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다큐 '건강을 해킹하다 - 장의 비밀'
넷플릭스 구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다큐멘터리의 예고편과 공개 날짜 알람이 떴다. 미국 3위, 캐나다 1위, 호주 1위, 영국 3위, 아일랜드 2위, 네덜란드 2위, 헝가리 2위. 5월 첫 번째 주 ‘건강을 해킹하다-장의 비밀’의 넷플릭스 시청률 순위이다. 다큐 영화가 공개되고 2주 정도 지났으니, 소위 개업 발은 받는 셈이다.
나는 건강한 식생활을 전하는 역할에 관심이 많다. ‘집밥과 농업이 중요해!’라고 생각해 왔고, 푸드 크리에이터이자 농업·식문화 전문 PD로 성장하고 싶다. 최근엔 우리만의 식문화인 나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물을 계속 먹어야 하죠?" "나물 문화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우물쭈물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했다.
여러 권의 책을 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공부하던 차 내 눈에 들어온 한 편의 다큐멘터리 '건강을 해킹하다-장의 비밀'은 한식, 그중에서도 나물이 매우 우수한 식품이라는 나의 주장이 근거가 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 비밀은 우리 몸속의 장에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내게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수많은 것을 발견했어요. 달까지도 갔었죠. 하지만 우리 내장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은 드물어요."
다큐멘터리는 장을 연구하는 독일 의사 줄리아 엔더스의 현실진단으로 시작한다. 장은 우리 몸속에 있지만, 우리의 이해가 도달하기에는 달나라보다 먼 미지의 세계다. 줄리아는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장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소개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식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과 건강에 관한 어려운 개념들을 쉽고 귀엽게 표현해 주는 재기발랄한 해설가로 등장한다.
감독인 안잘리 나야르는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작가,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기후 과학자였고, 환경과 인권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그녀는 이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로 미지의 세계인 장의 비밀을 파헤치며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하지만 왠지 더럽다고 느끼는 행위인 배설, 즉 음식물이 똥으로 가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한 방식으로 상세하게 알려준다. 웰빙을 외치는 시대, 우리에게 건강에 대한 꿀팁(life 'hack')을 전해주는 건강 과학 다큐멘터리, ’건강을 해킹하다-장의 비밀‘('Hack' Your Health: the secret of your gut)을 함께 보자.
알 듯 말 듯 한 건강, 그 중심이 무엇일까?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는 건강에 관해 궁금한 것이 여전히 많다. 내 몸의 건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잡음과 같은 정보가 쏟아져 나와요. 그렇지만 '장'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게 쉽게 이해돼요." (줄리아 엔더스 독일 의사)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좀 더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시점이 왔어요." (잭 길버트 미생물 생태학자)
"장은 몸 전체에 영향을 줘요, 심지어 일부 뇌 질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죠." (존 크라이언 코크대학 신경과학자)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의 핵심이라는 것은 너무 신나는 일이에요.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몸속 미생물은 누구나 바꿀 수 있거든요. 식단과 생활방식을 조금만 바꾼다면요." (줄리아 엔더스 독일 의사)
줄리아와 8인의 전문가가 강조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무엇일까? 우리 몸 안에 사는 미생물인 '마이크롭'(microbe)과 생태계를 뜻하는 말인 '바이옴'(biome)의 합성어로, 우리 몸속에 사는 박테리아, 세균, 바이러스 등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뜻하는 말이다. 미생물이라고 부르니 거리감이 들지만, 장 속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면역체계의 70% 이상을 구성하고 있고, 다른 장기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신체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은 제 2의 뇌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는 마이크로바이옴을 다양한 경로로 공급받는다. 요거트나 김치 속에 들어있는 유산균, 청국장에 들어있다는 바실러스균도, 속이 안 좋을 때 마시는 매실청 같은 발효효소도 마이크로바이옴의 공급원이다. 생막걸리도 마이크로바이옴이 들어있는 음식이라면 조금 더 와닿을 수 있을까?
내장에는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다. 장은 우리 몸속의 기관 중에 가장 긴 장기이며, 우리 체중의 1~3%를 차지한다고 하니 그 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은 마치 손가락 지문과 같이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습을 갖는다. 엄마의 산도를 거쳐 나온 후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뽀뽀하거나, 서로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만의 독특한 마이크로바이옴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뱃속에 거지가 사니?'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조금만 생각을 해보자. 영화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설명하기 위해 숲에 비유했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우리는 사람의 몸을 나무에 비유해 보자. 나무는 땅속의 보이지 않는 뿌리를 통해 모든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면 나무는 죽고 만다. 장은 우리 몸의 뿌리다. 장 속의 마이크로바이옴이 제 기능을 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한 적절한 영양분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는 음식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특히 채소, 과일, 콩류, 곡물 등에 들어있는 식이섬유가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의 가장 중요한 영양분이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을 잘 먹여야 한다.
