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윤성호 영화⋅웹드라마 감독
주제 ② 매체 특성에 따른 서사의 기획⋅구성

윤성호 감독은 독립영화에서 웹드라마 연출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 TV캐스트로 서비스되는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 <출중한 여자> <대세는 백합>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는 수많은 댓글이 그의 작품이 작품성뿐 아니라 대중성까지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하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기 특유의 질문이 있어야 해요.”

윤 감독이 콘텐츠를 제작할 때마다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먼저 기획 단계에서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라는 말을 되새긴다. 말 그대로 ‘솔직해지자’라는 의미다. 그는 “‘내가 이 주제에 관심 없는 유저라면 과연 누가 이 영상을 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고 밝혔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콘텐츠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가 <출중한 여자> 주인공으로 배우 천우희를 캐스팅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곡성>으로 이름을 알린 천우희는 그 당시에는 인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마더>(2009), <써니>(2011), <한공주>(2014) 등 의미 있는 서사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아 대중에게 낯선 배우는 아니었다. 윤 감독은 “‘이 친구가 씩씩한 커리어우먼 역을 맡아 까불거리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가슴에 손을 얹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의 결정은 옳았다.

▲ 웹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든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윤성호 감독. © 염선문 기자

시작의 아이러니와 끝의 아이러니

윤 감독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과연 아이러니한가’이다. 이 질문은 작품을 연출하고 편집하는 동안 계속된다. 그에게 좋은 작품은 끝난 뒤 ‘참 아이러니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윤 감독은 그 예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들었다. 이 영화에서 아이러니는 모두를 구한 영웅이 결국 심판대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는 엔진 두 개를 모두 잃고 추락할 위기에 빠진 항공기에서 탑승객 전원을 구한다. 하지만 그는 사고의 책임을 묻는 청문회에 오른다. 청문회에서는 그가 수많은 사람들 목숨을 구한 점은 무시한 채, 오로지 이 사건의 책임자라는 점만 강조한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고 허드슨 강에 비상 ‘착수’했다는 것이다.

윤 감독은 “작품에서 시작의 아이러니와 끝의 아이러니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작의 아이러니는 ‘로그라인’에 담긴다. 로그라인이란 기획 과정에서 작품을 한 줄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그라인이 눈에 띄어야 대중의 눈길을 끌 수 있다.

tvN의 드라마 <고교처세왕>(2014)의 로그라인은 매력적이다. 철없는 고등학생이 형 대신 대기업 간부로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이 시작의 아이러니는 끝까지 가지 않는다. 로그라인의 콘셉트만으로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이 드라마가 도달하는 끝의 아이러니는 고등학생인 리더가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며 좋은 리더로 거듭나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 ‘우리 사회에는 그만한 리더도 없다’는 아이러니를 담은 것이다. 윤 감독은 “캐릭터, 유머, 로맨틱 요소 등도 중요한 재료이지만 새로운 아이러니, 의미 있는 아이러니에 도달해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아이러니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콘텐츠만큼 플랫폼이 중요한 이유

윤 감독은 “뉴미디어에 기반한 콘텐츠를 만들 때는 콘텐츠 유통 전략이 콘텐츠의 질만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2014년 연출작인 웹드라마 <썸남썸녀>가 <다음tv팟>에 유통됐다. 추석 때 <다음> 메인에 독점 공개하는 전략이었지만 실패에 가까웠다. <다음> 메인에 노출된 <썸남썸녀> 배너를 클릭해도 재생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윤 감독도 자신의 작품이 서비스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백화점의 어떤 자리에 매장이 입점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듯, 콘텐츠도 어떻게 유통하고 홍보하느냐에 따라 조회수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바일 플랫폼 시대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창작자도 증가했다. 창작자는 자신의 콘텐츠를 플랫폼 메인에 올리기 위해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려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는 “콘텐츠가 무조건 많아지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창작자에게 다양한 시도를 하게끔 동기 부여하는 환경이 조성된 점이 긍정적인 면”이라고 말했다.

▲ 윤성호 감독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박고은 기자

묘사는 상황, 서사는 전진

모바일 콘텐츠도 수익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 감독은 “콘텐츠 종류는 다양해졌는데 이용자 충성도가 낮아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72초 드라마 <오구실>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교했다. 웹드라마 <오구실>은 편 당 3분을 넘지 않는다. 짧은 영상을 편하게 즐기려는 이용자 취향을 고려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내레이션으로 빠르게 설명한다.

반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인물들은 갈등과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극단적 상황에 놓인다. 윤 감독은 “인물이 새로운 선택을 하며 전진하다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서사”라며 “서사가 아니라 묘사에만 충실한 콘텐츠는 사람들의 충성을 이끌어낼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묘사와 서사의 차이를 우열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시청자들은 묘사를 통해 공감하고, 서사를 따라가며 주인공에 감정이입한다. 스냅비디오 등 모바일 콘텐츠의 가장 큰 약점은 시청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서사가 없다는 점이다. 윤 감독은 “짧고 빠른 제작기법이 트렌드지만, 결국 팬의 충성도를 높이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벌어지는 서사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감독은 서사가 있는 모바일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스토리 감각을 키워 플롯을 쫄깃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플롯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테마를 결정해야 한다. 그는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다시 예로 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기장 설리가 공청회에서 사람들에 가혹한 질문을 받는 장면을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배치했다. 윤 감독은 그 이유를 “사람을 구한 후에도 질문을 던지는 미국의 시스템, 준비된 개인의 직관과 경험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미국의 리버럴한 개인을 찬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사고조사위원회는 기장 설리에게 허드슨 강에 착수하는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은 없었는지 집요하게 질문한다. ©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갈무리

‘적합한 도구를 고르는 것’이 핵심

“영화의 사각형 화면, 참 묘하지 않아요?”

윤성호 감독이 ‘뉴미디어 시대, 기성 매체의 대응 방안’을 설명하며 던진 질문이다. 우리는 사각형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각형이 어떤 스토리를 관전하기 좋은 하나의 틀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윤 감독은 ‘이것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깨 부셔야 할 편견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가 내린 답은 ‘아니다’였다. 누군가의 스토리를 따라가기 좋은 구도라는 것이다. 그는 “VR, 세로미디어 등 새로운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기성매체가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라며 그의 경험을 덧붙였다.

윤 감독은 지난 해 한 모바일 크리에이티브 그룹에서 제안을 받아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다. 세로미디어의 재생률이 1.5배 높다는 데이터에 따라, 티저를 세로 비디오로 제작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볼 때 똑같은 콘텐츠라도 세로로 된 영상을 더 많이 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수용자에게 속삭이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세로미디어의 특징이다. 회사는 본편도 세로로 만들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윤 감독은 기존 영상 비율인 16:9 화면을 택했다. 본편에서는 두 여성의 콩트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세로미디어는 서사를 진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3D 영화 열풍을 일으킨 영화 <아바타>. 당시에는 ‘앞으로 3D 영화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2D 영화는 여전히 건재하다. 윤 감독은 “청춘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3D로 만든다면 관객들이 편안하게 스토리에 몰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만들려는 콘텐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뉴미디어 등장에 기성 매체가 조급해하기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고 여기면 된다”며 “콘텐츠를 만드는 목적에 맞게 적합한 도구를 고르는 것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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