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16 서울 사회적 경제 기념 주간 스케치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입니다.” (2016 서울 사회적 경제 기념 주간 팸플릿 중)

서울 한복판에 모처럼 ‘사람의 가치’가 꽃폈다. 서울시가 27일부터 30일까지 청계광장에 마련한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적 경제’ 체험 부스와 전시 무대가 그 꽃밭이다. 사회적 기업이 직거래 장터를 열어 소비자와 사회적 경제 주체들 간 만남을 주선하니 꽃과 나비의 만남도 이뤄진다. 

이번 행사는 ‘사회적 경제 기념 주간’ 기획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서울시는 사회적기업의 날(7.1)과 협동조합의 날(7.2)을 맞아 6월 마지막 주를 ‘사회적 경제 기념 주간’으로 정하고 서울 각지에서 관련 행사를 기획했다. 특히 청계광장에서 열린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적 경제’ 행사는 시민들이 어려운 개념인 ‘사회적 경제’를 보고, 듣고, 만지며 오감으로 친숙해지도록 운영하는 데 중점을 뒀다. 

▲ 청계광장에 마련된 의견 게시판. “서울살이 힘드시죠? 여러분의 고민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 신혜연

28일 오후 2시,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더운 날씨 탓인지 청계광장에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파란 간이 천막으로 만들어진 안내센터 뒤 초록 칠판은 열기로 뜨거웠다. “예술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대학생활 돈이 없어 알바만 하다 끝날 것 같아요”, “칼퇴(정시 퇴근) 하고 싶어요” 서울살이 고민을 털어놓는 시민들의 솔직한 고백이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담겨 뿜어내는 열기다.

칠판 뒤에는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현황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전시 부스가 늘어섰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서울시에는 △422개 사회적기업 △2,200개 협동조합 △114개 마을기업 △194개 자활기업이 있다(중복 포함). 이 네 단체는 사회적 경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업 이윤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한다는 게 공통점으로 꼽힌다. 

▲ 실제 사무실처럼 꾸며진 ‘오피스 라이프 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적경제 제품이 소개돼 있다. ⓒ 신혜연

전시부스를 지나면 '공공구매 홍보관'과 '오피스 라이프 존' 부스가 나온다. 공공구매 홍보관은 '사회적 경제 우수기업'을 소개한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2013년부터 선정해 육성하고 있는 발전 가능성 높은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다. 오피스 라이프 존은 사무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상품목 중에서 사회적 기업이 진출한 분야를 골랐다. 컴퓨터 모니터부터 미디어, 영상, 커피, 차, 토너 및 카트리지, 복사용지 등 사회적 경제를 일상에서 만날 방법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사무실처럼 꾸며진 전시관을 둘러보면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사회적 경제를 눈으로 확인한다.

주제전시 부스 바로 옆에는 4개의 식음료부스다. 이 중 예비 사회적기업 ‘트립티’는 공정무역 커피와 원두를 판다. 트립티는 수익금 일부를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쓴다. 전반석(32) 팀장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카페를 창업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했다. 태국과 네팔에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생활을 하던 이들이 운영하는 트립티 카페가 있으니 사회적 기업의 성과다. 전 팀장은 “평일이라 기대는 안 했는데, 예상보다 매출이 좋다. 3시간 동안 5만 원 어치를 팔았다”고 환히 웃는다. 

▲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트립티 부스에서 시민들이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 ⓒ 신혜연

광장 끝에 위치한 체험부스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시민들의 발길이 잦다. 이날 체험부스에는 장난감을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와 버려진 책을 재활용하는 예비 사회적기업 ‘팝업스토어’가 자리를 잡았다. 

금자동이 부스 앞에는 색깔별로 분리된 장난감 부품들이 알록달록 줄을 이뤘다. 시민들은 마음에 드는 부품을 택해 자신만의 장난감을 만들며 시간 가는줄 모른다. “시민들이 기부한 장난감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원의 순환을 추구한다”는 금자동이 자매단체 장난감 학교 ‘쓸모’의 김주혜 교육실장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 블라디맷(6)과 함께 부스를 찾은 미국인 카츠리나는 “집에 아이가 버린 장난감이 많은데, 이렇게 재활용하는 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맞장구친다. 

