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반 던지는 남자'와 '걸어가는 사람', 네 개의 단상 ④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술문명이 발달한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부딪히는 근원적 질문이다. <단비뉴스>의 PD들이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과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인간’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각기 다른 PD들의 재기 발랄한 글을 4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왼),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오). ⓒ flickr

① 우리는 살아있다 (이연주 PD)
② 왕년이란 향수 (안윤석 PD)
③ 못난이의 아름다움 (박경난 PD)
④ 걷지만 멈춰있고 (고하늘 PD)

▲ 고하늘 PD

“살아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게 아냐”.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은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가 되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충격과 공포였다. 나는 당연하게 살아 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혹시 나는 죽어있는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걸까? 잠시 숨을 깊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누군가는 팽팽한 줄을 탄다. 다른 누군가는 언제 끊어질지 모를 썩은 줄을 탄다. 내 줄은 팽팽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걸 수도 있다. 나는 내 줄이 썩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체, 줄 위에 서 있다. 나는 오늘도 생각 없이 산다.

여태 삶과 죽음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삶이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공기마냥 당연하고 하찮았다.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왔다. 밤이 깊었지만 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초점 잃은 눈빛, 축 처진 어깨, 힘없이 나풀거리는 팔과 다리, 볼품없이 야윈 몸뚱어리. 이상과 사고가 배제된 발걸음으로 거리는 조용하다 못해 살벌했다.

그렇다. 숨을 쉬며 살아간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설레며 두근거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서 삶의 역동성을 느낀다. 빛나는 두 눈, 다부진 어깨, 힘차게 뻗어내는 팔과 다리, 탄탄하게 자리 잡은 근육질 몸.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뚜렷한 발자국이 남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열심히 걷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이라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던져지는 탓이다.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적 사회에서 죽지 않으려고 살아간다. 생각도 꿈도 사치다. 숭고한 이상과 건전한 사고는 진즉에 잊어버렸다. 승전보를 알리는 쾌감을 느끼지도 장렬하게 전사하지도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 질긴 목숨만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육신은 살아 숨 쉬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 ⓒ 고하늘

프랑스의 소설가 폴 부르제가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이상적인 삶을 꿈꿔야 한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이 삶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남은 인생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갈 게 빤하다. 자신이 삶의 주체, 즉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면 한 평생 들러리가 되어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삶에 끌려다니지 않게 생각하라. 그리고 또 생각하라.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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