"우리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제대로 소화하려면 미생물이 필요해요." (줄리아 엔더스 독일 의사)
조상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한국의 전통음식은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 유지를 위해 유리한 특성이 있다. 자원이 부족하고 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발효 식품과 그 저장법이 발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전달되는 것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인 것이다.
나물은 또 어떠한가? 나물은 이른 봄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기도 전에 뚫고 나오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나물을 뜯거나 캐서 먹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나물 문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식문화가 되었고, 아직도 봄이 되면 나물을 뜯으러 가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엄마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물은 그저 채소의 일부분이 아니다. 겨울 동안 섭취하지 못했던 식품의 다양성을 챙길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음식이었다. 밥상 위 나물은 단순한 ‘풀떼기’가 아닌 우리의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을 다양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그야말로 ‘보약’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각기 다른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 4명이 등장한다.
○ 마야 (자기 음식을 무서워하는 페이스트리 쉐프)
“채소 외의 다른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기 시작해요” “제 일을 하기가 어려워요.”
○ 키미 (살 빼려고 노력하지만 못 빼는 엄마)
“온갖 방법으로 살을 빼려고 해보았어요.”
“근데 많이 뺐다가도 훨씬 더 많이 찌게 돼요.”
○ 코비 (허기짐을 못 느끼는 빨리 먹기 대회 참가자)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하고 먹고 나서 행복해 보이는데 전 이제 허기짐을 못 느껴서 그 사람들이 부러워요."
○ 다니엘 (만성 장 통증이 있는 박사과정 학생)
“대변을 볼 수 있다는 것처럼 간단한 일을 얼마나 당연하게 치부했는지 알게 돼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을 배우게 되었어요.”
이들 모두가 식이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다이어트를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키미의 사연이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키미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다이어트 실패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도 1년에 360일 정도 살을 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키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키미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특히나 공복감과 허기짐을 담당하는 박테리아 종류가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간단한 대변 검사만으로도 자신의 문제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전문가들로부터 건강을 되찾기 위한 생활방식을 안내받는다. "Always Be Counting, not calories."(칼로리를 계산하지 말고, 섭취하는 채소의 숫자를 세라) 매주 20~30가지의 채소를 먹는 것으로부터 지속 가능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건강 과학 다큐라고 꼭 딱딱해야 해? 아니야!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건강 과학 다큐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양모 펠트 소재를 이용해서 만든 귀여운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한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진행자와 8명의 전문가 사이의 협업도 눈에 띄는 장점이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2번, 3번 돌려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귀여움이 느껴질 정도로 성의를 다해 쉽게 전달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학도 창의적인 제작자와 재능 있는 출연자가 만날 때 얼마든지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이 다큐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의 하나다.
식품 산업화가 가져올 미래, 우리의 미래가 아니길 바란다
다큐멘터리가 전한 주요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산업화된 음식을 섭취한 사람들은 장 속 미생물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화된 마이크로바이옴은 제왕절개, 가공식품 섭취, 항생제 등 다양한 경로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섭취하는 음식의 다양성 여부다.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장내에 설탕을 좋아하는 미생물이 많이 생겨나고, 지방을 과다 섭취하면 지방을 좋아하는 미생물만 많이 생겨나게 된다.
천연재료를 과하게 정제한 후 온갖 화학 물질과 엄청난 설탕을 다시 집어넣는 요즘 음식들. 멸균, 진공, 고온 조리 등에 의해 패키지로 생산되는 산업화된 음식 속에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살 수도 없고, 우리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식품기업들은 이러한 점을 숨기거나 속이기 위해 포장지에 저 칼로리, 무설탕, 비건 등 현혹하는 단어를 넣어 우리를 더욱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게 말이다.
건강뿐 아니라 나물도 해킹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의 간단한 참고서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알기 전 나물에 대한 다큐를 기획하기 시작할 때는 채울 수 없었던 나물 예찬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건강을 해킹하다'는 나에게 논리와 정보를 채워주는 전공서가 되었다. ‘나물이 몸에 좋으니 먹어야지’와 같은 관습적인 전통 식문화 예찬에서 벗어나 나물이 마이크로바이옴 다양화의 솔루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래서 가슴이 뛴다. 곤드레, 곰취, 뽕나무순, 다래순... 거의 막바지 봄나물이 나오고 있다.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을 위해 나는 이번 주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