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⑩ 고대사회 화장실 문화
[문화일보 공동연재]

‘아이다’를 비롯해 베르디 오페라가 초연되며 음악계를 전율시키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유럽 남부 최대 고딕양식 성당 두오모(Duomo)가 있으며, 1958년 시작돼 세계 4대 패션쇼의 하나로 자리잡은 패션의 고장…. 어디일까? 축구팬들을 열광시키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의 도시,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지배 아래 공학과 해부학에 심취하던 이탈리아 경제 중심지이자 롬바르디아의 주도 밀라노(Milano)다. 연중 전 세계 관광객으로 붐비는 밀라노 중앙 기차역. 볼일 급한 여행객이 화장실 찾기가 어렵다. 간신히 딱 한 군데 발견해 들어가려면 이게 웬일. 출입구가 막혔다. 1유로를 내며 새삼 화장실 인심 하나는 으뜸인 금수강산에 미소 짓는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의 화장실 문화가 이리 야박하게 된 역사적인 이유가 있을까? 최근 경주의 신라 수세식 화장실 발굴을 계기로 고대사회 화장실 문화를 들여다본다.

▲ 터키 에페소스 유적지의 로마시대 화장실에 탐방객들이 당시 사용했던 자세로 앉아 있다. ⓒ 김문환

물로 처리한 로마시대 수세식 화장실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중해 유적지인 터키 서부 연안 에페소스(Ephesos). 그리스 로마부터 기독교 시대까지의 유적이 즐비하다. 도로, 도서관, 유흥업소, 일반 저택, 극장이 그대로 남아 로마의 생활문화상을 들여다보기 안성맞춤이다. 고대 로마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에페소스 유적지에서 낯선 동방의 탐방객에게 흥미로운 유적은 화장실이다. 위생문화라면 아무래도 로마 아닌가. 로마인들의 화장실 문화, 어떤 풍경이었을까?

‘백문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 즉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좋고 ‘백견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실행에 옮겨 보는 것이 문화를 체험하는 더 좋은 방법이다. 에페소스 로마 화장실에 털썩 앉아보자. 우리는 예전에 무릎을 쪼그려 앉았지만, 여기는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얼핏 긴 벤치처럼 생겼다. 위쪽으로 표주박 모양의 구멍이 뚫렸다. 그 위에 정확히 엉덩이 위치를 맞춰 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테니 말이다. 용변은 밑으로 뚝 떨어진다. 밑은 저장하는 시설이 아니다. 물이 흐르면서 오물을 하수도로 흘려보낸다.

▲ 그리스 코린토스 유적지의 로마시대 화장실. 바닥에 파인 홈에 흐르는 물로 엉덩이를 닦았다. ⓒ 김문환

난방 시설에 바닥 모자이크까지 갖춘 호화 공중화장실

무대를 프랑스 남부 로마도시 비엔(Vienne)으로 옮겨 보자. 생 로맹 앙 갈(Saint Romain en Gal) 로마 유적지구 화장실을 찾으면 수세식 화장실의 면모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 물이 흐르도록 복원해 놨기 때문이다. 요즘 지구상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의 면모다. 깨끗한 것은 좋은데, 수줍음 많이 타는 사람은 배 속이 시원해진 뒤가 문제다. 혼자 사용하는 시설이 아닌 탓이다.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면…, 칸막이도 없이 바로 옆에 말이다. 긴 벤치처럼 생긴 변기에 표주박 구멍이 다닥다닥 붙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앉아 일을 본다, 대화도 나누면서…. 발밑에 파둔 홈을 타고 물이 또 흐른다. 용도는? 작은 막대에 붙은 스펀지를 여기에 적셔 엉덩이를 닦아 낸다. 깨끗이 씻어서 다시 걸어둔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막대 스펀지로 자신의 엉덩이를 닦는다.

지중해 한복판 시칠리아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유적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돌에 앉는다면 겨울철 추울 텐데, 그 대비책을 갖춘 화장실을 만난다. 화장실 바닥을 따듯하게 덥혔다. 난방 시설을 갖춘 수세식 화장실. 그뿐만이 아니다. 장식 측면도 고려해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바닥에 설치해 멋진 외관을 갖췄다. 호화 수세식 화장실이었던 셈이다.

▲ 폼페이 건물 벽에 있던 그림에 카베 말룸이라고 쓰여 있다. 나폴리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김문환

수세식 화장실로 돈 번 로마 황제와 그 후예 유럽국가들

이번에는 로마 문명의 살아있는 백과사전 폼페이(Pompeii)로 가보자. 골목을 가득 메운 개인주택 도무스(Domus)마다 화장실이 설치됐을까? 그렇지 않다. 폼페이의 숱한 도무스 가운데 화장실을 갖춘 집은 없다. 로마시대 화장실은 공중화장실이었다. 대개는 목욕탕에 설치됐다. 귀족들이 교외에 소유한 대형 농장 라티푼디움 속 대형저택인 빌라(Villa)가 아니면 화장실을 개인적으로 설치하지 않았다. 폼페이에 남아 있는 화장실은 포럼 목욕탕에 있는 게 전부다. 이렇게 화장실이 부족하다 보니 도로변이나 공터에서 몰래 실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경계하는 문구가 적힌 프레스코 그림을 보러 나폴리 국립박물관으로 가보자. 탐방객을 기다리는 로마 그림에 라틴어 문구 두 줄이 적혔다. 윗줄은 ‘Cacator(카카토르·배변하는 자)’ 아랫줄은 ‘Cave malum(카베 말룸·오물 조심)’이다. 얼마 전까지 우리네 주택가 골목 담벼락에서 보던 ‘소변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이리도 비슷하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이 그림 속 여신과 어린이, 뱀은 낙서 이전에 그려진 별개의 내용이다.

