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파스토랄’

▲ 고륜형 기자

박근혜 집권 당시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가 인기를 끌었다. 농촌에서 출연자들이 직접 옥수수를 베어 한 끼를 마련하는가 하면 어촌편에서는 그물을 던지고 발을 쳐 물고기를 잡았다. 시청자들은 나영석 피디가 연출하는 목가적 풍경에 환호했고 ‘힐링’ 열풍으로 이어졌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눕방’이 등장하기도 했다. 직접 배추를 따서 겉절이를 만드는 장면은 소박하고 정겨웠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힐링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위안을 얻는 도피처였다.

목가적 작품은 대립이 심한 현실에서 탄생한다. 일제 강점기가 그랬고 프랑스혁명 직전인 로코코 시대가 그랬다. 로코코 시대 파리 여인들은 머리를 7층까지 쌓아 올리기도 했다. 화려한 가면을 쓰고 과장된 헤어 장식을 즐겼다. 점점 작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악취를 줄이려 향수를 많이 뿌렸다. 사치와 향락에 피로를 느낀 파리 시민들은 목가적 작품을 선호했다. 목동과 목녀를 주제로 삼고 전원생활의 한가함을 그린 ‘파스토랄’ 작품이 유행했다. 시민들을 그 작품을 보며 대리만족으로 전원생활을 동경했다. 한가로운 들판에서 양을 치거나 그네를 타는 목가적 풍경은 그들에게 ‘힐링’이었다.

▲ 목가적 프로그램도 시대정신을 반영할 때 큰 감동을 준다. ⓒ <신혼일기> 공식 홈페이지

박근혜 탄핵 뒤 태극기 집회는 더욱 격렬해졌다. 사망자가 셋이나 발생했고 언론인도 무수히 폭행당했다. 탄핵 선고 사흘 째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겠다’며 불복을 선언했고 구속 뒤에도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 정치가 표류하는 사이 경제는 안정을 찾을 길이 없었다. 평균가계소득증가율이 0%대를 기록하는 등 각종 경제 지표는 서민생활이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나영석 피디의 새 작품 tvN의 <신혼일기>가 호평 속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다. 사람들은 목가적 풍경 속에서 아름다운 신혼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환상을 품는다. 암울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서 <신혼일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우리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가(牧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목가적 풍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빚어내 하나의 시대정신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목가 시인이었던 신석정은 ‘촛불’이란 제목의 시에서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이 낫다’고 했다. 저항시인으로도 알려진 그는 이광수처럼 변절하지 않고 조용히 해방의 날을 기다렸다.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신석정 시인이 생각나는 이유다. 목가적 프로그램도 시대정신을 반영할 때 큰 감동을 준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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