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원반 던지는 남자'와 '걸어가는 사람', 네 개의 단상 ①

▲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왼),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오). ⓒ flickr

① 우리는 살아있다 (이연주 PD)
② 왕년이란 향수 (안윤석 PD)
③ 못난이의 아름다움 (박경난 PD)
④ 걷지만 멈춰있고 (고하늘 PD)

 

▲ 이연주 PD

“출입문이 닫힙니다.”

고요했던 전시장 안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진다. 조각상들을 밝히던 조명등이 하나 둘 꺼지고, 통로에 있는 철문이 서서히 닫힌다. 문이 거의 닫히려는 순간, 어디선가 텅- 하는 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돌격하라!!” 라는 강한 외침이 들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시장의 아름다운 미술품이었던 조각상들이 하나 둘 살아나 철문을 향해 달려간다.

작은 청동 조각상들이 코끼리 상아 조각을 머리에 이고 뒤뚱뒤뚱 문을 향해 달려가고, 그 앞에는 100cm도 되지 않아 보이는 빼빼 마른 노인 청동상이 그들을 선두 지휘하고 있다. 노인의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가늘어서 철문 틈을 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손짓과 발걸음에는 힘이 넘쳤고, 눈빛은 찬란히 빛났다.

“철컥.”

“상아를 끼웠다!!” 하는 소리와 함께 전시장엔 함성이 가득 찼다. 작고 얇은 청동상들은 모두 철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인 청동상은 정신없이 빠져나가는 조각상들의 질서를 유지시키며 탈출을 도왔다. 노인은 철문 앞에 서서 남은 조각상들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전시장 구석, 혼자 덩그러니 원반을 들고 서 있는 남자 조각상을 발견한다.

“이봐요! 어서 탈출하지 않고 뭐해요!”

소리치는 할아버지가 무안스럽게, 원반을 든 남자는 말없이 바닥을 바라보고만 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할아버지는 원반을 든 남자에게 달려가 소리친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이제 다시 기회가 없어요!” 할아버지는 허리를 있는 힘껏 젖혀 남자와 눈을 맞춘다. “전, 나갈 수 없어요.” 남자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힘겹게 입을 뗀다.

“무슨 소리요. 지금 저렇게 문이 열려 있지 않소!” “전 저 틈을 지나 갈 수 없어요.” 남자가 흘린 눈물이 할아버지의 옆으로 떨어진다. 계속해서 울리는 사이렌.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천사 조각상이 다급히 외친다. “대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대장님만 나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 남은 조각상들이 있소!”

할아버지가 외친다. “가세요. 당신과 다른 조각상들은 저 문을 통과 할 만큼 작고 말랐지만, 난 너무 커요. 저 철문을 통과하지 못할 거예요.”

▲ 우리는 나아가고 있지만 이 많은 석상들처럼 제자리에 머물지도 모른다. ⓒ 이연주

남자가 말했다. “대장님, 얼른요! 상아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닫히려는 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상아에 금이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닫히는 문을 보고, 울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때 할아버지의 눈에 들어온 남자의 원반.

“원반을 던져요.” 할아버지의 말에 바라보는 남자. “원반을 저 문을 향해 던져요. 분명 문이 부서질게요.” 남자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저는 이 원반을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같이 해 보자는거요. 상아는 곧 부서질 것이고, 나 또한 갇히게 되요. 잠시 두려움을 내려놓으면, 우리 모두가 탈출할 수 있소. 저기 다리가 없어 가지 못하는 플라톤의 머리도 당신이 원반을 던져 문을 깨면, 함께 나갈 수 있소.”

남자는 자신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는 플라톤과 다른 학자들의 흉상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심 한 듯 문 쪽을 향해, 원반을 던질 자세를 잡는 남자. 남자는 힘껏 팔을 뻗는다.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원반. 문을 향해 날아가는 원반을 바라보는 남자와 할아버지, 흉상의 표정은 걱정에서 놀라움으로 변해간다.

“쾅” 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할아버지와 남자.

캄캄한 전시장. 전시장 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사이렌 소리만 가득하다. 그리고 처참히 부서진 철문과, 그 잔재 속에 남아있는 부서진 원반 조각이 보인다.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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