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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하늘 잇는 ‘신성한 돌탑’
[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⑫ 새해 복 비는 서낭당의 세계
2018년 01월 03일 (수) 02:02:32 김문환 danbi@danbinews.com
   
▲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의 서낭당. 박물관 건물 앞 정원에 잔돌을 쌓아 올린 돌탑 하나가 우뚝 서있다. ⓒ 김문환

“…성황당에 돌을 던져서 제발 남편이 신발과 댕기를 사오기를 축수하면서 짜장 댕기와 고무신을 사오지 않으면 사생결단으로 싸워보리라 마음먹었다… 순이는 이 세상 모든 재앙과 영광은 성황님이 주시는 걸루 믿는다. 순이는 지금 고무신을 산 것도 성황님의 은덕이라 믿는다…순이는 성황님! 성황님! 하고 부르짖었다. 모든 것이 성황님 덕택 같았다. 집 앞까지 다다랐을 때 문득 에헴 하는 귀에 익은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아! 성황님! 성황님! 순이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짖으며 느티나무 아래로 달려왔다….” 1937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정비석의 ‘성황당’. 우리네 정서를 지고지순한 여인의 삶과 사랑에 잘 담아낸 소설로 1939년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모았다. 무술년(戊戌年), 황금개의 해를 맞아 건강과 복을 비는 마음 가득한 가운데, 민간 신앙 풍습 ‘서낭당’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색천 나부끼는 서낭당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은 중국 지배하의 티베트와 독립국 네팔 국경에 자리한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19세기 측량을 담당한 영국의 인도 식민지 관리 이름이다. 티베트에서는 예부터 ‘초모룽마(Chomo Lungma·세계의 어머니 신)’라고 불렀다. 중국은 ‘초모룽마’를 한자로 옮긴 ‘주무랑마(珠穆朗瑪)’란 이름만 쓴다. 제국주의와 이민족 지배의 잔영을 간직한 이 산 정상에 무엇이 있을까? 순백의 눈과 푸르디푸른 하늘, 그리고 하나 더. 장승 같은 큼직한 나무 기둥 하나가 흰 눈 속에 박혔다. 나무에는 울긋불긋 천이 휘감겼다. 만년설의 세찬 눈보라에 휘날리는 천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울긋불긋 천 조각 매달린 서낭당 나무가 떠오를 터이다.

여기서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 문화대백과를 펴 ‘서낭당’을 보자.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펴낸 사전의 정의대로 하자면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 출신 영국 국적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가 처음 오른 극한의 땅 에베레스트 정상에 천 감긴 신목은 분명 ‘서낭당’이다.

정비석 ‘성황당’ 순이가 빌던 돌탑 서낭당 풍습

에베레스트 정상 서낭당을 누가 설치했는지는 뒤에 살피고,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가보자. 박물관 건물 앞 정원에 잔돌을 쌓아 올린 돌탑 하나가 탐방객을 맞는다. 한국민족 문화대백과에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추석 지나 음력 9월 보름이면 시루떡에 정화수 떠 놓고 마당에서 보름달 보고 어머니와 복을 빌던 필자의 추억 속에는 마을의 잔돌 더미가 아직도 살아 숨 쉰다. 주민이나 과객이 오가며 작은 돌을 얹고, 마음속으로 새해 건강과 행운을 빌던 곳. 순이가 돌을 쌓으며 남편이 고무신과 댕기를 사 오게 해달라고 빌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정비석의 ‘성황당’에서 무대로 삼은 지역은 북녘땅이다. 소설에 순이가 남편과 숯을 구우며 살던 지역 삼천마. 귀성 천마, 삭주 천마, 의주 천마라는 큰 고개를 경계로 압록강변 평안북도 귀성, 삭주, 의주가 나뉜다. 귀성은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龜州大捷)이 펼쳐진 현장이다. 정비석은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 의주에서의 서낭당 풍습을 떠올리며 1937년 27세 나이로 ‘성황당’을 썼다. 서낭당 풍습은 이렇게 한민족의 터전에만 뿌리내린 민속신앙일까?

