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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기호, 역사의 뒤안길로
[역사인문산책] 태극기
2017년 03월 12일 (일) 17:55:27 이민호 기자 wordianlee@naver.com
   
▲ 이민호 기자

삼일절을 앞둔 주말 아침. 귓전을 울리는 영롱하고 굵직한 소리에 단잠에서 깼다. “딩동댕동,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는 3월 1일은… 각 가정에 태극기를 반드시 게양해서 일제치하에서도 나라 사랑을 실천한 조상들의 정신… 이상 관리 사무소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삼일절을 맞아 태극기를 달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이었다. 창고에 모셔놓았다가 국경일이면 기꺼이 내달아 놓던 태극기를 이번 삼일절에는 그냥 모셔뒀다.

광화문광장에서 휘날리던 태극기가 생각나서였다. 작년 12월 어느 토요일부터, 광화문 독서 모임 후에 들르던 서울광장 앞이 태극기를 든 어르신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잠시만 서 있어도 손발이 얼어붙는, 눈 덮인 서울 광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가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아아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였다. 대한민국을 최상의 긍정으로 표현하는 노래와 태극기의 조합은 2016년 10월부터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태극기 집회에 모인 기성세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외쳤다. 야당과 검찰, 언론이 '야합・조작'으로 죄 없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공산 혁명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가 석 달이 넘게 지속하면서 삼일절에 태극기를 달지 않겠다는 여론조사 답변자가 42%나 됐다. 태극기가 적어도 최근 몇 달간은 부끄러움이 되어버린 셈이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비교적 자유롭고, 배고프지 않은 세대에게 태극기는 때론 잊혔다 가끔 생각나는 나라의 상징이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자 붉은악마 응원 물결 속에서 태극기는 권위적이기보다 친근한 나라의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즈음 미디어를 통해서는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고 선진국 대열에 근접한 번영과 성공,‘긍정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민주화 항쟁과 1960년 4・19혁명 시위 대열의 맨 앞자리를 꿰찬 ‘민주주의’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더 오래전에는 3.1운동과 임시정부, 항일 운동 속에서 꺼져가는 민족의 혼을 상징하는 ‘자주’와 ‘독립’ 그리고 ‘평화’의 열망이었다.

   
▲ 태극기 집회에서 개발독재, 권위주의, 반대파 탄압은 경제개발과 강력한 리더십, 투철한 안보관으로 둔갑한다. ⓒ 이민호 기자

롤랑 바르트는 “신화적 기호가 그 문화의 지배적 가치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과 권력을 쥔 세력이 매스미디어(집회)를 통해 이런 문화적 신화를 주입한다고 봤다. 바르트의 분석을 통해 본 우리사회 신화적 기호는 무엇일까? 소쉬르의 언어 기호학을 빌리면 태극기 집회는 ‘기표(記標, Signifiant)’인 「광장에 모인 태극기, 군중의 물결과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에 ‘기의(記意, Signifié)’인 「더 잘살게 된, 더 잘살게 될 대한민국」이 결합해 「태극기, 박근혜」라는 ‘기호(記號, Signe)’로 나타난다.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 신화적 기호인 태극기와 박근혜 사진을 보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구절의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개발독재, 권위주의, 반대파 탄압을 경제개발과 강력한 리더십, 투철한 안보관이라는 신화로 둔갑시킨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정당한 가치,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낙후성을 드러내 줄 뿐이다. 바르트의 개념에서 청산대상인 신화적 기호, 태극기의 이미지는 탄핵당한 박근혜와 함께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송승현 기자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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