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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의 시민… ‘베마’서 민주주의 외쳐
[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⑨ ‘광장민주주의 기원’ 고대 아테네
[문화일보 공동연재]
2017년 10월 24일 (화) 20:02:14 김문환 danbi@danbinews.com

아테네 시민병사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뒤, 42.195㎞를 달려 아테네에 승전보를 전하고 숨을 거둔다. 언제였을까? BC 490년이다. 독일의 고전학자 아우구스트 뵈크(August Bockh)는 1855년 다양한 자료를 검토한 끝에 그날이 9월 12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오늘날까지 그대로 인정되는 그날의 감동적인 승리를 전한 장소는 아테네 어디일까? 아테네 모든 시민이 모이는 너른 마당인 광장(廣場), 아고라(Agora)다.

   
▲ 귀족회의가 열리던 아레오파고스 바위 언덕에서 내려다본 고대 아테네 아고라의 모습. 오른쪽 기다란 지붕 건물이 아탈로스 스토아이며, 이곳에서 왼쪽 언덕의 헤파이스토스 신전까지가 아테네 아고라다. ⓒ 김문환

칼로스카가토스 시민들이 모이는 너른 마당, 아고라

아테네에서 태어나 건강하게 교육받고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면 이런 수식어를 붙여준다. ‘칼로스카가토스(Kaloskagathos)’. ‘칼로스(Kalos·아름다운)’와 ‘카가토스(Kagathos·덕이 있는)’의 합성어다. 아테네 시민사회의 당당한 주역이 되는 이 아름다운 신체와 훌륭한 인품의 칼로스카가토스 시민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고라다. 그리스어 아고라초(Agorazo·‘모이다’ 또는 ‘모여서 장사하다’)에서 나왔다. 모 인터넷 포털의 토론방 ‘아고라’는 주권 시민들이 모이는 가상공간, 여론광장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 문명권의 모든 도시는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Acropolis)로 구성된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Polis)의 가장 높은(Acro) 산꼭대기다. 신들의 공간이다. 국립 서울대의 아크로폴리스는 이런 의미에서 권위주의적이다. 엄숙하고 지엄한 곳인 아크로폴리스 아래 아고라는 세속적인 시민의 공간이다. 물건을 사고팔거나 정보를 주고받고, 배우고 가르친다. 무엇보다 공적활동, 그러니까 송사를 다루는 재판, 정치활동이 펼쳐진다. 정치의 중심지다.

아고라 연설단 베마(Bema)의 정언(定言)-시민 민주주의

그리스 수도 아테네를 찾으면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호여신 아테나를 기리는 파르테논(Parthenon, Parthenos·숫처녀의, 전쟁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은 처녀성을 고집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파르테논 신전이란 숫처녀 신전이란 의미다) 신전이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솟아있다. 그 서쪽 아래로 고대 아고라가 2400년 전 소크라테스가 거닐던 모습 그대로 오롯하다.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제논이 BC 3세기 초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던 스토아도 마찬가지다. 아고라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유물은 연단(演壇), 즉 베마(Bema)다. 돌을 깔아 바닥보다 약간 높게 솟은 연단에서 BC 490년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시기 살라미스 해전의 주역 테미스토클레스, BC 5세기 중반 아테네 민주주의의 수호자 페리클레스, 아테네를 멸망으로 몰고 간 전쟁론자 알키비아데스 등,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들이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 아테네 아고라의 베마. 아탈로스 스토아 바로 앞, 판아테나이카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한다. 지금은 땅에 묻혀 연단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여기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 김문환

오늘날 아고라 유적지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 남은 아탈로스 스토아 바로 앞 나무 밑에 자리하는 베마. 주의를 기울여 찾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모진 풍상을 겪은 돌 연단은 이끼가 끼어 거뭇하다.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베마 앞에서 느끼는 숙연함은 영웅호걸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숱한 무명의 시민들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가진 자유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던 곳, 칼리스카가토스 시민들이 표현할 자유가 보장되던 곳, 그 표현이 지도자를 뽑고, 공동체 운명을 결정하던 정치체제에 고개가 숙여진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 광화문광장을 수놓던 촛불과 태극기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촛불이나 태극기, 손에 들린 내용물에 관계없이 시민 누구나 자기 의사를 평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렇게 모은 힘으로 사회를 운영하던 2500년 전통의 민주주의 정언(定言)이 인류 역사에 희망을 비춘다.

트로이 전쟁 시기 아킬레스 무구(武具) 주인공을 가리는 투표

아테네인들은 어떻게 그런 권한을 갖게 됐을까? 그것도 동시대 지구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민주주의 철학과 민주정치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 수 있었을까? 아테네에서 인류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 원칙을 적용한 사건은 호메로스 작품 ‘일리아드(Iliad)’에 나온다. 그리스 연합군의 용장 아킬레스가 트로이 성벽을 기어오르다 트로이 왕자이자 헬레나를 유인해 트로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스건(腱)을 맞아 죽는다. 이때 아킬레스 시신을 트로이 성벽에서 업어온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스의 무구(武具)를 갖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그때 오디세우스를 엄호했던 아이아스가 자신의 엄호가 없었다면 아킬레스 시신을 온전하게 운구할 수 없었다며 자신이 무구의 주인공이라고 나선다. 아킬레스의 무구는 아킬레스의 어머니인 바다요정 테티스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부탁해 만든 신령스러운 무기였던 것이다.

