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이수연, 권준오 한국일보 기획영상팀 PD

모바일 마케팅 기업인 앱토피아가 공개한 2022년 전 세계 모바일 앱 다운로드 순위를 보면, ‘틱톡’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틱톡의 성공엔 숏폼(Short-Form) 콘텐츠가 있다. 숏폼 콘텐츠란 60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말한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에게 인기가 높다. 스마트폰에 맞춤한 숏폼 콘텐츠는 이제 틱톡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숏폼 콘텐츠 시장에 국내 언론사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국내 언론사가 만드는 대부분의 숏폼 콘텐츠는 이미 만들어진 롱폼(Long-Form) 영상을 짧게 쪼갠 유형이 대부분이다. 숏폼 콘텐츠만을 위한 오리지널 뉴스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여름, <한국일보> 기획영상팀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숏폼 뉴스 콘텐츠를 올리는 ‘휙 알파’ 채널을 시작했다. 한국일보의 숏폼 채널 ‘휙 알파’의 영상을 기획·제작하는 이수연(32), 권준오(27) PD를 <단비뉴스>가 만났다.

한국일보 기획영상팀의 촬영 공간이 있는 서울시 중구 와이즈타워 건물 16층에서 권준오(왼쪽), 이수연(오른쪽) PD를 만났다. 양진국 PD
한국일보 기획영상팀의 촬영 공간이 있는 서울시 중구 와이즈타워 건물 16층에서 권준오(왼쪽), 이수연(오른쪽) PD를 만났다. 양진국 PD

새로움을 찾아 뉴미디어로 향하다

이수연 PD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 PD가 처음 매력을 느꼈던 건 드라마였다. 대학 졸업 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 방송전문인력 양성 과정인 ‘키파(KIPA) 방송 영상 디렉터 스쿨’에 참여해 본격적인 방송 제작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시사 교양의 재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도 드라마 못지않은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시사 교양 분야로 진로를 변경한 이 PD는 방송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조연출을 경험하며 경력을 쌓았지만, 이 PD에겐 방송사 특유의 도제식 문화가 답답했다. 좀 더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찾던 이 PD의 눈에 띈 건 뉴미디어였다. 이후 레거시 미디어가 만든 뉴미디어 채널인 <CBS>의 ‘씨리얼’와 <KBS>의 ‘크랩’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그리고 2021년 3월, 당시 한국일보에서 운영하던 뉴미디어 채널 ‘프란’에 입사했다.

권준오 PD의 관심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와 뉴스였다. 특히 미국의 뉴미디어 <바이스>(Vice)를 통해 새로운 형태와 분위기를 가진 뉴스를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 권 PD는 해외의 뉴미디어 뉴스처럼 한국에서도 새로운 뉴스를 제작해 보고 싶었다. 대학에 다니던 2020년, 친구들과 함께 ‘담롱’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장애인과 성소수자 문제를 주로 다뤘다. 다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더 체계적으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고민하던 2022년 9월, 한국일보 ‘프란’의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했다.

이수연, 권준오 두 PD가 한국일보에 입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양진국 PD
이수연, 권준오 두 PD가 한국일보에 입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양진국 PD

더 젊고 가벼운 뉴스를 향한 노력

‘프란’에서 처음 만나 손발을 맞춘 두 PD는 한국일보가 2022년 10월 시작한 ‘h알파’에서 본격적으로 함께 일했다. h알파는 한국일보가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선보인 브랜드였다. 품질 좋은 영상으로 심층 이슈를 다루면서, 한국일보 유튜브 채널의 기존 시청자보다 더 젊은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8개월간 총 43편의 영상을 제작했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정량적 성과가 부족했다. 채널을 구독하는 젊은 이용자의 비중에 큰 변화가 없었다. 매번 심층 이슈를 깊게 다루느라, 제작진도 지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주제의 무게를 줄이고 좀 더 친근하고 가볍게 뉴스를 만들기로 했다.

두 PD를 포함한 영상 팀은 국내외 언론사의 소셜미디어 전략을 자세히 살폈다. 그 가운데 특히 영감을 준 매체가 <워싱턴 포스트>였다. 워싱턴 포스트가 제작한 숏폼 콘텐츠는 상황극을 통해 특정 뉴스를 전달한다. 한 명의 출연자가 뉴스와 관련된 여러 인물의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 재밌고 인상적이었으며 뉴스를 이해하기에 좋았다. 그 밖에도 여러 뉴미디어를 참고하여, 새로운 뉴스 영상 전략을 마련했다. 지난해 7월, 기자들이 연기하는 상황극을 통해 뉴스를 전달하는 포맷을 정립하고, 이를 전달하는 숏폼 채널을 만들었다. ‘휙 알파’의 시작이었다.

‘휙 알파’가 운영하는 틱톡 메인 화면에 주요 영상이 소개돼 있다. 화제가 된 특정 이슈를 1인 다역의 연기를 통해 구성한다. 조회 수 1백만을 넘긴 영상도 적지 않다. 휙 알파 틱톡 계정 메인 화면 갈무리
‘휙 알파’가 운영하는 틱톡 메인 화면에 주요 영상이 소개돼 있다. 화제가 된 특정 이슈를 1인 다역의 연기를 통해 구성한다. 조회 수 1백만을 넘긴 영상도 적지 않다. 휙 알파 틱톡 계정 메인 화면 갈무리

패러디를 더해 뉴스에 재미를 입히다

지난해 7월 시작한 휙 알파는 지난 3일 기준 총 245편의 숏폼 콘텐츠를 내놓았다. 최근 가장 큰 화제를 끈 건 이른바 ‘러브버그’로 불리는 붉은등우단다리털파리를 소재로 한 영상이었다. 조회 수 약 52만 회를 기록한 이 영상엔 3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소야대 정국과 오물풍선와 같은 정치 이슈를 재밌게 풀어낸 영상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었다.

