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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인권과 평화... 태극기는?
[역사인문산책] 태극기
2017년 03월 10일 (금) 23:41:34 이창우 기자 irondumy@icloud.com
   
▲ 이창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찬반을 떠나 군중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렸다. 닮은 구석 없는 두 집단이 같은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만큼 태극기는 한국인들에게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깃발이다. 그런 특징은 태극기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 태극기였을까? 태극기는 삼색기나 성조기처럼 근대민주정의 건국이념을 담고 있는 깃발은 아니다. 오히려 전제군주정인 대한제국의 국기였다. 그러나 독립운동 과정, 특히 3.1 운동에서 널리 쓰인 이후 태극기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오롯이 담아내게 된다.

해방 이후 현대사의 독재정권들은 태극기가 표상하는 다양한 가치를 ‘국가주의’ 내지 ‘반공의 상징’만으로 한정 짓길 바랐다. 그들은 재빨리 태극기를 ‘국민 만들기’에 동원했다. 새 나라의 태극기 밑에는 어느새 피 냄새가 어른거렸다. 보도연맹학살, 제주 4.3사건 등의 참혹한 사건이후, 태극기는 사실상 피아식별 표로 기능하며 오랫동안 무섭도록 펄럭였다. 그런 현실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별수 없이 자신을 국가에 투영시켰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성실히 국민으로서 살아오려 한 애국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트라우마, 정부의 폭압은 그들이 반공의식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태극기는 여전히 공산주의자들에게 맞서는 군기이거나, 일생의 주군을 위해 흔드는 어기(御旗)인 셈이다.

   
▲ 손과 손에 들린 태극기는 그들의 인생과 세계관을 웅변한다. ⓒ 강민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받아들이되, 정권이 만든 틀에 순순히 가두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독재자들이 그토록 태극기로부터 오려내고자 했던 ‘불의와 압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사람들은 끝내 부여잡았다. 역사적인 4월 19일, 참혹했던 5월 18일의 희생자들에게는 태극기가 덮였다. 6.10 항쟁 당시 부산 문현 교차로에서 펄럭인 태극기는 민주화 투쟁 승리의 증표처럼 회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태극기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그들은 태극기 대신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국가주의를 벗어나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표상하는데 어울렸다. 그 흐름은 최근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수언론들이 탄핵반대집회를 ‘태극기집회’라고 명명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태극기의 가치공백 상태를 노린 재정의 시도다. 조지 프레이저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이밍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아직 ‘태극기’에 대한 적대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촛불 대신 태극기에 노란리본을 매달았다. 만약 민주시민들이 오랜 기억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태극기가 표상했던 다양한 가치는 다시 반공국가주의라는 철지난 괴물에게 삼켜질지 모른다. 3.1절에도 국기게양을 꺼릴 정도로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태극기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국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다른 방향을 향한 한 걸음의 진보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태극기가 가진 명과 암을 넘어 개인과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고민해 볼 시점일지도 모른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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