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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책 내음 맡으며 걷다
[현장] ‘혜화 책방길’ 동네서점 탐방
2017년 03월 29일 (수) 22:13:50 신혜연 기자 s01928@naver.com

화창한 봄날, 아직 발길을 정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동네 책방길 산책은 어떨까? 서울시가 지난 16일, 개성 있는 동네 책방을 고루 즐길 수 있는 ‘서울 책방길 11선’을 선보였다. 서울 시민들이 직접 짠 책방길은 △망원 △홍대앞 △연남 △이대앞 △경복궁 △해방촌 △이태원 △종로 △혜화 △강남 등 11곳이다. 지역 놀이터 같은 ‘망원 책방길’, 인디 문화의 발상지 홍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홍대 앞 책방길’, 가장 오래된 서점부터 가장 트랜디한 서점까지 다양한 책방의 면모를 체험할 수 있는 ‘경복궁 책방길’ 등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혜화 책방길’을 직접 찾았다.

   
▲ 혜화역 1번 출구에 위치한 이음 책방. Ⓒ 신혜연

소형 출판사와 공생, 마음 예쁜 동네 책방

혜화 책방길에는 △그림전과 북콘서트가 끊이지 않는 ‘책방 이음’ △영화상영회와 사진전을 주기적으로 여는 ‘얄라북스’ △성균관대 앞에서 20년 넘게 사회과학서적을 판매해온 ‘풀무질’ △60년 전통의 ‘동양서림’ 등 독특한 색과 전통을 가진 동네 서점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오른쪽 길로 3분간 걸어가면 ‘책방 이음’이 나온다. 현재 책방에서 전시 중인 동화책 '두꺼비가 간다'의 두꺼비 삽화가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로 이어진 계단 끝이 서점 입구다.

   
▲ 이음 책방 내부. 지하에 있지만 밝고 따뜻한 느낌이다. Ⓒ 신혜연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어둑한 이미지와 달리 나무 책장과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따뜻한 느낌을 안긴다. 책방 주인이 매일 엄선하는 클래식 음악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입구 바로 앞 책장은 출판사 '눌민'의 책들 차지다. '작은 출판사 소개 4탄'이란다. 이음은 대형 서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소형 출판사들의 책을 전면에 배치해준다. 소형 출판사의 활로를 터주자는 취지다. 벌써 몇 해째 소형 출판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책방 외벽에 걸고, 저자 강연회도 열어준다.

   
▲ 이음 책방에 마련된 갤러리. 그림책 ‘두꺼비가 간다’ 삽화전이 한창이다. Ⓒ 신혜연

이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지혜(26) 씨는 벌써 5년째 책방을 드나드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독립잡지를 구하러 처음 방문했는데, 음악도 좋고 편안한 분위기여서 정이 들었다.” 이 씨가 차 한 잔을 권했다. 이음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비롯해 생활협동조합에서 취급하는 각종 차를 판다.

   
▲ 소형 출판사 ‘눌민’의 책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뒀다. Ⓒ 신혜연

이 씨가 책방 이음의 후원회원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책방 이음은 시민단체 ‘나와 우리’가 운영하는 비영리 서점이다. 참고서 등 이윤이 나는 책을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출판사와 도서관을 후원하다 보니 경영실적은 늘 좋지 않다. 책방을 아끼는 6천여 명 시민들의 도움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다.

   
▲ 얄라북스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 사진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신혜연

예술가 작품실 같은 멋쟁이 동네 책방

혜화역 4번 출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성균관대학교 쪽으로 걷다 보면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얄라북스’ 간판이 나온다. 얄라북스도 이음과 마찬가지로 지하에 터를 잡았다. 책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개성 강한 예술사진들이 빛을 내뿜는다. 사진작가의 전시품이다. 얄라북스는 1년에 두세 차례 계단 벽면을 이용한 사진전을 연다. 이른바 ‘계단전’이다. 이달 말에는 ‘서브컬처문화’를 다룬 사진전이 열린다.

   
▲ 얄라북스 입구에 배치된 사진 작품. 계단에 전시된다고 해서 일명 ‘계단전’이다. Ⓒ 신혜연

3년 전 ‘얄라 스튜디오’로 출발한 얄라북스는 복합 예술 공간 성격이 짙다. 입구에서부터 책이 잔뜩 꽂혀 있어 영락없는 서점으로 보이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과 사진작가들이 사용하는 작업실이 사이좋은 이웃이다. “작가들이 이곳에서 사진 촬영도 하고 인화도 한다. 전시용 작품이나 책, 엽서 만들 때 사용할 사진·삽화도 이곳에서 뽑는다.” 얄라북스 운영진 김지훈 씨의 설명이다.

   
▲ 얄라북스 운영자 양은하 씨가 책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 신혜연

독립출판물과 시각예술 책 등 대형서점에서 찾기 어려운 책들이 얄라북스 선반을 빼곡히 메운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 활동 지원 서점으로 선정돼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무료 영화를 틀었다. “창경궁 바로 옆에 있으니 산책하는 길에 들러보세요.” 운영진 양은하 씨의 추천대로, 봄날 산책 여정을 갈무리하기 안성맞춤이다.

   
▲ 얄라북스는 전시용 작품을 뽑는 작업실로도 사용된다. 색을 비춰볼 수 있는 국제 표준조명을 갖췄다. Ⓒ 신혜연

“그 학생 아직도 기억나” 24년 추억 쌓인 동네 책방

성균관대학교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이 길목의 터줏대감인 ‘풀무질’이 올드팬들의 추억을 되새겨준다. 풀무질 서점이 처음 문을 연 건 1985년 7월. 이어 자신을 ‘풀무질 일꾼’이라 부르는 은종복(52) 씨가 1993년 인수했다. 4월이면 은씨는 ‘풀무질 일꾼’ 24년째를 맞는다.

   
▲ 풀무질 서점 입구 간판. 2007년부터 지금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 신혜연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학가에 인문사회 서적 서점들이 성황을 이뤘다. 풀무질만 해도 하루에 100권씩 팔았다. 하지만 지금 서울 시내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은 서울대학교 앞 ‘그날이오면’을 비롯해 단 2개뿐이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풀무질은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자리로 이사를 온 게 2007년이다.

   
▲ 풀무질 일꾼 은종복씨가 자신이 쓴 책 ‘풀무질’을 들고 있다. Ⓒ 신혜연

“옛날보다는 다들 책을 덜 보죠. 어떡하겠어요.” 멋쩍게 웃으며 뱉은 말에 그리 밝지만은 않은 서점의 현실이 묻어난다. 은 씨는 그동안 책방을 운영하며 만난 인상 깊은 손님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중이다. 책을 훔쳐가던 사람, 술값을 빌리고 갚지 않는 학생, 말없이 책만 사 가던 여성 등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20년 넘게 풀무질의 역사를 아로새겼다. 깊이 있는 책을 읽고 싶은 날 다시 찾게 될 듯싶다.

서울 책방길 11곳을 담은 지도는 ‘내 손안에 서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참고기사: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068798?tr_code=snews)


이 기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 (http://mediahub.seoul.go.kr/) 에도 실립니다.

편집: 김평화 기자

[신혜연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신혜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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