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6월 항쟁 이후 30년,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

6·10민주항쟁 이후 30년. 정치적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며 민주항쟁을 촉발했던 언론은 이후 30년간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왔을까?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언론은 다수 국민에게 다른 권력 못지않게 개혁대상으로 지목됐다. ‘이게 나라냐’의 외침 뒤에는 ‘이게 언론이냐’는 외침이 있었다. 언론이 지난 30년 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6월 항쟁 이후 30년,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기획토론회를 열었다. 한국 언론의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언론자유투쟁의 현실진단과 과제, 전망 등을 이야기했다. 발제자로는 이채훈 PD연합회 정책국장,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김성해 대구대 교수가 참여했다.

민주주의 완성 위해 언론이 나아갈 길 모색

먼저 이채훈 PD연합회 정책국장은 ‘민주화운동 30년과 언론운동 30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 국장은 최근 MBC와 <조선일보>, 자유한국당의 적폐연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MBC가 뉴스를 사유화한 데 대해 내부에서 MBC사장 자진사퇴 요구가 나오니까 이를 방송장악 의도라고 <조선일보>가 사설을 싣고, 자유한국당이 이어 언론정치적폐 카르텔이라고 지적한 것은 적폐 세력이 연대하는 과거 메커니즘 그대롭니다.“

이어 이 국장은 언론개혁과제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개혁을 위해 실현해야 할 과제들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제시한 ‘불법부당한 방송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에 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 방송 관련 14개 항목, 신문저널리즘 강화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 연합뉴스의 독립성·자율성·공정성 보장, 독립미디어 활성화와 시민주권 강화 등을 들었다. 또한 언론노조가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한 101명의 ‘언론 부역자’들을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개혁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이 국장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비롯한 언론 개혁은 개혁 과제일 뿐 아니라 민주정부가 추진해야 할 모든 분야의 개혁을 조금이라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 사회를 맡은 김영욱 카이스트미래전략대학원 교수(왼쪽)와 발제를 맡은 이채훈 PD연합회 정책국장. ⓒ 황금빛

이 국장은 촛불집회부터 대선정국까지 생긴 새로운 현상으로 강력해진 인터넷 기반 직접 민주주의를 들면서 “(언론은) 참여를 확대하면서 장을 제공하는, 그러면서 한발 앞서가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용자가 아닌 ‘유저’가 된 시민도 어디서든 생산될 수 있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난 30년 언론의 역사를 짚어보며 촛불혁명의 본질을 6월 항쟁 이후 한국에 확산된 신자유주의와 연결 지었다. 자본의 지배가 점차 강화됨으로써 6월 항쟁 이후 지속적으로 촛불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촛불혁명의 본질은 ‘헬조선’에 대한 불만 폭발이라는 주장이다. 이 국장은 ‘평화와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조중동의 종북프레임, 좌우프레임이 너무 보편화해서 의심하지 않는데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의제설정 능력을 진보언론이 가져야 할 때입니다. 더 말이 되는 진보 프레임이 영향력은 왜 더 작은가를  깊이 있게 분석해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야 합니다.”

또한 이 국장은 언론인들의 의식이 치열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PD들의 엘리트의식과 집단이기주의가 언론 개혁 내부의 걸림돌이라며 적폐청산을 위한 이들의 의식혁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적폐청산 위해 시민과 연계해야

토론자로 나선 김주언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언론, 자본, 권력의 3가지 축을 놓고 이야기했다. 그는 “과거 6월 항쟁 이전 관계에선 언론·권력·자본이 삼각동맹체제를 이뤄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서로가 기득권을 누려왔던 체제였다”며 “최근 들어 언론보다 자본의 힘이 커지는 그런 관계 흐름이 계속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자본의 힘을 더 막강하게 키워준 정부의 정책과도 관련 있다. 현재 민영 우위 체제와 신문에 대한 독과점 규제완화가 자본의 힘을 키워줬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했다. 6월 항쟁 이전에 언론이 정부의 물리적 통제를 받았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언론인 해고나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 등 간접적 통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이제 뉴스소비자들이 생산자로, 더 나아가 언론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 돼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발전을 보였다”며 “적폐청산을 위해 시민운동과 언론운동이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노동자들의 운동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가 그들의 움직임과 노력을 지원해주고 지지해주고 같이 하지 않으면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민언련이 종편특집프로젝트라서 해서 종편 관련 문제를 <파파이스>에 나가 이야기한 후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시민들이 언론문제에 호응하면 얼마나 크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권력이 지배하는 공영방송

다음으로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10가지 요인’을 발제했다. 이 대표는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첫째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언론사 사장’, 둘째 ‘말 안 들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지배구조’, 셋째 ‘사장 말을 따르는 충직한 간부들’, 넷째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압박’, 다섯째 ‘정당한 문제제기에 대한 보복과 징계’를 꼽았다.

