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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욕구’를 인정하라
[상상사전] ‘사회통합’
2017년 04월 15일 (토) 20:22:37 윤연정 기자 coolpooh0727@naver.com
   
▲ 윤연정 기자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욕구는 생리적인 것에서 안전, 사랑, 인정과 자아존중, 자아실현 등 5단계로 구분된다. 4단계인 인정과 자아존중의 욕구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형태로 성취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자기 존재의 인정은 자존감 향상과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단계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모두를 좌절시켰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들 참을 수 없는 모욕감 또는 상실감을 느꼈을 터이다. 광장에 나온 촛불과 태극기는 ‘인정 투쟁’의 욕구로 결집된 집단이었다. 그들을 위한 광장이 없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각자 다른 ‘박탈감’이 이번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불붙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껏 다수 국민이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자신의 밀실에서만 각 계층의 수준의 맞게 안락한 삶을 살도록 종용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 욕구를 느낄 수 없는 밀실에서만 살 수는 없다. 모두가 이따금 광장에 나와 외치는 이유다.

현대와 달리 원시시대부터 우리에게는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많은 광장이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의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오는 길목은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촛불과 태극기 집회의 뿌리는 같을 수도 있다. 촛불도 태극기도 불안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일 수도 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솔직했던 행위들이다.

이제껏, 우리는 광장으로 나오길 두려워했다. ‘평화적 시위’라며 이번 시민집회의 성숙함을 강조하는 우리들 마음 속에는 광장은 광폭함을 상징하는 장소라는 기억이 강했음을 반증한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삽을 들고 도둑질하러 나온다고 표현했다. 그러다가 길 가던 착한 시민이 멈추려 하면 ‘멀리서 망을 보고 있던 갱이 튀어나와 그를 해치는 살인의 광장이기에 선량한 시민들은 오히려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는다’고 말했다. 1960대 ‘광장’을 표현한 그 시점으로부터 현재 우리는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나? 인터넷 검열, 국정원 대선 개입, 백남기 농민 사망 등 정치인들이 국민을 대하는 형태만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국민들에게 광장은 공포의 장소인 사실은 변함없다.

30-40년 전의 광장과 다르게, 현재 시민들은 오히려 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왔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나와서 외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칼 폴라니는 이런 현상을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라 한다. 가령 인간이 생체 해부를 하기 위해 칼질을 하면 그 아픔 때문에 저항하듯, 사회가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하는 운동을 사회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 탄핵 인용의 결과도 ‘이제 그만’ 이라는 메시지를 사회가 보낸 것이며,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도 사회 자정작용의 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데엔 저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정 욕구'에 그 이유들이 기반한다. ⓒ 윤연정, 문중현

촛불 시민들이 사회를 조금 더 공정하고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공공의 이익과 불공정에 맞서기 위해 나왔다면, 태극기 시민들은 ‘박근혜 연민론’과 ‘빨갱이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나왔다. 물론 국정농단에 눈을 감으려는 태극기 집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또한 사회 변동 속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모습일 뿐이다. 과거 극우 반공주의가 지배했던 시대에 이들은 세상을 보는 자아를 형성했다. 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깊은 상처로 남았고, 세월이 그렇게 흘러도 공산주의를 향한 혐오를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광장에 벽이 들어서면 그것은 이미 광장이 아니다. 촛불과 태극기를 든 두 집단 사이에 경찰이 차벽을 친 것은 충돌을 피하려는 방책이긴 해도 국민 전체를 둘로 갈라 놓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탄핵 무효’를 외치는 15%가 비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육칠십대 노인이 대부분인데 그들도 한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들이었다. 그들이 왜 광장에 나섰는지를 한국사회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들은 자식과 조국을 위해 국내외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원로 대접을 해주기는커녕 폐지라도 주워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노인 빈곤율 49%는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자살률을 1위로 밀어 올린 이들도 노인들이다. 박근혜 구속 이후에도 집회를 여는 노인들 또한 ‘인정 투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시장> 같은 회고조 영화가 히트친 것도 같은 이유일 터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사회통합을 외치고 있다. 전제조건과 방식, 과정이 다를 뿐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장벽을 걷어내고 서로 만나게 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이는 없을 터이다. 자아를 존중할 수 있게 서로 인정해주는 것은 대화의 출발점이다. 다름을 인정한다면 대화를 못 할 이유가 없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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