냐고 할 수 있지만, 지난 1년간 미디어 날은 틀을 잡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진짜 그 외의 일들을 하고 싶다. 이를테면 깊고 끈질긴 탐사보도 말이다”
이들은 지역 언론의 한계와 주주의 압박, 자본 앞에서 서서히, 아프게 무너졌다. 그리고 저항했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을 실현했다. 이 대표는 창간 1주년을 앞두고 가장 뿌듯한 점으로 “주주가 없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이 쓰고 싶은, 써야 하는 기사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이제 없다. 미디어 날은 날 것의 이야기와 날카로운 기사로 독자들의 날이 되길 꿈꾼다.
* 비영리 독립언론 <미디어 날>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비뉴스 청년부, 시사현안팀장 전설입니다.
기자를 직업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삼겠습니다. 치열하게 배우고, 단단히 실천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