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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벽에 부딪힌 '관종'
[역사인문산책] 상징
2017년 04월 02일 (일) 19:11:30 유선희 기자 choms335@naver.com
   

▲ 유선희 기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 지구촌 모든 이들이 6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는 ‘6단계 분리 이론’ 연구로 이름 높다. ‘6단계 분리 이론’은 1967년 발표된 것으로, 전화와 우편으로 상징되던 당시 사회 관계망을 생각해보면 매우 획기적인 연구였다. 그런데 지난 2011년 SNS의 선구자 페이스북과 밀라노 대학의 공동연구에서 4.7단계만 거치면 지구상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왔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으로 6명이나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검색과 클릭 몇 번이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연결되는데, 국내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휴대폰과 인터넷이라면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기술이 만들어준 관계 속에서 세대 간 감정유대가 두드러진다. 같은 문화와 시대를 공유했다는 문화적 동질감이다. 특히 20대의 SNS 세계가 그렇다.

   

▲ 소통의 창구는 많아졌지만, 진심을 담은 소통은 벽에 부딪힌다. ⓒ pixabay

그들은 영혼 없는 손길로 댓글을 단다. ‘우와. 이거 진짜 귀엽다.’ 상냥한 글자와는 다르게 무표정이다. 상대방과 소통 하고 싶은 ‘척’을 할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친구 맺기’를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고자 할 때는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주로 늘어놓는 변명은 ‘아, 내가 그날은 안돼...’다. 정말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면대면의 진심어린 대화가 불편해서다. 어떤 이들은 지극히 폭력적, 선정적 게시물을 올리곤 늘어가는 ‘좋아요’ 숫자에 웃음 짓는다. 타인의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놓은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타인을 사칭하며 얻는 자존감으로 현실 세계에서 소원해진 인간관계의 회복을 원하는 사람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프로파일 스쿼팅’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초상권 침해와 범죄로 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SNS에는 이렇게 ‘관심종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멋진 사진, 맛있는 음식, 특별한 추억을 남기는 사람. ‘관종’들에 비해 이들의 사진은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또 ‘나 이런 곳 다녀왔다’하는, 어디선가 솟아나는 뿌듯함을 느끼고, 때론 자신이 올린 사진과 글을 확인하며 그 때의 기억을 곱씹는다. 닮은 것 같지 않지만 두 집단 간의 공통점이 보인다. ‘SNS 공간에는 멋지고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SNS의 사람들은 왜 그런 괜찮은 순간만 남기고 싶어 할까? 답은 ‘그렇지 않아서’이다.

2015년 미국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갤럽이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진행한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행복도는 143개 나라 중 118위였다. 같은 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우리나라 20대의 행복 지수는 48점이다. 모든 연령대에서 최하위다. 조사 결과에 우리 20대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성적지상주의, 승자독식사회에 치여 이기심만 배우느라 가까이 있는 행복조차 찾을 시간도, 여력도 없는 암울한 현실이다. 두터운 장벽에 부딪혀 신음하느라 진정한 소통과 자아를 잃어버린 20대를 품어 줄 곳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현실 사안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하기조차 힘든 20대의 SNS는 이상하고 철없는 놈들의 소굴이 아니다. 게시물과 댓글로 개인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풀어내는 일종의 해방구다. 사유할 여유를 주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자 ‘상징’이기도 하다.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 개인에게 사회문제의 짐을 떠안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SNS의 진짜 이름. Social Network Service처럼,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토닥이며 얼기설기 엮인 매듭을 풀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편집 : 박경배 기자

[유선희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장, 전략기획팀 유선희입니다.
태도는 조용하고 마음은 뜨겁게,
가슴은 비어있고 배짱은 두둑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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