이 대표는 87년 민주화 이후 방송사 노동조합이 출범하면서 독재정권 시기와 달리 낙하산 사장과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지만 민주정부에서도 낙하산 논란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민주정부는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인정하면서도 방송 제작 자율성을 보장했지만 결국 최고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방송사 공정성이 결정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에서 공정성 논란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토론자인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제를 하고 있다. ⓒ 황금빛

이처럼 권력이 공영방송을 지배한 결과는 어떨까? 이 대표가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제시한 것은 여섯째 ‘기자와 PD들의 자기 검열’, 일곱째 ‘언론중재와 고소·고발’이다. 여덟째로 그가 제시한 언론 자유 위협 요인은 ‘광고주의 압박’이다.

“콘텐츠를 팔지 못하고 광고를 파는 기형적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주와의 유착을 부르고 콘텐츠의 왜곡을 불러옵니다. 방송뉴스는 가십성 생활 정보로 넘쳐나고 신문 보도에서는 자본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기대하기 어렵지요.”

이는 아홉째 요인인 ‘위축효과 확산’으로 이어진다. 이 대표는 삼성의 보복성 광고 중단으로 <경향>과 <한겨레>가 자기검열을 하게 된 사례를 들며, 결국 삼성 일가의 권력을 아무도 견제하지 못하게 되면 최대 피해자는 삼성이 될 것이라는 한 언론학자의 말을 전했다.

열째 위협 요인은 ‘뉴미디어 플랫폼과 트래픽 종속’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형 포털의 문제는 단순히 뉴스 트래픽을 독점하고 어젠다를 잠식하는 것뿐 아니라 뉴스의 맥락을 해체하고 질 낮은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직접적인 사주의 압력’, ‘출업처 문화’, ‘언론사끼리 소송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언론 탄압’ 등을 언론 자유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언론자유는 끊임없이 공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수직적 권력 구조와 자립적인 수익기반이 없다는 것이 문제예요. 공영방송이 공적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다른 언론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건강한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의 원칙과 사명에 대한 구성원들의 강한 합의가 필요하고요. 이를 위해 언론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도 필요합니다.”

이에 더해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조중동 족벌언론이 언론자유 위협의 최대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족벌언론의 한 유형으로 SBS를 지적하며 SBS 출신의 청와대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 언론인의 자질과 기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종이신문은 데스크에서 걸러지는데 인터넷 매체들을 보면 문장의 주어가 뭔지 서술어가 뭔지 구별할 수 없는 데가 많습니다. 또한 스트레이트 뉴스에 자기 견해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지, 기자 겸 논설위원 직책이 생겼는지, 언론사 자체 교육 기능이 죽어있는 것 같습니다.”

최유리 자유언론노동조합 정책실 차장은 “87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요한 사람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기자뿐이 아니다”라며 “다양한 개인이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가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발행부수의 미신에 빠진 한국신문

세 번째 발제자인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진보 언론의 과제와 전망’을 발표했다. 이 원장은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스페인 <엘파이스>를 예로 들며 왜 유럽에서 진보언론이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매체가 되었는지 설명했다.

“한국 진보언론은 언론사를 지탱하는 세 기둥, 곧 독자, 자본, 광고 세 측면에서 삼각파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흔히 신문⋅방송 종사자들은 독자와 시청자 감소를 뉴미디어 탓으로 돌리는데 일정 부분은 핑계입니다. 특히 진보언론 종사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데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 당사자가 바로 자신들입니다.”

이 원장은 한국 신문이 ‘발행부수의 미신’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 <르몽드> <엘파이스> 등 세계적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유럽 진보신문들의 발행부수는 <한겨레> <경향신문>과 비슷한 20만부 안팎이다. 이 원장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신뢰도 자랑은 자주하지만 영향력이 왜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진보언론의 영향력을 그나마 지탱해주던 신뢰도마저 대선 국면에서 <조선일보>와 동반 추락했다며 이는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겨레>의 신뢰도가 보여주는 극적인 반전과 재반전은 진보신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가 ‘한경오’ 프레임의 주표적이 됐는데 <한겨레>의 역사와 공적에 비추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정치부 일부 기자와 논객이 ‘친문패권주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안철수와 김종인 같은 보수정치인의 행보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등 진보언론의 정도를 일탈한 보도 또한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사회부 법조팀과 최순실취재팀이 쌓은 신뢰도를 정치부 일부 기자가 까먹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진보언론의 일부 보도가 진보적 가치로 후보를 판단하지 않은 것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 내부에는 최소한의 합의된 논조가 없고 기자들이나 논설위원들 사이 정치적 성향 차이가 심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 언론은 정치 성향 차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가디언> <르몽드> 같은 데서는 현안이 발생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회의를 소집해 전체적인 보도방향을 정합니다. 때로는 합의가 되지 않아 정치부와 경제부가 각자 방향이 다른 기사를 내보낸 적도 있습니다. EU 가입이나 탈퇴 문제는 정치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다를 수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전체 편집국이든 정치부나 경제부든 토론을 거쳐 합의된 방향으로 보도한다는 겁니다.”