   
▲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북부 고갯마루의 서낭당 오보. 돌탑과 천을 매단 나무기둥으로 이뤄졌다. ⓒ 김문환

몽골 초원에서 만나는 돌탑과 오색천 나무기둥, ‘어워’ 

발길을 의주에서 압록강 건너 북으로 옮기자. 북경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정란치(正藍旗)에 이른다. 고려 고종의 아들 원종이 태자 시절 몽골 쿠빌라이 칸에게 찾아가 항복을 알렸던 도시 상도(上都) 유적이 자리한다. 상도 유적지 박물관 언덕에 높이 솟은 돌탑. 압록강 남쪽에서 순이가 빌던 것과 같은 서낭당 돌탑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동유럽까지 끝없는 초원지대다. 실크로드(Silk Road)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1만여 년 전 신석기 농사문명 이후 동서 문명교류의 통로가 된 초원의 길(Steppe Road)이다. BC 2000년 이후 기마문화가 그 길을 통해 몽골초원, 중국, 한반도로 들어왔다. 스키타이족은 그리스의 황금문명을 동쪽으로 옮겼다. 반대로 몽골초원의 훈(흉노)족과 돌궐(투르크)족, 칭기즈칸의 몽골은 말을 몰아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짓밟았다. 쿠빌라이의 4촌 형 바투는 그렇게 모스크바까지 유린했다.

몽골제국의 과거 수도이던 중국 내몽골 자치구 상도에서 북으로 올라가 몽골 공화국의 현재 수도 울란바토르. 차를 타고 도심을 조금 벗어나자 초원지대 고갯마루에서 가이드 겸 기사가 경적을 ‘빵빵’ 울린다. 앞에 차도, 사람도 안 보이는데 웬 경적인가. 의아해서 묻자 잠시 차를 길가로 댄다. 차에서 내리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놀랍게도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자리하는 게 아닌가. 잔돌을 쌓은 돌무더기가 2개였다. 그 옆에는 높고 낮은 나무기둥 2개가 꽂혔다. 오색천이 두 개의 기둥을 칭칭 동여맸다. 주로 파란색 천인데 ‘하닥(Khadag)’이라고 부른다. 돌탑과 오색천의 나무기둥이 함께 있는 서낭당, 현지인들은 ‘어워(Owoo)’라고 부른다. 몽골 가이드는 작은 돌 몇 개를 주워 돌탑에 얹는다.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3바퀴 돈다. 차를 타고 지나며 내리지 않을 경우는 경적만 울린다. 무사안전과 행운을 비는 기도다.

   
▲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정란치의 상도 서낭당 돌탑. ⓒ 김문환

돌탑 ‘오보’, 샤먼(무당)이 주관하는 제천행사에서 시작

몽골초원에서 서쪽으로 더 가보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톈산(天山)산맥을 남쪽으로 끼고 실크로드 교역도시 알마티가 나온다. 알마티 교외에 BC 5세기 스키타이족이 현지화한 사카족 무덤들이 남은 도시 이식 쿠르간(Isik Kurgan·쿠르간은 봉분형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뜻밖에 몽골에서 보던 살아 있는 나무에 오색 헝겊 조각, ‘하닥’을 매단 서낭당을 만난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중앙아시아까지 퍼진 서낭당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풍습일까?

몽골인들이 ‘어워’라고 발음하는 서낭당은 학술용어로 오보(Ovoo, Oboo, Obo)라고 부른다. 초원지대의 돌탑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덕 위 신성한 장소에 쌓은 돌탑. 여기서 주술의식이 펼쳐지고 이를 관장하는 인물은 샤먼(Shaman·우리네 무당)이다. 샤먼은 인간과 하늘을 연결해 준다. 그 하늘 신을 몽골에서 텡게르(Tengger), 혹은 텡그리(Tengri)라고 한다. 혹자는 호남지역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당굴’이란 단어의 어원이자, ‘단군’과도 연계된다는 주장을 편다. 기마민족 훈(흉노)의 뒤를 이은 선비족, 돌궐족, 몽골족까지 초원지대 하늘 숭배 제천(祭天) 신앙이 돌무더기 ‘오보’ 쌓는 풍습으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몽골초원 주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로 퍼진다. 서낭당 돌탑의 기원은 알겠는데, 그럼 오색천 ‘하닥’은?

