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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 장미 한 송이 두고 갑니다
[글케치북] 다모클레스의 칼
2017년 04월 26일 (수) 21:04:42 안윤석 PD eunomiadike3@gmail.com
   
▲ 안윤석 PD

이 책상에 앉으실 대통령님께

참 시끄러웠습니다. 대통령님들마다 성격도, 정리정돈 스타일도, 생각하는 방식도 저마다 달랐거든요. 어찌나 애를 먹었는지 모릅니다. 이젠 좀 쉬고 싶군요. 시끄러운 여길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한번 살아보려고 합니다. 대통령님들의 일하시는 집무실을 수없이 청소하면서 느낀 바를 몇 자 적고 가렵니다.

이 책상에 앉게 되시면 조선, 중앙, 동아, 경향신문이 아침마다 놓여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800원어치 종이신문일 뿐이겠지만 대통령님들은 신문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800원짜리 성적표를 매일 받으시는 기분이실테니... 곧 받으시겠네요. 매일 새벽 4시 30분 청소를 하러 집무실에 들어가면 온갖 것들이 쓰레기로 나옵니다. 찢어진 신문쪼가리, 부러진 연필심, 어쩔 땐 깨진 유리컵도 보였구요, 어떤 대통령님 시절엔 이빨자국이 난 손톱조각도 있었습니다. 불안한 게죠. 매일 나오는 신문에 자신이 적나라하게 평가되니 걱정되고 불안한 것도 당연할겁니다. 국민의 말이란 본디 칼과 같아서 좋은 취지에서 한 말들조차 마음속을 후벼 팔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충언이라해도 아픈 건 아픈겁니다.

한번은 집무실에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들어갔더니 창밖을 보시면서 담배 한 개피를 피시는 대통령님을 보았어요. 한 줄기 담배연기와 찬 새벽공기가 집무실 분위기를 어찌나 쓸쓸하게 하던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불안과 함께 고독이라는 감정을 견디는 자리인가 싶었습니다.

이제 곧 여기 앉으실 대통령님도 느끼시겠지요. 불안과 고독 말이어요. 하지만 대통령님, 그 자리는 성인군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물론 밖에선 공격을 당해도 유연하게 웃으며 대처해야 하고, 여유 있어 보여야 할 필요가 있겠죠. 하지만 집무실에서 만큼은 인간적이셔도 됩니다. 다들 그러셨어요. 책상을 발로 차시기도 하고, 욕도 하시고, 쓰레기통도 차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를 생각하셔야 할 텐데, 다른 대통령님들은 안하셨어요. 듣질 않으시더군요. 한 대통령님께선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드라마만 보시다가 드라마처럼 집무실을 비우셔야 했습니다.

이 자리에 앉으실 대통령님,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도 백성을 그렇게 욕했다지요. 그래도 한 제도를 만들 때 백성 개개인의 생각을 물은 것만 봐도 백성들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은 어떻게 보면 그 애증의 산물일지도 모르겠어요. 비판을 받으시면 이젠 ‘왜’를 생각하셨음 합니다. 그러면 혹 아나요. 21세기 또 다른 ‘한글’과 같은 기똥찬 정책이 나올지도 모르잖습니까.

말은 칼이 될 수 있는 법이라 조금만 잘못 말해버리면 여러 곳에서 비판의 화살이 날아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날아오는 화살이 더 많겠지요. 13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앞으로 매주 금요일엔 아침 청소를 하지 말라며 비서실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연유를 물어보니 그 비서실분이 “실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모의전쟁 때문이오.”라고 말하더군요. 그 땐 그분이 장성출신이라 저러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아닙디다. 매주 금요일 오전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대통령님은 무기를 닦고 계셨던 겁니다. ‘말’이란 무기 말입니다. 말 한마디에 구설에 오르고, 의혹이 되는, 그래서 싸움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13년 전 한 대통령님은 그렇게 자신을 단련했습니다. 권력 최고의 자리에서 말이죠. 아주 감동이었습니다.

지면이 줄어가네요. 여기 앉으실 대통령님께 주제넘게 한 말씀만 드리자면 칼이 되셨음 합니다. 권력자의 권좌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칼 밑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자리에선 항상 위기와 불안 속에서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래나 뭐라나. 말 한마디가 칼인 요즘, 대통령님도 날카로운 칼이 되어 과감하게 부딪치셨으면 좋겠습니다. 창문 넘어 눈에 보이는 광장 속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두고 최만리와 격렬한 토론을 했던 것처럼 대통령님도 비판이란 칼을 보기 좋게 치시는 ‘위기지학’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토론과 설득의 과정 속에선 날카로운 칼도 무뎌지는 법입니다. 위기와 불안의 해결방법은 결국 ‘소통’입니다.

   
▲ 장미가 필 때 쯤 오실 대통령님을 위해 장미를 두고 갑니다. ⓒ Pixabay

곧 벚꽃이 지고 장미가 피겠지요. 장미가 필 때 쯤 오실 대통령님을 위해 장미 한 송이 책상에 두고 가겠습니다. 이번 나라는 저 장미처럼 아름답길 빌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상 깨끗이 치우고 갑니다.

은퇴하는 청와대 집무실 청소부 중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편집 : 박진영 기자

[안윤석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전략부, 환경부, TV뉴스부 안윤석입니다.
오늘도 또 다른 another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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