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전북대 강의평가 사이트 CLeS 개발자 김종백

“처음엔 만들어 주겠지 하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만들더라고요. 누군가 안하면 2020년이 되어도 안 만들어지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보기로 했죠.”

정보기술(IT) 창업초기기업 ㈜빅러스터에서 일하는 김종백(27)씨가 전북대학교에 다닐 때, 그는 학교의 강의평가 정보를 알 수 없어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에 응하지만, 결과는 교수진만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개강이 다가올 때마다 ‘입소문’과 ‘귀동냥’에 의존해 불확실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김 씨는 그동안 틈틈이 배워 온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기법을 활용해 전북대학교 강의평가 사이트를 직접 만들었다. ⓒ 안윤석

이과생 기다리다 지쳐 직접 도전

김 씨도 수강신청에 앞서 교내 커뮤니티를 검색하고 선후배들에게 수소문하는 등 열심히 정보수집을 했지만 늘 불만이었다. 경영학 전공의 문과생이었던 그는 컴퓨터 언어에 익숙한 이과생이 나서서 강의평가 사이트를 만들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4학년 2학기가 다가오는데도 아무 조짐이 없자,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동안 틈틈이 배워 온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기법을 활용해 2016년 8월 전북대학교 강의평가 사이트 ‘씨엘이에스(CLeS, CBNU Lecture Evaluating System)’를 만든 것이다.

이제 전북대생들은 이 사이트에서 각 전공별 과목과 교수명을 검색해 기존 수강자의 후기와 난이도, 과제량, 흥미도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일이 주변을 탐문하는 수고 없이, 보다 쉽게 신뢰성 있는 강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학교 부근의 한 카페에서 김 씨를 만나 ‘문과 출신의 프로그래밍 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김종백 씨가 만든 CLeS에는 각 수업의 흥미도, 과제량, 난이도 등에 대한 수강생의 평가가 계량적으로 제시되고, 수강후기도 실린다. Ⓒ CLeS 사이트 갈무리

“처음은 말도 안 되게 막막했죠. (프로그래밍의 기본인) 씨(C)언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렵고 딱딱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김씨는 2014년 1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총 5학기 동안 컴퓨터공학 과목 10개를 수강했다. 비전공자들에게도 컴퓨터 공학을 배울 기회를 주고 각자의 전공과 융합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삼성전자가 각 대학과 연계해 개설한 에스씨에스씨(SCSC, Samsung Convergence Software Course) 프로그램 1기로 참여한 것이다. 경영학 공부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술 시대에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코딩 수업은 쉽지 않았다. 함께 시작했던 문과 계열 학생들이 많이 그만뒀다. 이 낯선 수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김 씨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전체 10과목 중 5과목을 재이수한 뒤 이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그런 인고의 과정이 있었기에, 이과생도 나서지 못했던 강의평가 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던 셈이다.

200일간 하루 10시간 들여 사이트 보완  

김 씨는 일단 사이트를 개설한 후 지난 2월까지 약 200일가량, 매일 하루 10시간가량을 들여 수정·보완 작업을 했다. 도메인 구매비용, 홍보비, 교통비 등 150만 원 정도의 비용도 스스로 해결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사이트 제작에 도움 될 만한 책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고, 검색엔진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Stackoverflow) 같은 웹사이트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질문답변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이런 과정을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극기 훈련이나 철인삼종경기, 미국 횡단 여행 등 신체적 고난을 겪는 것만 모험이 아니라 문과생이 혼자 머리를 싸매고 사이트 개발을 추진한 것도 큰 모험이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고, 인류의 삶이 바뀔 정도로 기술이 급변하는 시기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이런 모험에 나선 것은 미래를 위한 대비라고 설명했다.

“2010년만 해도 자율주행차는 상상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잖아요. 이제는 아마존(Amazon)의 알렉사 같은 인공지능 비서까지 나왔죠. 세계의 천재들은 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뀔 겁니다.” 

미국 대학에선 프로그래밍 언어가 일반교양수업

▲ 자신이 처음에 접했던 코딩 수업을 찾아 보여주는 김종백 씨. Ⓒ 안윤석

김 씨는 자신이 어렵게 코딩을 익힌 경험을 토대로 “문과 출신이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다면 파이썬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1989년 네덜란드 프로그래머 귀도 판 로썸(Guido van Rossum)이 개발한 파이썬(Python)은 전문가들에게도 유용한 도구이면서, 특히 초보자가 쉽게 배울 수 있어 좋다는 설명이다. 그는 취업동아리 ‘제이림’에서 같이 공부했던 박한그루(28·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졸) 씨에게 들었다며 “미국 대학에선 파이썬을 일반교양과목으로 개설, 미술이든 뭐든 생각한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 쉬운 언어로 배우니 자신의 생각을 쉽게 구현할 수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실리콘 밸리로 가서 사업화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인문계와 이공계의 구분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히 다른 영역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과, 이과라는 것은 임의로 정한 날짜변경선 같은 것”이라며 “이게 베를린 장벽이나 휴전선 철조망처럼 실존하는 벽이 아닌데 인문계와 이공계가 그 칸에 막힐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인문계에 갇혀 있으면 소수의 재능 있는 친구들 말고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사람이 기계를 이길 수 없는 시대이니 이과에 대한 강박관념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그래밍이라는 ‘모험’에 나서고자 하는 문과생들을 위해 실용적인 정보도 일러주었다.

▲ 코딩 용어들을 적어 놓은 김 씨의 노트. 책을 찾아가며 코딩을 공부할 때 정리한 내용이라고 한다. Ⓒ 안윤석

“가장 간단한 튜토리얼(수업지도) 정도는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해요. 예를 들면 코드 아카데미(https://www.codecademy.com)란 사이트에선 파이썬을 공짜로 배울 수 있어요. 로그인도 페이스북 계정만 있으면 다 할 수 있고요. 구글에서 운영하는 생활코딩(https://opentutorials.org)도 초보자들이 배우기 쉬워요. 한국형 온라인공개강좌(K-MOOC)나 유튜브에서도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 C언어 등을 무료로 알려주는 동영상들이 많습니다.”

김 씨는 졸업 후 빅러스터에 입사, 현재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직무를 익히고 있다. 경영학적 시각과 컴퓨터 활용 능력을 결합, 수많은 데이터에서 가치가 큰 것을 분류함으로써 기업과 개인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 앞으로 그가 할 일이다.

▲ 코딩 용어들을 적어 놓은 김 씨의 노트. 책을 찾아가며 코딩을 공부할 때 정리한 내용이라고 한다. Ⓒ 안윤석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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