매일 한 개의 숏폼 콘텐츠를 출고하는 휙 알파의 제작 과정은 반복과의 싸움이다. 두 PD와 출연 기자를 포함해 총 6명으로 구성된 휙 알파 팀은 매일 오전 10시에 아이템 회의를 진행한다. 대체로 그날의 최대 이슈 가운데, 독자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를 주제로 선정한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성안을 만들면, 곧바로 촬영에 나선다. 오후 4시에 최종 품평이 이뤄지고, 오후 6시에 각 소셜미디어에 출고한다. 1분도 채 안 되는 숏폼 영상을 위해 매일 8시간 동안 팀 전체가 함께 논의하며 일한다.

혼을 바쳐 만든 수많은 영상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콘텐츠도 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탈당이 이어지던 상황을 ‘환승 연애’ 프로그램에 빗대어 만든 ‘환승 탈당’ 편을 권 PD는 가장 좋아한다. 당시 권 PD가 보기에, 기존의 정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연애의 패턴과 비슷해 보였다. “약간 블랙코미디 같은 방식으로 뉴스를 만들고 싶었다. 환승 탈당도 그런 맥락에서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정치 이슈를 다루면 좋겠다는 내부 평가도 받았다”라고 권 PD는 말했다.

이 PD는 휙 알파의 영상 가운데 가장 조회 수가 많이 나온 ‘아이폰 vs 갤럭시’ 편을 꼽았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를 ‘스트리트우먼파이터’ 프로그램과 연결 지어 만든 영상이었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지난 3일 기준 200만 회를 넘겼다. “만들 때부터 재미있었다. (제작·편집하면서) 우리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용자 반응도 좋았지만, 이를 만드는 우리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서 더 좋았다”라고 이 PD는 말했다.

휙 알파의 영상 가운데 가장 큰 조회 수를 기록한 ‘아이폰 vs 갤럭시’ 영상의 한 장면이다. 휙 알파 틱톡 영상 갈무리
휙 알파의 영상 가운데 가장 큰 조회 수를 기록한 ‘아이폰 vs 갤럭시’ 영상의 한 장면이다. 휙 알파 틱톡 영상 갈무리

우연히 마주한 길을 개척하다

휙 알파가 오늘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찾다 마주한 우연’이라고 두 PD는 자평한다. 휙 알파를 시작한 이후 초기 반응이 좋았다. “당시 모두가 놀랐다”고 이 PD는 회고했다. 휙 알파팀이 속한 기획영상부의 관심과 지원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부장도 이제 우리 제작진에게 전권을 준다”고 말하며 이 PD는 웃었다.

휙 알파팀은 틱톡 채널에서 확인한 ‘재밌는 숏폼 뉴스 영상’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소셜미디어로 확산할 계획이다. 유행을 따라 일단 유튜브 채널부터 만들고 보는 국내 다른 언론사와 비교된다. 플랫폼의 특성과 이용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저 조회 수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중요한 이슈를 재밌게 전달’하는 방법을 개척한 휙 알파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뉴미디어 PD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다

두 PD는 직업의 정체성까지 새로 정립하고 있다. “우리는 뉴미디어의 업무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고 이 PD는 말했다. 전통적으로 방송 PD는 콘텐츠 제작을 분업화하여 이를 관리한다. 뉴미디어 PD는 달라야 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기획, 섭외, 촬영, 편집, 자막 입력까지 뉴미디어 PD의 손이 직접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단점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제작의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창의성을 더 높일 수 있다.

이수연 PD는 ‘휙 알파’를 통해 뉴미디어 PD의 역할을 확장하려고 한다. 양진국 PD
이수연 PD는 ‘휙 알파’를 통해 뉴미디어 PD의 역할을 확장하려고 한다. 양진국 PD
권준오 PD는 ‘휙 알파’가 기사 유통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양진국 PD
권준오 PD는 ‘휙 알파’가 기사 유통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양진국 PD

권 PD는 휙 알파를 통해 한국일보의 기사가 더 널리 유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10대와 20대는 언론사 홈페이지를 직접 찾아 기사를 읽지 않는다. 뉴스를 보려고 포털에 접속하는 이도 드물다. 요즘 청소년과 청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한국일보의 지면과 웹에 실리는 기사는 그들에게 좀체 가닿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휙 알파는 청년층에게 익숙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한국일보가 공들여 만든 기사의 핵심과 맥락을 흥미롭게 재가공하여 유통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60초에 표현하는 뉴스

두 PD가 휙 알파를 통해 배운 것도 있다. 친근하지 않은 뉴스는 독자로부터 외면받는다는 점이다. 처음 숏폼 콘텐츠를 만들면서 두 PD는 걱정했다. 재미 요소를 강화하느라 뉴스의 본질을 놓칠까 염려했다. 다행히 이용자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특히 청년층의 반응이 좋았다.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뉴스는 보기 너무 어려웠다. 근데 쉽고 빠르게 설명해 주는 휙 알파 덕에 뉴스를 잘 보고 있다’는 식의 댓글이 영상 아래에 달렸다. 가벼운 콘텐츠의 소비만 유도하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뉴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이용자를 염두에 두면서, 두 PD는 더 치밀하고 세심하게 사실을 배치하는 영상 구성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두 PD는 “한계를 넘어서는 뉴스를 해보고 싶다. 그걸 고민하는 게 즐겁다”고 나란히 말했다. 60초 안팎의 숏폼 영상을 넘어 더 다채로운 형식의 뉴스를 시도하고 싶다는 것이다. 관습적으로 보도하는 다른 언론을 향해 ‘우리는 이런 뉴스도 하고 있다’고 입증하는 것, “그게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이 PD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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