보통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은 가야 하는 화장실. 공중화장실을 지어 놓고 돈을 받은 황제가 있었으니, 폭군 네로가 암살된 뒤 3명의 군인 경쟁자를 물리치고 황제에 오른 군인 출신 첫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년)다. 현대인이라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몰라도 그가 지은 건축물은 다 안다. 로마 한복판에 2000년 가까이 우뚝 솟은 피와 살육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이다. 네로 저택의 연못을 메워 폭군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로마 시민들을 위한 최고의 유희시설을 세운 결과다. 검투 풍습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살펴본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공중화장실에서 돈을 받아 국가 재정을 살찌우는 정책이다. 이 역시 현재까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유료 화장실로 이어져 무료 화장실에 익숙한 동방의 탐방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화장실 없는 5000명 도시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Versailles) 궁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구촌 관광 중심지 프랑스 파리 교외의 베르사유는 태양왕(Roi de Soleil)을 선언하며 절대왕정을 이끈 루이(Louis) 14세가 미국 식민지 루이지애나(Louisiana·루이왕의 땅이라는 뜻)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지었다. 1682년 완공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파리 튀일리 궁전으로 귀환할 때까지 프랑스 왕은 이곳에서 통치했다. 지붕 면적만 11ha에 달하며 700여 개의 방이 있던 호화 궁전, 정원에 35㎞의 운하를 파고 길만 20㎞를 냈던 베르사유에 왕만 산 게 아니다.

귀족은 물론 외국에서 온 사절까지 포함해 무려 5000여 명이 살았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큰 도시규모 궁전에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다. 요강 같은 이동식 변기를 사용한 것인데, 그게 제대로 처리됐을 리 만무하다. 이는 베르사유에 앞서 프랑스 왕들이 심취해 건축했던 루아르 강변의 그림 같은 르네상스 양식 성들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향수가 발달한 이유를 곰곰 되짚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동식 변기라고 하니, 우리네 요강이 떠오른다. 고대 고구려나 신라, 백제에서 요강을 썼을까? 화장실 문화가 어땠을까?

▲ 만주 집안 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구려 요강. 남성전용 소변기다. ⓒ 김문환

만주 집안 박물관의 고구려 남성 전용 소변기 

만주벌판으로 가보자. 요령성 환인(桓仁) 만주족 자치현. 말이 만주(여진)족 자치현이지 그곳에서 만주족을 만날 생각은 접는 게 좋다.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한 뒤, 만주족은 한족에 완전 동화됐고 만주어도 사라진 지 오래다. 문서나 유물로만 전할 뿐이다. 환인에 오녀산성이 자리한다. 고주몽이 나라를 세웠다는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산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험준한 산꼭대기에 자리한 오녀산성이 발굴돼 여러 건물지가 드러났지만, 화장실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 환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주몽의 아들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천도한 두 번째 수도 집안(集安)이 있으니 말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로 평안북도 만포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집안에 그 유명한 장군총(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귀족 고분군은 물론 425년까지 도읍지이던 국내성과 전란 시 대피성인 환도산성이 오롯이 남았다. 우리의 관심사, 화장실 유적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지만, 관련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은 출토됐다. 그 유물이 시내 한복판 집안 박물관에서 기다린다. 중국 박물관이지만, 100% 고구려 유물로 가득 채워진 고구려 유물의 보고(寶庫)다.

1층 전시실에 고구려 요강이 2개나 전시돼 한민족 후예들의 탐방을 반긴다. 하나는 환도산성 아래 산성하 묘구 365번 묘에서 출토된 요강이다. 중국어로 호자(虎子)라고 적혔다. 물론 생김새로 봐서 알 수 있듯 여성들은 사용할 수 없는 금녀(禁女)의 남성 소변기다. 또 하나는 보존상태가 더 좋은데 집안 교외 칠성산 묘구에서 출토됐다. 역시 남성전용 소변기다. 한겨울 솜이불 푹 덮고 자며 발치에 두던 어린 시절 요강과 고구려 조상님들이 사용하던 요강이 겹쳐지면서 한동안 자리를 뜨기 어렵다.

경주 동궁 신라 수세식 화장실… 익산 왕궁리 백제 화장실

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지로 이동한다. 백제시대 7세기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재위 600∼641년) 시기 대형 화장실 터가 눈에 잡힌다. 2005년 발굴된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기초를 보여주는 시설)다.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다. 물을 사용한 흔적이 있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왕이나 최상 지배계급이 활용한 시설일 터이니, 왕궁리가 백제의 정식 도읍지는 아니어도 행궁이나 별궁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유적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용변 보는 모습을 고스란히 복원해 탐방객의 눈길을 끈다. 1970년대까지 농촌 지역에서 보던 익숙한 모습 그대로다.

지난 9월 26일 흥미로운 기사가 문화일보 지면을 탔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사적 18호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8세기 수세식 화장실을 발굴했다는 내용이다. 흙으로만 남은 익산 왕궁리와 달리 화강암에 구멍을 파 만든 타원형 변기(지름 12∼13㎝)와 발판(길이 175㎝, 너비 60㎝), 그리고 오물과 물이 흐르는 하수 시설이 1300여 년 만에 햇빛을 봤다. 8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국사 해우소 시설과 닮은꼴이다. 로마와 다른 쪼그려 앉기 방식이다. 물은 바가지로 떠 직접 흘려보냈다. 방식의 차이를 떠나 위생을 추구하는 문화의 속성이 시공을 초월해 잘 묻어난다.


문화일보에 3주 단위로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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