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곽정수 <한겨레> 재벌전문기자

“여러분께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첫째, 여러분 중에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둘째, 다음 국회와 대통령이 재벌개혁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 곽정수 재벌전문기자. ⓒ 임종헌

<재벌들의 밥그릇> 저자 곽정수 <한겨레> 재벌전문기자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을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첫째 질문에는 40여 학생 전원이 손을 들었다. 둘째 질문에는 셋 중 한 명 정도만 재벌개혁이 성공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제가 한 달 전쯤 <오마이뉴스>에서도 특강을 했어요. 첫째 질문에는 여러분처럼 60명 모두가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어요. 그런데 둘째 질문에는 여러분보다 더 극단적인 답이 나왔어요. 60명 전원이 재벌개혁이 실패할 것이라고 답했어요. 오늘 주제는 여러분이 공감하는 재벌개혁의 필요성, 곧 왜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지, 재벌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이 세 가지입니다.”

유럽이 포기한 한국 재벌의 경쟁력 비결은?

재벌개혁은 왜 필요할까? 우리나라 재벌들은 기업을 운영하며 몸집을 키웠고, 국가가 이를 지원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제는 급격히 나빠졌지만 우리 기업들은 2009년 하반기 접어들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한국 기업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0년에 유럽에서 조사단이 왔어요. 경제위기를 겪고도 한국 기업들은 왜 이렇게 빨리 회복을 하느냐, 벤치마킹을 해야겠다며 우리나라에 찾아왔어요. 몇 달을 국내에 머물며 조사한 뒤 나온 결론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 조사단이 내놓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 비결’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정부의 고환율정책을 통한 대기업 수출 지원이고, 둘째는 광범위한 비정규직 활용, 셋째는 하도급업체 착취입니다.”

결국 재벌에 대한 정부의 무한 지원과 경제력 집중, 노동력과 중소기업 착취가 우리나라 재벌기업 경쟁력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곽 기자가 우리사회에 대한 재벌의 과도한 지배를 비판하는 이유다.

▲ 곽정수 기자가 쓴 책 <재벌들의 밥그릇>.

전기공학과 출신인 곽 기자는 1988년 <한겨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주로 경제부와 <한겨레21>에서 재벌 문제를 다뤄오면서 ‘재벌전문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 서강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대기업 전문기자’로 임명돼 재벌 감시자 구실을 하고 있다. 2007년에는 재벌개혁론자들인 김상조·유종일·홍종학 교수와 함께 <한국경제 새판짜기>를 펴냈고, 올해 초 <재벌들의 밥그릇>을 썼다.

곽 기자가 한겨레에 입사한 80년대만 해도 재벌 문제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대재벌도 없었고, 정부도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재벌 문제가 틀림없이 심각하게 대두될 것으로 내다봤고, 이는 적중했다.

“과거에는 일반 대중이 재벌개혁을 이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재벌 경제력 집중을 양극화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이 골목상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MB노믹스는 ‘친기업’ 아니라 ‘친재벌’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경제정책 기조로 삼았다. 대기업들은 높은 환율과 낮은 금리, 세율 인하 혜택을 누리며 현금을 축적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잘되면 이익이 중소기업과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며 ‘적하효과’를 주장했다. 그러나 대기업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낮추고 기술을 훔쳐갔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 ‘대기업하기 좋은 사회’였다.

“기업에는 대기업도 있고 중소기업도 있는데, ‘친기업’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에 우호적이라는 말이에요? 그 말 자체에 ‘원칙적 오류’가 있어요. 친기업이 아니라 친시장이라고 해야 맞죠. 시장에는 기업만 있는 게 아니에요. 소비자도 있죠. 기업들이 담합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는데 정부가 친기업이라고 봐주면? ‘반국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친기업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어요. 친기업은 ‘친재벌’, ‘친대기업’을 위장한 거예요.”

대기업 중심 사회가 결국 한국경제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로 피해를 입었다. 각종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대기업의 독과점은 심화했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업체 비중이 99%가 넘고 종사자 수도 88%에 육박하지만 정작 전체 생산액이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매년 삼성전자가 그 해 사업계획 목표치를 설정하는데 실천 방법으로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를 부당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실상 그 중 절반 이상은 중소기업 주머니에서 꺼내왔다고 볼 수 있죠. 물론 납품단가 인하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심하다는 거예요. 상생경영과 동반성장을 얘기하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 작년 10월 15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서울을 점령하라(Occupy Seoul)' 집회 현장. 한 여성이 '정리해고 철회, 비정규직 철폐' 피켓을 들고 있다. ⓒ 최원석

이건희 모른다던 ‘이익공유제’, 알고 보니 삼성 아이디어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을 때 협력사 이익공유제에 대해 “내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기업에 요구한 협력사 이익공유제에 대해 곽 기자는 그 아이디어가 실은 삼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에게 전해졌다는 설명이다.

