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기후변화 취약계층' 탐방기

영등포역 6번 출구. 롯데 백화점 인근에는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백화점을 등지고 오른쪽 골목으로 몇 걸음만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길 한 편에는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낯선 거리에서 수저가 담긴 양푼 냄비를 쥔 이소웅(47)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취재 요청에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 영등포 쪽방촌 초입길에 그려져 있는 벽화. ⓒ 서지연

“여기 사는 사람은 병신이나 또라이지. 생각이 있으면 여기 왜 살겠어.”

추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했다. 한 평이 되지 않는, 짐이 차지한 자리를 빼면 사람 한 명 겨우 누일 수 있는 방이 24만원이다. 그는 전열기구도 없이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야 한다. 전기세 감면 지역임에도 전기세가 월세에 포함되어 주인이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몇 달 전과 비교하면 이마저도 호사다. 그가 토끼장으로 비유한 근처 판자촌에서는 매일 밤 술을 먹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캐나다로 시집간 누나와 형제들은 그가 이 동네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다. 혹시라도 자신을 찾으면 도움 없이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술을 끊고 일용직 노동자로 새 삶을 시작한 그는 취재진에게 꼭 자신의 얼굴을 실어 달라고 부탁했다.

▲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이소웅씨. ⓒ 서지연

이씨는 이윽고 안씨(59)를 소개했다. 촬영기사로 일했던 그는 사기로 징역 10개월을 산 후 1년 전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차 사고로 한쪽 눈마저 다친 안씨는 시각 장애인 6급을 받은 탓에 국가로부터 매달 70만원을 지원받는다. 안씨의 방은 한 달에 30만원으로 이씨의 방보다 넓고 깔끔했다. 그는 마비된 오른쪽 다리를 절룩이며 주워온 난로를 숨겼다. 전열 기구를 빼앗아가는 주인에게 항의했더니, 전열 기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5만원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는 요구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골목과 맞닿은 양철 문 틈새로 시린 바람이 들어왔다. 국가의 난방비 지원 사업을 아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에너지 바우처’ 카드를 내밀었다. 복지관에서 만들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사용해 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 불편한 다리로 난로를 주워온 안씨. ⓒ 서지연

도시 주거 환경은 날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시에는 ‘5대 쪽방촌’이 남아있다. 이씨와 안씨가 거주하는 영등포동을 비롯해 용산의 동자동, 종로의 돈의동 및 창신동, 중구 봉래동이 그곳이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빈곤층으로 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기후변화 취약계층이다. 기후변화 행동 연구소 관계자에 의하면 기후변화 취약계층은 곧 사회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고, 특히 이들은 동절기에 극심한 에너지 빈곤 문제를 겪는다. 동절기 난방과 보온을 위한 연탄, 가스, 전기 등 적절한 에너지 사용에 있어 제한을 받는 사람들을 일컬어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기상청이 라니냐와 기후변화로 예년에 비해 한파의 빈도와 강도가 높을 것으로 예측한 올해 겨울은, 에너지 빈곤층에게 두려운 익숙함이다.

▲ 안씨가 자신의 집에 앉아있다. ⓒ 최효정

이씨와 안씨를 비롯한 영등포동 쪽방촌 주거자들은 12월 초입임에도 질병이나 알코올 중독, 장애, 노화 등으로 핍진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동네의 50년 터줏대감인 동네 슈퍼 앞에서 마주친 권씨(48)는 “이곳 방세는 20만 원에서 30만 원 선”이라며 “며칠 전 이사한 자신의 방도 흥정해 월 23만원으로 계약했다”고 했다. 취재진이 이곳에서 목격한 가장 좁은 방이었다. 비슷한 가격대로 따뜻한 고시원으로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장애인인 안씨는 “임대 아파트로 옮겨 볼 수 없을까 생각도 했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사를 하기에는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여력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 집 윤(54)씨의 경우 “세금이 밀려 쪽방촌으로 도망 왔다”며 “더 추워지기 전에 포크레인 용역 일로 돈을 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 누군가 남겨놓고 간 짐을 정리중인 정광진 할머니. ⓒ 최효정