▲ 서울 청계광장 ‘금자동이’ 부스에서 장난감 만들기 체험을 하는 블라디맷(6). ⓒ 신혜연

팝업스토어 부스에도 자신만의 팝업북(입체 그림책)을 만들어 보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큐베이팅 중인 예비 사회적기업 팝업스토어는 기증받은 동화책을 자신만의 팝업북으로 재활용하는 활동을 돕는다. 안선화(46) 대표는 “팝업스토어를 알리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며 “의외로 성인들이 관심이 많다. 어제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았다”고 열기를 전한다. 체험에 참여한 김현지(22) 씨는 “행사에 대해서는 모르고 왔는데 무료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 동화책을 오랜만에 봐서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며 미소 짓는다. 

▲ 팝업스토어 부스에서 체험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장은정(22,사진 앞쪽)씨와 김현지(22)씨. ⓒ 신혜연

오후 4시부터는 사회적 경제 직거래 장터인 ‘작은 시장’이 열렸다. 햇볕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시민 발길이 늘었다. 스물한 개 업체가 참여해 소비자와 직접 만났다. 한글을 수놓은 앞치마 판매업체 ‘바늘한땀 협동조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늘한땀은 전통 공예품으로 어르신과 미혼모 등 취약계층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수익금 일부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의 배냇저고리 지원 사업에 쓴다. 곽경희(54) 대표는 “외국인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오늘 행사에 참여했다”며 “우리 제품에는 늘 한글이 들어간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젊은 층들이 입을 수 있는 개량한복도 선보일 예정이다. 

▲ 장터 맨 앞쪽에 위치한 ‘바늘한땀 협동조합’의 전통공예품들. ⓒ 신혜연

액세서리 제작에 15년 이상 종사한 장인들이 모여서 만든 패션 공예산업 협동조합 이준석(45) 이사는 “홍보 효과가 좋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장터에 자주 나온다”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뭔지 직접 들을 수 있고, 우리 제품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생겨 좋다”고 장점을 꼽는다. 

물건을 구입하는 시민도 보였다. 김은미(가명, 38)씨는 “나무 도마를 사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직접 만져보니 무겁지도 않고 찾던 상품이라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가 도마를 구매한 곳은 협동조합 ‘마을공방 사이’다. 조합원 손경화(35) 씨는 김 씨에게 나무 도마를 관리하는 법을 상세히 일러줬다.  

강서구 지역 역사 교사들이 만든 협동조합의 역사교실도 눈길을 끌었다. “세계문화유산 12개 중 3개 이상을 맞춰 보세요”. 당황해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시민들. 퀴즈를 맞힌 시민들은 교사들이 마련한 젤리를 받았다. 역사퀴즈를 진행한 이경애(47) 교사는 “시민들과 역사 지식을 공유하고 협동조합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외에도 △164명의 가방 장인을 조합원으로 둔 양천 가방 협동조합 △장애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되돌림 △서울시와 연계해 방치된 자전거를 수리해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사랑의 자전거’ △생활협동조합 에코두레 등이 참여했다. 

▲ 행사에 참여한 에코두레 조합원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적 경제’ 손수건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코두레는 이날 지엠오 완전 표시제 도입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 신혜연

저녁 7시부터는 밴드 ‘솔가와 이란’의 거리 공연이 벌어졌다. 해가 진 틈을 타 밖으로 나온 시민들과 퇴근길 직장인이 객석을 매웠다. 관심사가 맞는 이들이 대화를 나누며 밥을 함께 먹는 '소셜다이닝' 행사도 인기를 모았다. 행사 기간 내내 다른 주제로 소셜 다이닝이 열린다. 이날 행사는 '텃밥밥상'을 주제로 친환경 농부시장 '마르쉐@'과 홍대다리텃밭, 비빌기지키친팜이 마련한 식탁이 준비됐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사전 예약한 30명에 한해 음식이 마련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 저녁 7시부터 서울 청계광장에서 밴드 ‘솔가와 이란’의 공연이 펼쳐졌다. ⓒ 신혜연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위기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최근 아시아 및 신흥경제의 금융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시장원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규제 없는 금융세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 (중략) 지금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사회적 경제 운동”은 경제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참석자들은 사회적 경제가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삶”을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13 국제 사회적 경제포럼에서 채택된 <서울선언문>의 일부다. 서울시는 2014 국제사회적 경제협의체 창립총회를 유치하고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사회적 경제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회적 경제’ 행사도 이런 흐름에서 이뤄졌다. “사회적 경제 주간 기념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사회적 경제를 친근하게 느끼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는 유연식 서울시 일자리노동 국장의 말이 사회적 경제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밤늦도록 청계광장을 지킨 이들에게 더 큰 실천으로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편집 :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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