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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 내쫓고 '부촌' 만드는 재개발
[단비월드] 노동당에도 멸시 당하는 런던 사회주택 거주자
2017년 07월 23일 (일) 16:20:15 김소영 기자 kim314sy@gmail.com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경제논설위원 아디티야 차크라보르티는 지난 3일자 칼럼 ‘권력이 현대 영국에서 작동하는 방법: 명백한 멸시’에서 도시재개발계획으로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샘 레가트(63·여)의 사례를 소개했다.

런던시 해링게이구 토트넘의 노섬벌랜드파크 거리에 사는 레가트는 정부 소유의 다세대 임대아파트에서 3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으로 분류되는 이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이웃을 사귀었다. 월세는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꼬박꼬박 냈고 주민회의에도 다 참석했다. 지난 2011년 토트넘에서 인종차별과 긴축재정에 대한 불만 등으로 방화, 약탈, 폭력 등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엉망이 된 거리를 청소했다. 그는 반평생을 보낸 이곳을 떠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사회주택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노섬벌랜드파크 거리의 모습. © flickr

민간 투자 끌어들여 낡은 동네 허물려는 자치구 

레가트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 것은 해링게이구 구의회가 민간기업과 합작투자사(HDV)를 설립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HDV의 목적은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여 정부소유 부동산을 재개발하는 것이다. 구의회가 HDV 설립을 승인한다면 레가트가 사는 낡은 임대아파트는 허물어질 것이 뻔하다. 차크라보르티는 “레가트와 그의 이웃들은 시공무원한테서 HDV 계획을 들은 적이 없으며, 구의회에 문의한 결과 ‘어떤 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답만 얻었다”고 썼다.

HDV 계획은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뿐 아니라 사실상의 ‘민영화 계획’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차크라보르티는 ‘HDV 지분 절반을 구의회가 소유할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다’는 구의회 측 반박에 대해 민간합작사인 렌드리스(Lendlease)의 전적을 들추었다. 렌드리스는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런던 사우스워크구 구의회와 손잡고 헤이게이트 주택단지를 재개발했다. 당시 사회주택 1천2백여 채를 허물었지만, 재공급한 것은 10%도 안 되는 82채 뿐이었다. 나머지 부지에는 일반 상업용 건물을 지어 국내보다 싱가포르에서 먼저 팔기 시작했다.

빈곤층·흑인은 살 곳 없는 새 동네 

차크라보르티는 거의 처음으로 대중에게 HDV 계획을 알린 지난 1월의 칼럼에서 “해링게이구 구의회가 공공임대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사람을 쫓아냄으로써 빈곤 지역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칼럼에 따르면 HDV 계획 서류에서 사회주택 건설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해링게이구 구의회가 HDV를 통해서 사회주택을 지을 이유가 없으며 대신 ‘적정 수준’의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집들을 제공할 거라고 말했다”고 썼다.

   
▲ HDV 계획이 진행될 토트넘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는 홍보 자료들. © 해링게이구 홈페이지

구의회는 재개발 후 공공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주민들이 재입주하는 걸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 해링게이구 구의회의 클레어 코버 의장은 “기존 주민들이 원한다면 재입주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1월 <가디언>을 통해 말했다. 하지만 차크라보르티가 약 6개월 후 조사한 HDV 서류는 “재입주 권리보다 주민들의 이주를 우선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크라보르티는 주민 4명 중 1명이 흑인인 해링게이구의 미래 이미지를 보여주는 투자자용 책자에서 흑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민 레가트는 “구의회는 우리 동네를 그렌펠 타워 없는 켄싱턴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렌펠 타워는 런던의 대표적 부촌인 켄싱턴에 있지만 주민 대부분이 저소득층 이민자인 공공임대아파트다. 관리비용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무리한 증개축을 했던 그렌펠 타워는 지난달 14일 화재로 전소했고 최소 80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핍과 범죄에 노출된 주민들, 지지정당도 외면 

차크라보르티는 해링게이구 구의회가 레가트 같은 주민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고 재개발계획을 암암리에 진행하는 이유를 ‘멸시(contempt)’라는 감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멸시는 ‘사람이나 물건이 가치가 없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말한다. 멸시는 최근 발생한 그렌펠 타워 화재 사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렌펠 타워 주민들은 불이 나기 전부터 600여 명이 사는 24층 건물에 비상구가 하나밖에 없는 등 재난 대비가 소홀하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관리를 위임받은 민간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2015년 복합결핍지수(IMD)에 따르면 해링게이구는 런던의 33개 구 중 6번째로 가난한 곳이다. 범죄발생률은 영국 326개 지방정부 중 8위, 주거 및 공공서비스 진입장벽은 10위로 높았다.

   
▲ 불에 타고 있는 런던 켄싱턴의 그렌펠 타워 모습. © BBC 뉴스 갈무리

가난해서 멸시 받는 해링게이구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대부분 노동당 지지자다. 전통적으로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영국 보수당은 사회주택을 공격하는 정책을 편 반면, 노동당은 그동안 공공임대주택을 보호했다. 하지만 차크라보르티가 ‘지방정부가 시도한 가장 큰 규모의 민영화’라고 말한 HDV 계획은 노동당이 이끄는 구의회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해링게이구 구의회는 자신들의 지지자를 멸시의 눈초리로부터 방어하는 대신 지역에서 몰아내려 하는 셈이다.

[기사 원문 링크]

Lives torn apart and assets lost: this is what a Labour privatisation would mean

How power operates in modern Britain: with absolute contemp


IS, 히잡, 국제유가, 그렉시트, 브렉시트, 스위스 국민소득, 인종갈등, 미국대선, 일대일로, 지카 바이러스, 사드, 북핵... 외신을 타고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소재다. 이를 제대로 모르면 현대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아가 무역, 안보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다. 인류역사가 제국주의 시대로 변모한 이후, 자본과 권력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는다. 냉혹한 국제 정치, 경제 무대에서 자본(Capital)과 힘(Hegemony)의 논리를 제대로 꿰뚫어야 하는 이유다. 단비뉴스는 <단비월드>를 통해 국제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표면적인 움직임과 그 이면의 실상을 파헤친다. 난마처럼 얽힌 우리 앞의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을 증진하는 열쇠를 얻기 위해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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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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