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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인문교양특강]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주제 ② 민주주의가 답이다
2018년 02월 19일 (월) 20:18:22 송승현 이현지 박경배 기자 miskie85@naver.com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는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 흥미로운 러시아 민담 하나를 소개한다. 가난한 집 농부는 부잣집이 소유한 염소를 갈망했다. 농부는 매일 신에게 기도했다. 기도에 응답한 신은 농부에게 소원을 묻는다. 농부는 염소를 달라는 소원 대신 “부잣집 염소를 죽여주세요”라고 빈다. 로버트 라이시는 행동경제학자들의 말을 빌려 강조한다. “사람은 자기 것을 얻는 것보다, 부당하게 얻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소유물 빼앗기를 좋아한다.”

   

▲ 김종철 발행인의 강의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경청하고 있다. ⓒ 박경배

러시아 민담은 오늘날 글로벌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민자에 관한 근거 없는 공포는 영국의 브렉시트를 통과시켰고, 백인 하층 노동자들의 분노와 엘리트층에 대한 적개심은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올려놨다. 프랑스 국민전선, 그리스 황금새벽당 등 유럽 지역에서 속속 출현하는 극우정당들. 우리 사회도 이런 시류에서 안심할 수는 없어 보인다. 헌법을 유린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하는 태극기 집회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분노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건 아닐지. 분노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도생 사회가 된 까닭

“근대란 것이 참 이상한 겁니다. <레미제라블>에서도 보듯 프랑스 혁명 이후 개인의 권리가 더 보장되는 사회가 왔다고는 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습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근대를 ‘공동체 파괴’라고 정의했다. 근대 이후 물자가 풍부해지고 산업은 발달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붕괴되고 결국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김 발행인은 근대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과정을 러시아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근대 이전은 공동체로 대표된다. 공동체 정신은 토지에서 나온다. 건국 초기부터 러시아제국은 자연 환경 탓에 작물을 기르지 않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넓은 황야지역이 많았다. 황야의 소유권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농민들은 제국 내 토지를 황제인 짜르의 땅으로 부르거나, 신의 땅으로 여겼다. 경작을 희망하는 사람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토지를 갈거나 작물을 기르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하나둘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공동체가 형성됐는데 러시아에서는 이를 ‘미르’(мир, 공동체)라고 불렀다. 미르는 점점 좁아지는 토지를 손쉽게 차지하는 것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발행인은 “미르의 원로원들은 간섭할 때도 토지를 소유권보다 점유권 개념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토지는 끝까지 소유 개념이 아닌 공공 재산으로 남아있었다.

   
▲ 김 발행인은 소유가 만든 경계를 바탕으로 공동체가 개인으로 분절되면서 각자도생의 사회가 도래했다고 본다. ⓒ 박경배

김 발행인은 “근대의 시작은 이 공공재를 사유재산으로 바꾸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은 근대화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운동은 15~16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토지경영의 현대화를 말한다. 지주들은 이 운동을 통해 미개간지나 공유지 등 공동으로 이용이 가능한 토지에 돌담이나 나무울타리 등을 쳐서 사유지로 활용하거나 재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동체가 붕괴되고 개인주의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러시아는 러시아혁명 이전까지 토지의 소유권 개념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가 후진국으로 불렸던 이유 중 하나다. 김 발행인은 “러시아의 근대화는 러시아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이뤄진 셈”이라 덧붙였다.

한국의 근대화도 시작은 마찬가지였다. 김 발행인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이후까지 일제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이 토지조사사업”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토지 제도는 국유제로서, 각 관청이나 관리에게 준 것도 토지로부터 조세를 거둘 수 있는 수조권(收租權)만 부여했을 뿐 토지 소유 개념은 없었다. 경작권도 농민에게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사유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 근대화의 시작은 일제에 강요된 토지 소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대화의 핵심은 공동체 파괴예요. 근대화 가운데 제시되는 민주주의, 개인의 권리 등은 명분이고 껍데기입니다.”

공공재가 사유화하면서 공동체 의식도 사라졌다. 소유가 만들어 낸 경계를 바탕으로 공동체는 개인으로 분절됐다. 시대가 흐르면서 소유 개념은 커져갔고, 현대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돼버렸다는 게 김 발행인의 생각이다.

세계 인구 85%를 착취한 서구문명

이어서 김 발행인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작 중 하나를 소개하며 인간의 비합리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영국과 프랑스 문명을 전시하는 런던 박람회장의 수정궁을 보고 서구인이 추구하던 합리성에 한계를 느꼈다. 그는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 지식인들, 최첨단 지식인들이 구상하는 진보적인 세상이 얼마나 편협하고 비합리적인지를 고발했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저서 <지하로부터의 수기>. ⓒ 열린책들

“1860년대 도스토예프스키가 프랑스, 영국, 이태리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게 <지하로부터의 수기>입니다. 말하자면 러시아 촌사람의 유럽 견문록이죠. 사람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가를 서구도 모르고, 러시아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지식인들도 모른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에 대해 얘기합니다.”