2010년부터 시행한 「제1차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에 이어 올해 「제2차 국가기후변화적응대책」이 마련돼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지원 사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작년부터 시행된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이어나가고 있고, 서울시는 지난달 14일부터 서울사회복지기금공동모금회와 함께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로 모금을 진행 중이다. 용산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정광진(85,여)씨는 지원 사업의 수혜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 집에는 작년부터 도시가스가 들어와 따뜻하게 겨울을 나고 있다. 폐품을 모으는 정씨는 “복지관에서 3달치 도시가스 요금을 선불로 지원 받았다”며 “전기장판을 켜고 아껴 쓰다 보니3월까지도 쓸 수 있었다”고 말하며 “여전히 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연탄을 떼야하는 가구나 노숙인들도 많다”고 했다.

▲ 겨울에도 운영되는 무더위 쉼터. ⓒ 서지연

정부와 지자체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너지 빈곤층’은 존재한다. 이는 기후변화 취약층 문제에 사회 전체의 경각심이 낮고 컨트롤타워가 없어 민-관-지자체가 중구난방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바우처’는 수급 대상 선정이 까다롭고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실제 지원을 받고 싶다고 해도 1인 가구에게 8만원 정도의 난방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이라 직접 가스나 전기 요금을 내지 않는 세입자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민관협동으로 진행하는 여러 사업이 있지만, 보통은 대기업이나 개인 자원 활동가에게 신청을 받아 방한용품을 나눠주는 수준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과 노숙자들에게 여름철 제공되는 무더위 쉼터가 겨울철에도 추위를 피하는 곳으로 운영되지만, 거동이 어려운 고령 인구나 장애인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 박동기 할아버지가 2층에 걸어놓은 태극기. ⓒ 최효정

쪽방촌 주민들은 온기가 부족한 삶을 견딘다. 막다른 길처럼 보여 돌아가기를 두어 번, 묻기를 서너 번 해 겨우 찾았던 돈의동 쪽방촌은 저녁 6시부터 난방을 틀기 시작해 아침 9시가 되면 끄는 시스템이다. 그곳에서 14년을 거주한 박동기(63,남)씨는 “어차피 낮에는 구세군 활동이나 봉사 활동을 하러 가니 집에 있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옷은 그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두꺼웠다. 그와 경로당 친구인 김옥순(89)씨는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다. 돈의동에는 25살에 자리를 잡았다. 60년이 넘게 쪽방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쪽방촌에서 두 번째로 큰 방에서 산다. 김할머니는 “나는 혜택을 받아서 보증금이라도 마련해 개별난방이 되는 곳으로 왔다"며 “일본놈들한테 배상금이 나오면 봉사활동 갈 곳을 다섯 군데 봐뒀다”고 말했다. 김할머니는 배상금을 받으면 기존에 받던 지원이 중단된다는 소문이 있다며 걱정했다.

▲ 비좁고 추운 박동기 할아버지 방. ⓒ 최효정

“일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일을 시켜주지 않는다. 나랏돈 공짜로 받아먹는데 봉사해야지.”

대장암, 뇌경색, 당뇨,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박동기 할아버지는 냉골인 방에 서서 담담했다. 탑골공원 3.1절 행사에서 받은 손바닥만 한 태극기가 2016년의 대한민국과 겹쳤다. 이날,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됐다. 서울시 마지막 쪽방촌의 현실은 국가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한 대한민국의 극히 일부다. 환경부는 올겨울 처음으로 한파 등 전국의 기후변화 취약계층 1,000가구를 직접 방문해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 시공은 우선적으로 한파에 취약한 강원, 경기, 충북에서 시작된다. 올해 확보한 5000만원의 예산을 내년에 다섯 배 정도 늘려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재난방지와 기후 복원력, 기후 변화 위험을 고려하고 이에 취약한 빈곤계층에 대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가기로 했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형용모순이 아니다. 당위다.

▲ 영등포 쪽방촌에 적혀있는 '첫마음'. ⓒ 서지연

편집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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