   
▲ 카자흐스탄 이식 쿠르간의 서낭당. 살아 있는 나무에 천을 매단 기복신앙 풍습을 볼 수 있다. ⓒ 김문환

에베레스트 서낭당은 ‘하타’를 맨 ‘다르초’ 

무대를 에베레스트로 다시 옮기자. 몽골 ‘오보’의 천 ‘하닥’을 에베레스트 북쪽 지역 티베트 말로는 ‘하타(Khata)’, 에베레스트 남쪽 지역 네팔어로는 ‘하다(Khada)’라고 부른다. 티베트를 지배하고 있는 중국 한자로는 ‘하다(哈達)’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하타’를 매고 선 나무를 티베트어로 ‘다르초(Darchorg·국내에서는 ‘타르초’라고 흔히 말함)’라고 부른다. 숱한 산사태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올라 20∼30분 머물다 내려와야 하는 그곳의 행운을 비는 서낭당은 ‘다르초’다.

우리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운동장을 떠올려 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만국기가 펄럭인다. 이건 어디서 온 풍습일까? 티베트 ‘다르초’가 천 ‘하타’를 나무기둥에 세로로 매는 풍습이라면, 나무기둥 없이 줄을 길게 늘여 가로로 매는 것은 ‘룽타(Lunh ta·일명 룽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티베트 서낭당은 ‘다르초’와 ‘룽타’ 2개인 셈이다.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상징해 주로 흰색 천을 쓴다. 그렇다면 ‘다르초’나 ‘룽타’에 쓰는 ‘하타’ 천의 기원은? 고대 인도신앙과 불교다. 고대 인도신앙에 선신(善神) 데바(Deva)와 악신(惡神) 아수라(Asura)가 싸운다. 이런 개념은 BC 6세기 네팔 남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부처님의 불교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 부처님 설법을 깃발에 적어 악신과 싸울 때 쓴 게 불교 깃발 풍습의 기원이다. 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사람들이 실제 쓰는 풍습이 생긴 것은 한참 후대인 11세기 티베트 불교에서다. 그렇다면 티베트의 ‘하타’가 몽골로 간 걸까?

몽골 침략시기 13세기, 문화 대이동…서낭당 전파

13세기 지구상 최강 제국을 일군 몽골이 티베트를 점령한다. 몽골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티베트 문화에 깊숙이 물든다. 중국을 정복하고 대원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티베트 승려 파스파에게 명령해 티베트 문자를 살짝 바꾼 몽골 문자(파스파 문자)를 만들 정도였다. 티베트의 흰색 천 ‘하타’가 몽골로 와 푸른색(하늘 상징)천 ‘하닥’이 된다. 몽골 전통 샤머니즘의 돌탑 ‘오보’에 천을 맨 나무 ‘다르초’가 더해진다. 13세기 말∼14세기 말까지 100년간 고려 왕실은 몽골 말과 변발 같은 몽골풍습을 받아들였다. 서낭당의 유래를 놓고 우리 민족 고유 전통 설에서 6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 선비족의 북제(北齊) 때 성(城) 수호신 성황(城隍)신앙이 모태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유물로 확인되는 서낭당 풍습은 몽골 유입설에 힘이 실린다.

몽골의 오보는 1920년대 이후 소련 지배 아래 사회주의 독재 기간 중 철퇴를 맞았다. 티베트의 다르초 역시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숱하게 부서졌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진행과정 중에 미신의 상징으로 낙인 찍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나마, 티베트와 몽골에서는 민간에서 명맥을 유지하지만, 우리는 민속박물관이나 일부 관광지에서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새해 건강과 행운을 빌던 기복신앙(祈福信仰) 풍습으로 서낭당은 한국인의 기억에서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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