서구의 문제는 그들이 추구하는 합리성이 두뇌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도스예프스키는 이 책에서 서구 진보의 역사가 기술적인 발전만을 추구한다고 지적했다. 또 인간을 이루는 정신적, 종교적, 잠재의식적 측면을 무시한다는 점도 짚었다. 김 발행인은 “인간은 합리적인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문명이 논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김종철 발행인은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비합리적인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혁명 시기와 산업화 시대부터 인민들이 착취당하고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문명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언이 맞았다면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경제격차가 벌어진다고 짚었다. 김 발행인은 문명의 그늘은 세계적으로 넓고 짙게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3세기 동안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발현해 지구화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근대문명의 혜택을 본 사람은 세계 인구의 15%를 넘은 적이 없어요. 85%는 늘 피해자였습니다. 한국 사람은 대개 15% 안에 있다고 보면 되겠지요. 미래에 얼마나 격차가 커질지 모른다.”

김 발행인은 인공지능 기술이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는 무인전철을 예로 들면서 앞으로 빠르게 일자리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욱 깊은 소외감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민이 엘리트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며, 우리가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발행인은 “결국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해답은 범인(凡人)에 의한 민주주의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와 관련해 문재인정부가 시민들에게 책임을 미뤘다는 평가가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논의는 한전노조와 지역주민뿐 아니라, 건설회사, 관료들, 대학 원자력과 등 이해관계자들이 첨예하게 얽혀있다. 이제 막 탄생한 정부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사안이었다. 김 발행인은 ‘책임 전가’라는 주장이 일면 타당하지만, 이번 공론조사가 한국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성장시켰다고 평했다.

“이렇게 쉽게 공론조사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숙의민주주의를 논의만 해왔습니다. 그동안 민주주의는 숙의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숙의민주주의는 평범한 시민들이 토론하고 숙고하며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겁니다. 이것이 진짜 민주주의죠.”

공론조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전문가들이 중대한 국가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많은 지식인들이 은연중에 품고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김종철 발행인은 평범한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그는 30년 넘게 이어온 대의제가 금권정치였기 때문에 그동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들이 거짓말이나 하고 법안 하나 속 시원하게 통과시키지 못한다”면서, 이번 공론조사에서 시민들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 다니엘 벨의 저서 <차이나 모델>. ⓒ 서해문집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의 능력을 불신한다. 훌륭한 엘리트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김 발행인은 중국 칭화대 교수 다니엘 벨의 <차이나 모델>을 소개했다. 중국 정치인들은 밑바닥 현(縣)서기에서 시작한다. 능력을 인정받아야 시(市)서기, 성(省)서기를 거쳐 지도부에 오를 수 있다. 일종의 플라톤의 철인정치로, 달리 말하면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다. 능력 있는 사람이 인민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 모델이 미국식 민주주의보다 좋다는 것이 <차이나 모델>의 요지다. 재벌들의 금권정치가 된 미국식 민주주의보다 능력 있는 정치인에 의한 공산주의가 낫다는 것이다.

김종철 발행인은 현능주의 정치가 숙의민주주의를 모르기 때문에 나온 이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언론에는 자유가 없다는 점을 꼬집으며, 중국 정치모델이 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능주의 정치란 “좋은 정책을 할 테니 따라오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사람들은 구세주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공공심을 가진 유능한 철인에 의한 정치’는 이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악마성과 신성 모두를 가졌다. 사심과 물욕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어금버금해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어떻게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냐 고민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김 발행인은 사람들이 사회에 분노하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아테네 민주주의가 현명하다고 강조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빈부격차나 교육 여하와 상관없이, 자유시민이라면 누구나 추첨으로 시민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대표직을 거절하는 사람은 자유시민 자격을 박탈당했다.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이다. 장애인과 여성, 외국인을 배제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자유시민은 모두 ‘사람대접’을 받았다.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 아닌 숙의민주주의

김 발행인은 우리도 아테네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실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민회에 수천 명이 모이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한다. 실제로 민회에 상정될 안건을 정하는 것은 평의회였다. 평의회가 실질적인 중심기관이었다. 1년 임기인 평의원의 수는 500명. 10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아테네에서 한 구역 당 50명을 추첨으로 뽑았다. 김 발행인은 이런 방법이 국회보다 대표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일단 당선되면 당파 이익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며 일반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아테네의 자유시민은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었다. 영화 <아고라>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김종철 발행인은 아테네의 평의회 제도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비뽑기로 아테네 시민 3만 명 중 500명을 뽑는 것이나, 한 국가의 국민 천만 명 중 500명을 뽑는 것이나 같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숙의민주주의 모델이다. 그는 이렇게 뽑은 집단이 선거제도보다 정확하게 국민 전체를 대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발행인은 몽골, 아일랜드, 덴마크 등이 숙의민주주의로 헌법개정, 낙태문제, 유전자조작식품 문제 등 사회정책을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면, 사람들이 ‘그럼 노숙자들이 국회의원을 합니까’라고 묻는데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 이해당사자들이 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훈련이 되면 시민들의 실력이 늘어날 겁니다. 공론조사도 일 년에 두어 번씩만 하면 우리 국민의 정신이 굉장히 발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발행인은 시민단체들부터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경력자들 가운데 복수를 선출해 그 중 제비뽑기로 대표를 뽑자는 것이다. 그는 이 방법을 실험하면, 막무가내였던 사원들도 대표가 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단체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을 믿는 것”이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희진 김한솔 신형철 나영석 이택광 유진룡 김종철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미나 기자

[박경배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영상부, TV뉴스부 박경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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