“삼성에 PS(Profit Sharing: 초과이익분배금)라는 제도가 있어요. PS제도는 1년 목표수익을 10조로 가정했을 때, 15조 이익이 발생했다면 초과이익 5조의 일정부분을 종업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에요. 추가적으로 생긴 것을 종업원에게 나눠주듯이, 협력사에게 이익을 나눠주자는 게 이익공유제예요. 이게 사회주의예요? 공산주의예요? 자본주의잖아요. 이미 삼성에서 시행하고 있는 PS의 대상을 협력사로 확대하겠다는 것뿐이에요. 대통령부터 협력사가 잘 돼야 대기업이 잘 된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곽 기자는 대기업이 이익공유제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이익률 하락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들은 ‘이익공유제’와 비슷한 개념인 ‘성과공유제’는 반긴다고 한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 실적을 나누는 것이지만, 성과공유제는 중소기업이 성과를 냈을 때 나누는 것이다.

“협력사들이 부품을 납품하는데 8000원에 만들 수 있는 것을 만원에 납품하면 중소기업들에게 2000원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대기업은 그것을 귀신처럼 알아서 8000원에 넘기라고 하죠. 그래서 정부가 생각해낸 게 2000원의 성과를 대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자는 거예요. 그게 성과공유제인데, 부자 것을 나누는 게 나아요?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 것을 나누는 게 나아요? 그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거예요. 몇 번 이런 얘기를 했는데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백날 얘기해도 소용없어요.”

‘장하준 재벌 타협론’의 한계와 강점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공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 너는 누구냐.' <한겨레21> 908호(4월 30일) 표지제목이다. 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정승일·이종태 공저)를 펴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진보 경제학자들은 보통 두 분류로 나뉜다. 장하준 교수를 지지하는 쪽과 그 반대쪽이다. 곽 기자는 후자에 속한다. 장 교수는 재벌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노동과 복지, 세제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것으로 재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곽 기자는 장하준류 '재벌 타협론'이 현실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하준 교수의 재벌타협론을 완전히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재벌과 타협할 수 있으면 좋죠. 실제로 필요하고요. 그러나 앞서 말한 유럽 조사단이 내놓은 한국기업 경쟁력 비결 세 가지 있잖아요. 재벌들이 바뀌려면 그런 것들이 다 바뀌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비정규직과 하도급 업체,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할 수 있잖아요. 문제는 대기업이 그것을 포기할 수 있냐는 겁니다. 재벌들은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토대를 구축해왔어요. 그걸 포기하는 순간 재벌체제는 무너집니다. 장 교수는 이런 점을 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곽 기자는 '진짜 현실‘은 한국 재벌기업들에 대한 국민들의 모순적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재벌을 욕하지만 사실 한국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도 분명 재벌기업들이라 생각한다. 청년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역시 재벌기업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단순히 재벌을 비판하는 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재벌 위주 성장전략과 경제구조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벌을 죽이자는 게 아니에요. 재벌의 강점을 이따금 사용할 수도 있죠. 하지만 먼저 재벌이 심판 말을 들어야겠죠. 그리고 사회적 파트너 간 대화를 통한 개혁추진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잘 안돼요. 유럽은 사회의 주체들이 대화를 통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사례가 많아요. 네덜란드가 바세나르 협약으로 유명하잖아요. 스웨덴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유명하고요. 서로 대립하면 개혁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져요. 그런 의미에서 장하준류 개혁론의 강점이 있는 거예요. 배제하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죠.”

▲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에게 강의중인 곽정수 기자. ⓒ 임종헌

독일 금속노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곽 기자는 지난해 10월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유럽 국가에 보름 동안 출장을 다녀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중심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 중 독일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전세계 글로벌 기업 중에서 ‘무노조 경영’을 사시(社是)처럼 하는 기업은 삼성밖에 없을 거예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삼성왕조’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현대차 노조는 ‘귀족노조’라고 욕 먹고 있잖아요. 현대차는 25%가 비정규직인데, 같은 공정라인에서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비정규직이에요. 일은 똑같은데 월급은 60% 정도밖에 못 받아요. 노동자들의 생명이 뭐예요? 연대잖아요. 독일에 갔더니 독일 금속노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다 있지만 금속노조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얼마 이상 월급 차등 두면 안 된다고 사업자를 대상으로 협정을 맺어요. 그리고 비정규직이 전체 숫자의 4%를 넘지 못해요.”

독일 금속노조는 개별 자동차 회사와 일대일로 협약을 맺는다. 사업자는 싫어하겠지만 노조가 강력히 요구해 비정규직 직원을 많이 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노조 영향력이 크다. 처음부터 노조가 힘이 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정규직 노조원들이 자기 몫을 빼앗긴다는 생각 때문에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노조원들 사이에 토론을 거쳐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같이 고민했다. 지금은 하청업체에서 불공정한 일을 당하면 대기업 노조에 고발하고, 대기업 노조는 하청업체 사장에게 시정을 요구해 문제를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곽 기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할 방식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는 기업이 도덕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했지만 이제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나라는 결국 경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잘 몰라요. 기업만 필요한 게 아니라 노조도, 시민도, 언론도 다 필요한 개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재벌체제에 편입돼 있어요.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하면 그들을 하나의 객체로 생각하고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로 보는데 그렇지 않죠. 나는 어디에 편입돼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합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듣는 강좌책임교수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ㆍ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려는 학생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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