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상징

▲ 이민호 기자

서울은 촛불의 바다였다. 광화문 광장을 넘어 대한문까지 촛불로 가득 찼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3월 11일까지 20차례 열렸으며 전국에서 연인원 1천 6백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최대 인파로 기록된 6차 집회에는 230만 명이 모였다. 광화문에서 서울광장을 지나 남대문 인근까지 1.7km가 사람으로 가득했던 날이다. 참가자들이 오직 박근혜 대통령 ‘탄핵’만을 위해 광장에 나왔을까?

조선일보는 3월 13일 <광화문광장 흉물 천막들 이제 걷어낼 때다>라는 사설에서 “뜻대로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계속 집회를 열 이유가 없다”며 “촛불 단체들은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70여 개 천막도 치우기 바란다”고 썼다. 서울 한복판에 난민 수용소도 아니고 몰골이 흉하다고 깎아 내린다.

▲ 광화문에 촛불은 소외된 이를 위해 존재한다. ⓒ 이민호

“최순실 사건만 아니라 통진당과 각종 노사 분규, 원자력과 4대 강까지 아무 연관성 없는 플래카드들도 걸려 있다. (중략) 많은 국민이 탄핵을 바랐지만 이런 행태를 원한 것은 아니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이 광경에 혀를 찬 지가 벌써 몇 달째다. (중략) 세월호 천막도 이제 걷어야 한다.”

사설에서 텐트를 걷어내야 한다는 이유 중에 “불법이다”,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가 눈에 띈다. 광장에 선 그 누구도 불법 점거를 원하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광장에 텐트를 친 모두의 바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 세월호 진상 조사와 인양을 기다리는 유가족들, 삼성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자와 그 가족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그렇다. 이들은 촛불 집회에서 국민에게 이 비극이 현재 진행형임을 알렸다. 그 외에도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문화・ 예술인 블랙리스트, 개성공단 철수, 4대강 사업, 조선업 구조조정, 개헌 등 정치경제 현안들. 실업, 저출산, 고령화, 농촌, 교육, 재벌 중심 경제 등 구조조인 문제까지 과제들이 켜켜이 쌓였다. 주류 언론을 통해 이런 과제가 적극적으로 공론화될 수 있을까?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론장의 역할을 짚는다. 공론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성 확보를 위해 서로 다투되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승복하고 때로는 합의하고 때로는 거부하면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의사소통의 공간이다. 그의 이론은 근대 들어 국가와 시민 사회의 일체화, 대중문화 발달 등으로 국가에 대한 비판이 무뎌지고, 정치적 조작에 예속화되어 근대 사회가 ‘재봉건화’되고 있다고 예리하게 파헤친다. 어떻게 하면 공론장 내에서 비판적 합리성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다시 말해 대의 민주주의 안에서 참여 민주주의가 어떻게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광화문 촛불이 상징하는 바는 적극적인 참여 민주주의가 아니면 기성 보수 언론들은 귀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광화문 텐트촌과 (조선일보의 말을 빌려) 촛불 속의 아무 상관 없는 이들은 기존 제도권(국회와 정부) 속에서 대표되고, 논의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광장은 여론 형성을 위한 베이스 캠프다. 기성 보수 언론은 국회를 통한 해법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도 차원은 물론 책임 있는 당사자들에게서 사태 해결 의지를 찾을 수 없다. 언론마저 공론장 역할을 유기한 상태에서 광장이 정부와 관변단체의 홍보행사 장소로 전락하거나, 텅 비어있기를 바라는가? 소외된 이들에게 광장이 참여민주주의 상징으로 남아야 하는 존재 이유(Raison d'Etre)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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