자기성찰 무풍지대 진보언론

이 원장은 “진보언론이 자기성찰 무풍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우리 언론은 좀처럼 오보를 정정하지 않고, 언론중재위 거쳐 대법원까지 가도 조그맣게 구석에 보도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금언처럼 ‘지연된 정정은 정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엘파이스>같은 스페인 신문은 ‘독자의 변호인’이 있는데 옴부즈맨하고 다른 게 ‘악마의 변호인’같은 구실을 한다는 겁니다. 무조건 독자 편에서 이의제기를 하는 건데 기자들의 개인적인 일탈을 막고 편집국의 집단오류나 확증편향을 예방할 수 있지요. 한국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 발제를 하고 있는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 황금빛

이 원장은 또 신문 구독자수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는 가운데 진보신문의 유가부수는 20만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발행부수 감소에 따른 위기가 진보언론에 일찍 닥칠 수 있어 마지노선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신문은 광고료 비중이 극단적으로 높은데, 구독률 감소가 광고주 이탈로 이어지면 진보언론에 일찍 위기가 닥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진보신문, 특히 <한겨레>의 재벌광고 의존도가 너무 높은 점을 지적하며 중소⋅중견기업 광고를 늘리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주식회사라면 소액이라도 배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편도 안 되는데 어떻게 배당하냐’고 그러는데 ‘주주 대접’에 들어가는 돈은 지출이 아니라 자기자본 증액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주주의 실질적 권리는 경영권 창출에 있다며 우리사주조합원만의 리그가 아니라 일반주주도 경영진 선출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피니언면과 미디어면 확충

이 원장은 진보언론의 콘텐츠 혁신전략으로 외국 언론 사례를 들어 2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오피니언 면 확대’다. 영향력 있는 신문의 공통점은 오피니언 면을 잘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온라인·모바일 등이 ‘매스미디어’ 구실을 하면서 신문은 ‘프리미엄 미디어’로 갈 수밖에 없다”며 “유럽에는 의견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신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미디어면 확충’이다. 그는 “영국 <가디언>은 미디어면을 통해 보수언론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며 “최강으로 구성된 미디어팀이 보수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의 <뉴스오브더월드>의 해킹 문제를 폭로해 폐간까지 이끌어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한국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커진 데는 동업자를 건드리지 않는 진보언론의 관대한 태도도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 좌파 언론의 정체성 위기

토론자인 서명준 경찰대 외래교수는 “진보언론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고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진보냐 보수냐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유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자유주의 좌파, <조선일보>는 자유주의 우파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경오’ 문제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 문재인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생산에서 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는 그동안 ‘한경오’가 보여줬던 내용 속에서 자유주의 좌파적 모습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서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체성 확립’이라는 데 동의한다”며 “정체성은 신뢰도나 영향력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자유주의 좌파로서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진보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해 ‘과연 <한겨레>가 얼마나 독자들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겨레>는 파편화한 뉴스가 아니라 맥락과 분석을 제대로 전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 되짚어 볼 때라고 말했다.

진 연구위원은 또 “프랑스 대표적 독립언론 <메디아파르>는 유료독자가 12만 명이 넘는 인터넷 매체인데 상당히 다른 편집국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저널리즘 작업을 하면서 저널리즘의 원칙이나 사명을 끊임없이 논의하며 합의를 찾아 나간다”고 말했다. 한국의 진보언론도 이런 편집국 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독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3E’로 실현하는 저널리즘 생태계

마지막 발제자인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의 모색’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생태계’ 개념을 ‘언론’에 적용했다.

“지금 디지털 혁명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뉴스의 일상화입니다. 저널리즘 생태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 공동체 전반에 확산돼 있고 삶의 모든 영역에 개입하는 상황이죠. 예전보다 저널리즘 생태계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건데, 이걸 얼마나 제대로 발휘하느냐에 따라 한 사회, 한 국가 공동체가 제대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고 거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는 공동체 내부에서 생태계의 작용방식과 효과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들었다. 센트럴파크는 남쪽과 북쪽을 잇는 일종의 ‘교량’ 역할을 하는데 공원이 단순 휴식처를 넘어 문화공연이나 정치캠페인 등 복합공간으로 진화하며 공동체 구성원 삶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 교수는 센트럴파크의 ‘교량’ 역할을 언론의 ‘공론장’ 역할과 연결 지었다. 결국 공론장으로서 언론은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할 수밖에 없고 뉴스를 통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일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저널리즘 생태계의 본질적 역할을 실현하기 위해 해방(Emancipation), 참여(Engagement), 확장(Empowerment)이라는 ’3E 모델‘을 제시했다. ’해방‘은 언론 자유에서 나아가 탐사보도·진실추구, ’참여‘는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 동참·소통을 통한 공공저널리즘, ’확장‘은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보 전달이다. 김 교수는 “저널리즘생태계는 3E를 실현하기 위해 인류가 발전시킨 인위적인 것으로 이를 통해 보다 민주적이고 성숙한 국가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리했다.

