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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는 하나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역사인문산책] 미세먼지
2017년 03월 30일 (목) 12:42:22 박진홍 기자 fallingmee@naver.com
   
▲ 박진홍 기자

“싸워서 물리치자!” 깃발 든 사내들이 운동장을 뛴다. 사방에 흩뿌려진 잿빛 이물질 때문에 손에 든 깃발 색깔은커녕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2015년 중국 산둥성의 한 대학. 스모그가 도시 전체를 덮친 날, 학생들은 혁명을 상징하는 빨간 깃발을 들고 구보에 나섰다. 혁명 대상은 사방을 휘감고 있는 미세먼지였다. 안 좋은 공기가 나라를 위협하고 있으니, 개개인이 조금씩이라도 마셔 없애자는 황당하고도 진지한 캠페인이었다. 학생들이 기꺼이 입을 벌리고 달리며 인체 공기정화기가 된 날, 머리 위로 솟은 굴뚝은 여전히 매연을 뿜어냈다.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 영화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라틴어 격언으로, 직역하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다. 영화를 봤지만 스치듯 지나간 이 문장을 알아채지 못한 사람이라면 뜻을 듣고 놀랐을 것이다. 영화에서 ‘트루먼 버뱅크’라는 한 개인의 탄생, 성장, 사랑, 고민 등 일상생활을 전 세계 시청자들이 24시간 라이브로 본다. ‘하나’에 시청자 전체를 위하여 일생을 산 셈인 트루먼을, ‘전체’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트루먼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시청자들을 대입시키면 딱 맞아떨어진다.

   
▲ 영화 <트루먼 쇼>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 등 뒤로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문구가 펼쳐져 있다. ⓒ 영화 <트루먼 쇼> 갈무리

전체를 위해 일생을 보낸 게 어디 트루먼 한 사람뿐일까.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구호 아래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몸과 마음을 바쳐왔다. 농장과 공장에서 수많은 인민이 ‘전투’를 벌여도 수중에 돌아오는 건 없는 윗동네나, 방사능 오염지역 농산물을 “먹어서 응원하자!”는 옆 동네 예를 굳이 들 필요도 없다. 가가호호 장롱 속 고이 모셔 두던 돌 반지, 메달, 십자가 등 금붙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나왔던 우리 얘기도 불과 19년 전이다. 갱도에서 석탄재를 마시고 땡볕에 아스팔트를 수도 없이 깔며 겨우 모은 보물을 헌납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국가를 열심히 외치던 외환위기 초래의 주범들이 해 준 거라곤 “아름답다”는 감상평뿐이었다. 그래도, 백의민족의 역사에서 하나가 전체를 위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연일 전광판을 때리더니, 급기야 대기오염 감시 사이트 ‘에어비주얼’은 서울이 세계 2위 미세먼지 오염도시라는 소식을 알렸다. 이비인후과로 향하는 발소리가 커지고, 공기청정기는 줄기차게 팔린다. 미세먼지가 WHO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됐고, 뇌졸중‧치매 등을 유발한다는 소식으로 불안에 떤다. 이에 대한 ‘전체’의 답은 ‘차량 2부제로 타자’, ‘디젤차가 문제다’, ‘고등어 조심히 굽자’, ‘아니다, 이제부터 미세먼지를 부유먼지로 부르자’다. 고농도 미세먼지의 근본 원인 조사나 대책에는 등 돌리고 ‘하나’들에게만 열심히 전체를 위하라고 외친다. 공장 굴뚝 아래에서 학생을 공기청정기 취급한 중국 대학과 무엇이 다른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국내 최대 대기오염원인 석탄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실상은 달랐다. 폐쇄하는 건 수명을 다해 어차피 쓸 수 없는 발전소였고, 오히려 9곳을 새로 지어 발전량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내 화력발전소를 중단하기로 한 북경보다 공기 질이 떨어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도사린다. 트루먼을 향해 실컷 감동의 박수를 보내다가, 전파가 끊기자 늘어지게 하품하며 채널을 돌리는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 속 반전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화력발전소가 유발한 미세먼지로 인한 연간 조기 사망자 수는 1,000명을 이미 넘어섰고, 신설 발전소를 반영하면 1,144명으로 늘어난다. 발전소를 30년 돌린다고 치면 사라지는 ‘하나’는 34,320명이다. 새마을부터 촛불까지 끊임없이 하나는 전체를 위했으니, 이제 전체가 하나를 위해 팔 걷어붙이고 나설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평화 기자

[박진홍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박진홍입니다.
진실 앞에서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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