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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디촌'과 메트로시티, 그들만의 도시?
[상상사전] '빗장도시'
2017년 10월 20일 (금) 20:44:31 박진홍 기자 fallingmee@naver.com
   
▲ 박진홍 기자

용호동은 부산 사람들에게 '문디촌'으로 불렸다. 문둥병으로 낮춰 부르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저녁 밥상에서 용호동으로 이사 간다는 아버지의 일방적 통보를 듣고 펑펑 울었다. 하필 '문디촌'이라니! 환자도 동네 모습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문디'라는 단어에서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어머니는 새로 이사 가는 집이 엘리베이터 딸린 아파트라며 나를 달랬다. '문디촌'에 아파트라니, 이건 또 무슨 얘긴가?

가서 살아보니 용호동은 공포의 '문디촌'이 아니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살던 곳에는 가구공장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 사귄 친구들은 단칸방 연립주택부터 잉어 기르는 연못이 있는 저택까지 다양한 집에서 살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수업이 끝나면 오륙도와 광안리가 눈앞에 보이는 뒷산으로 쏘다니며 놀았다. 집 근처 백운포 바닷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그곳에서 사귄 낚시 동료들과 나눠먹고 온 아버지는 "진작에 이사 올 걸 그랬다"며 용호동 예찬을 늘어놓았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과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는 살 만한 동네라는 아버지 의견에 나도 공감했다.

   
▲ 용호동 한센병 환자촌 철거 전 모습. 지금 이곳에는 '오륙도 SK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 네이버 블로거 '팀빗(sakmakpa)'

용호동에 산 지 4년, 철강공장이 있던 매립지에 'LG 메트로시티'라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모두 입주하면 7,500가구가 되는 부산에서 가장 큰 단지였다. 바닷가 아파트라는 로망과 도심에서 가까운 입지, '부산의 8학군'이라 불리는 교육 여건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입주를 시작하자 아반떼, 소나타만 다니던 용호로에는 외제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 인구가 태백시와 맞먹기 직전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지만, 학교에서는 메트로시티에 사는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메트로시티 단지 안에만 초등학교 2개, 중·고등학교 1개씩이 들어섰는데, 주민들이 "질 떨어진다"며 메트로시티 아이들은 메트로시티 학교에만 배정해달라고 교육청에 몰려가 시위를 벌인 결과였다. 주민들은 아예 용호동 이름에 '문디촌' 이미지가 남아있다며 메트로시티 단지만 떼내 '엘지동'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메트로시티와 용호동 주민들의 집단의식 사이에 담장과 출입문이 생기고 그 문에 빗장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 용호동 LG메트로시티 전경. ⓒ 네이버 지도 항공뷰

메트로시티가 '빗장도시'로서 입지를 굳히면서 용호동 사람들에게 집은 '사는 곳'에서 지위와 경제력의 상징, 곧 '지위재'가 됐다. 이웃집 누가 대출을 받아 메트로시티에 입성했다는 소식이 학교, 시장, 반상회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메트로시티 안에 들어가면 의사·정치인·판검사와 이웃이 되고, 내 아이는 진학 수준 높은 학교를 배정받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용호동 사람들도 들먹였다.

용호동 주민 상당수는 은행 대출 창구로 몰려갔다. 무리한 대출금은 자신의 품격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자기 집이 없거나 대출할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난 연립주택과 잉어 살던 저택은 SK·롯데 마크를 박은 프리미엄 아파트로 바뀌었고, 아버지는 69층짜리 주상복합이 올라가고 있는 매립지 앞에서 혼자 낚시를 했다. 아버지 입에서는 더 이상 살 만한 동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 LG메트로시티 앞 바다를 매립해 지은 'GS하이츠자이'. 그 앞으로는 69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W'를 건설 중이다. ⓒ 위키피디아

도시는 계층·인종·소득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듬살이터'다. 잉어 저택, 단칸방,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빗장 없이 교류하던 용호동은 건강한 모듬살이터였다. 죄다 프리미엄 아파트에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지금 용호동과, 한센병 환자들만 모여 살던 '문디촌' 시절 용호동은 '그들만을 위한 동네'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메트로시티는 용호동을 빗장도시로 바꾸는 신호탄이었다. 개발업자들은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메트로시티보다 비싼 빗장도시를 용호동 곳곳에 만들더니, 급기야 친구들과 내가 뛰놀던 백운포 뒷산에는 분양가만 수십억 원대인 초호화 빌라단지까지 생긴다고 한다. 소나무만 들어선 숲에 재선충이 돌면 숲은 다 망가진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천혜의 자연 풍광, 그리고 다양한 집에 살던 사람들과 인간적 교류를 즐기던 용호동에는 아파트에서 빠져나온 자동차들로 교통지옥이 된 용호로만 남았다. 이게 어디 용호동만의 이야기겠는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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