이어 미국을 예로 들었다. 그는 미국의 현재 저널리즘 생태계를 ’인프라, 생산자, 유통 및 소비자‘로 구분해 봤을 때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은 ’퓨리서치센터‘ ’니먼재단‘ 등 연구⋅조사 관련 기관과 콜롬비아대학에서 발간하는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 등 관련 지식 공유 ’인프라‘가 잘 돼 있고, 뉴스 ’생산자‘를 위한 공동체 차원의 교육 지원, 저널리즘 특화 교육기관의 존재, 우수한 기자 지원 또는 ’퓰리처상‘ ’피바디상‘ 등 인센티브 제도가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뉴스가 지역에 따라 포털에서 다르게 편집돼 뉴스 ’유통‘ 창구가 다양하다는 것도 미국 저널리즘 생태계의 모습이다.

▲ 발제를 하고 있는 김성해 대구대 교수. ⓒ 황금빛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저널리즘 생태계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가 너무 부족합니다. 언론이란 무엇이고 언론이 잘못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한국 언론이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상식이 견고하게 갖춰져야 합니다.“

한국 언론 생태계의 문제점

김 교수는 언론사의 자유를 넘어서는 3E를 실현하기 위한 한국의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 언론 생태계의 ’인센티브 시스템 부실‘ 문제를 이야기하며 잘못된 보도에 대한 반성 부족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해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산‘ 차원에서는 광고에 의존하는 천편일률적인 언론 비즈니스모델을 지적하며 <프로퍼블리카> <허핑턴포스트> 같은 대안적 모델을 제시했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로는 전문성 부족, 차별성 없는 콘텐츠를 지적했는데 ”중요한 이슈에 대해 맥락을 전해주고 뒤에 숨어있는 이해관계를 밝히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뉴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 부족도 문젭니다. 탁월한 소명의식과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 높은 윤리의식, 진실 추구 용기를 갖춘 우수한 자원이 결국 언론계로 들어와야 해요. 이는 사회적 문제죠. 우수한 인재가 언론계로 들어오게 해줘야 하는데 그게 현재 안 되고 있어요. 생산자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유통‘ 차원에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야 트래픽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가 없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소비자‘ 차원에서는 뉴스 취향·기사에 대한 선호도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며 ’저널리즘이 내 삶과 어떻게 직결되느냐‘하는 명확한 인식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새로운 저널리즘 생태계를 만들려면

토론자인 손석춘 건국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공영방송 사장을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사례가 있는데도 지금처럼 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조중동과 종편, KBS·MBC 두 공영방송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생태계와 관련해 대학의 문제도 지적했다.

”저널리즘 생태계를 새롭게 하려면 새로운 게 자꾸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과 자본권력이 삼각동맹을 맺고 있다는 그런 경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론 관련 학과도 저널리즘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에요. 저널리즘 생태계를 맑게 해줄 그런 새로운 유입을 해줄 대학과 언론 관련 학과가 필요합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최근 언론과 독자의 마찰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명히 우리가 인식해야 할 지점은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독자의 가능성과 잠재력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사용 능력이 점점 우수해지고 있습니다. 언론보다 동원되는 자료와 정보 수준이 높기도 합니다. 설명·표현력도 탁월해요. 대학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네트워크에서 활용하고 있는 독자들, 독자의 지혜로움을 봅니다. 전문가들은 저널리즘의 미래가 집단지성과 자기 조직화한 지식노동자에 있다고 예측합니다.“

최 기자는 장기적으로 직업기자 또는 비언론인 간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언론 산업의 경제적 현실을 타개하는 단초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힘과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커뮤니티 독자, 곧 지역독자와 저널리즘 연결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뉴스조직은 기존 방식이 아니라 외부와 협업할 수 있는 창의적 업무와 문화를 준비해야 한다“며 ”시민 주도의 뉴스, 유연한 협력저널리즘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새로운 뉴스 생태계“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뉴스가 지속가능하도록 유통·생산 재원을 고르게 분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생태계를 위해 지금 우리 언론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힘과 역량을 독자들에게 나누지 않으려는 태도는 문제라며 ”저널리즘은 한정된 기관이나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기성언론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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