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예산에 대한 정의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예산은 정치 투쟁의 결과이자 기록이다’라는 멋진 말이에요.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결과적으로 내가 지지하는 예산을 증액해야 진짜 나의 삶이 달라지는 거죠.”
지난 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이렇게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인문사회교양특강에 초청된 그는 ‘세금과 나라 살림의 이해’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조세·재정과 관련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2022년 ‘경제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위원은 <한겨레> <미디어오늘> <시사인>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경제 관련 해설을 해 왔다.
세금이 덜 걷힐 때 정부는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이 위원은 국가 재정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가 가정 살림의 원리와 혼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정에서는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입이 늘 때 지출을 늘려야 안정적인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 반면 정부는 경기가 나빠 세수가 줄면 오히려 재정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살려야 한다. 반대로 경기가 좋아져 세수가 늘면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여 과열을 막아야 한다. 이 위원은 “시장이 잘 굴러갈 때는 펌프를 1단에 두고, 시장이 잘 안 굴러갈 때는 3단에 넣고 펌프질을 (세게) 하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원리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재정지출을 줄인 것과 언론이 이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은 언론이 지방정부 재정에 관해서도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달리 ‘균형재정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중앙정부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지출을 늘리는 ‘적극적 재정’을 할 수 있지만, 지방정부는 지출 규모가 수입 규모에 자동 연동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금복지로 인해 지방정부 재정이 나빠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균형재정의 원칙에 따르면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국가 지출의 의미를 기자들이 잘 몰라서 ‘황당한 기사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세금으로 공공기관에 100조 원을 지원했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가 나온 일이 있다. 알고 보니, 이는 국민연금 기금을 정해진 수급자에게 나눠주도록 국민연금공단에 ‘당연히’ 보낸 금액 등을 잘못 합산했다는 것이다.
개념과 원리 모르고 잘못 쓴 기사 수두룩
이 위원은 “일반 국민은 언론이 쓰는 기사를 통해서 재정 건전성이 좋아졌네, 나빠졌네, 복지 지출이 늘었네, 줄었네 등을 판단하는데, 그 언론 기사가 우리나라 재정 현실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굉장히 큰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정부 보도자료대로 재정에 관한 해석을 검증 없이 전달한 사례를 소개했다. 2017년 한국의 재정 총지출은 3.7% 증가했는데, 당시 언론은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렸다’라고 보도했다. 반면 2023년 총지출 증가율은 5.2%였지만 정부는 ‘건전재정’ 혹은 ‘긴축재정’이라고 홍보했고, 언론도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예산의 정의도 기금까지 포함한 것인지, 총지출기준인지, 총계기준인지 등에 따라 공무원들이 얼마든지 다르게 답할 수 있어, 기자들이 속기 쉽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자들이 예산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 예산이 얼마인지 궁금하다면 ‘보건복지부 총지출이 올해 본예산 기준 얼마냐’고 물어봐야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한국의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정수지 총지출'이라는 독자적 개념을 사용해 정확한 국제 비교를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기재부는 적극적인 재정을 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재정수지를 보면 균형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재부가 발명한 기준이 아닌, 국제기준으로 통일해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령과 예산의 근거 명확히 밝힌 보도자료 내야
조세·재정을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 위원은 ‘모든 정책 관련 보도자료에 법령과 예산 관련 표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해당 정책을 추진할 때 법령 몇조, 몇 항을 어떻게 바꿔서 추진할 것인지를 밝히는 법령 시뮬레이션표와 예산안 신·구 대조표를 넣자는 것이다. 이 위원은 “법과 예산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예산을 얼마나 늘렸는지, 이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하미래(24) 씨는 “(윤석열) 정부가 국채 발행을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 위원은 “국채(국가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현재 한국 재정수지 적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쁜 상황인데도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국채 발행 대신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이 위원은 설명했다.
같은 대학원 홍성민(25) 씨는 “국민연금이 고갈돼도 지급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는데, 나중에 국민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 부담은 매우 커지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이 위원은 “선진국은 노인 복지를 위해 대략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를 지출하는데, 한국은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I한국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 기초연금이 생긴 후부터 노인 자살률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도 GDP 대비 10%까지는 노인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기초연금으로 늘릴 것인지 국민연금 지원으로 늘릴 것인지는 추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