아킬레스 무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지자 그리스 연합군을 지원하던 여신 아테나는 병사들 투표로 무구의 주인공을 가리라고 일러준다. 결국, 병사 투표에서 오디세우스가 이겼고, 패한 아이아스는 자결로 삶을 접는다. 민주적 원칙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명예를 소중히 여기던 고대 그리스인의 면모가 엿보인다. 호메로스의 두 번째 작품 ‘오디세이아(Odysseia)’에는 오디세우스가 세 눈박이 식인종 폴리페모스 사회를 의회도 없는 야만인들이라고 비하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미케네 시기(BC18∼BC12세기) 민회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평민에게도 투표권을, 법치 민주주의의 출발 드라콘(Drakon)

귀족 과두정치(寡頭政治·Oligarchy)를 거쳐 아테네가 민주정치로 들어선 결정적인 계기는 BC 621년이다. 드라콘이 최초로 성문법을 만들며 민주주의 원칙을 세웠다. 임의통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법을 제정했는데, 너무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나중에는 그 폐해 또한 적지 않았다. 오늘날 영어 단어 드라코니언(Draconian)이 ‘매우 가혹한’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바뀐 이유다. 드라콘은 귀족이 아닌 평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는데, 그 기준은 전쟁이 터졌을 때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우느냐의 여부였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울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권을 준 점이 이채롭다. 병역 면제 고위 공직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전통은 참으로 유구하다. 물론 당시 시민병 제도에서는 무기를 자기 돈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는 평민은 나름대로 경제력이 있는 경우였다. 민주주의의 길을 터준 드라콘은 큰 인기를 얻는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그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환호하며 겉옷 히마티온(Himation·온몸을 칭칭 감아 입는 그리스 옷. 남자들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냄)을 벗어 던졌는데, 그 옷에 그만 숨이 막혀 죽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고사가 전한다.

‘아틀란티스 대륙’ 전설의 기원 솔론(Solon), 무일푼 시민도 투표권

이후 BC 594년 다시 비상대권을 맡은 솔론은 재산이 없어 무기를 구입할 수 없는 빈민에게도 투표권을 안긴다. 단 공직에 진출할 권한은 주지 않았다. 전체 국민을 4등급으로 나누고, 4등급 모두에 투표권을 주되, 최하위 무산계급은 공무담임권 자격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돈을 벌어 신분을 상승시키면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경제 정책의 핵심은 극심한 빈부격차 해소다. 폭발 직전으로 몰린 빈민계층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솔론은 아테네 시민이라면 아무리 빚을 져도 노예로 강등될 수 없도록 했으며 이자율을 20%로 제한하는 혁신적인 조치를 취했다. 2002년 66%, 2007년 49%, 2011년 39.9%, 2014년 34.9%, 2016년 3월에야 27.9%로 낮아진 대한민국 이자 상한선은 선진국은 고사하고, 2600여 년 전 솔론을 따라가기에도 멀었다. 귀족층은 당연히 솔론을 멀리했고, 빈민층 또한 토지 재분배를 실시하지 않는 솔론에 불만이었다.

   
▲ BC 594년 무일푼 평민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한 민주주의의 상징 정치인인 솔론. 레바논 베이루트 국립박물관에 로마시대 모자이크 형태로 얼굴이 남아있다. ⓒ 김문환

양쪽 모두에게 인기를 잃자, 솔론은 미련 없이 정치에서 손을 놓고 무려 10년간 이집트를 포함한 오리엔트 역사탐방에 나선다. 이때 솔론이 이집트 신관에게서 들어 아테네에 옮긴 말을 플라톤이 200여 년 뒤 스승 소크라테스와 티마이오스의 대화록 ‘티마이오스(Timaios)’에 남겼다. ‘아틀란티스 대륙’ 전설은 그렇게 생겨나 지금까지도 신비의 고대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화수분처럼 자아낸다. 당시 솔론도 들렀을 페니키아 도시, 즉 오늘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국립박물관에는 로마시대에 만든 솔론의 모자이크가 무일푼 노동자에게도 선거권을 준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탐방객에게 반갑게 손 내민다. 현대 민주주의 남상(濫觴), 영국에서 무일푼 노동자가 처음 선거에 참여한 것이 1900년이다. 영국 노동당은 그해 닻을 올려 창당 117년을 올해에 맞는다.

클레이스테네스, 18세 이상 모든 남자 시민에게 투표권, 공무담임권

이후 아테네는 클레이스테네스가 취한 확고한 민주조치로 현대 민주주의의 원조로서 길이 역사에 남는다. 클레이스테네스는 BC 508년 18세 이상 모든 남자 시민에게 투표권은 물론 공무담임권을 줬다.

오늘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 제외한 나머지 34개 국가들이 채택하는 18세 선거권은 2500년 된 아테네 민주주의 전통이다. 현대 사회 공무담임권은 나이가 많이 올라갔다. 우리의 경우 국회의원 25세, 대통령 40세이다. 2017년 봄 프랑스 대선에서 당선된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9세로 신세대 정치의 잠을 깨웠다. 2017년 10월 총선에서 집권한 오스트리아 우파 지도자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불과 31세다. 현대 민주정치 역사에서 가장 젊은 국가 지도자로 이름을 올렸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직접 민주정치를 닮아가는 것일까?

투표권은 물론 아테네 18세 이상 시민들은 아고라에서 투표에 앞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 의사를 밝힐 권리를 보장받았다. 아테네가 성장하면서 인구가 늘자 아고라가 비좁았다. 시민들은 정치집회와 투표장소를 아크로폴리스 맞은편 프닉스 언덕으로 옮긴다. 아고라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다보이는 야트막한 돌산이다. 그리스에서 흔한 돌산 지형인데, 연단인 베마가 지금 써도 손색없을 만큼 원형 그대로 큼직하게 남았다. 학교 운동장 연단을 연상시키는 프닉스 베마에 오르면 2500년 전 소중하게 가꾼 시민참여 광장 민주주의의 의미가 다시 한번 되새겨진다.


문화일보에 3주 단위로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동서문명사'와 'TV저널리즘'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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