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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곳에서 푹 잘 권리’를 허하라
[빛 공해] ③ 야간노동과 빛 공해 규제
2016년 09월 07일 (수) 20:56:25 기민도 김범진 기자 beomjin17@hanmail.net

폴란드 남서부, 체코와의 접경지대에 있는 도시 보가티냐(Bogatynia)의 밤은 너무 밝다. 폴란드 회사인 키토로넥스(Citronex)는 토마토를 재배하기 위해 밤에도 대형 비닐하우스에 인공조명을 비춘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체코 프리들란트(Frydlant)시 주민들은 이 빛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들다고 항의했다. 비닐하우스에서 빛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조치해 줄 것을 폴란드 측에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비닐하우스 확장이 필요한 폴란드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결국 이 문제는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했고, 지난 2월 유럽의회에 안건이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 폴란드 보가티냐시의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인공조명. ⓒ KNN 영상 갈무리

체코는 2002년 6월 ‘빛공해 금지법’을 도입한 나라다. 체코에서 개인과 단체들은 조명을 가리는 장치를 사용해 다른 방향으로 퍼지는 불빛을 줄여야 한다. 불빛이 밤하늘 관측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빛 공해에 민감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에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잠을 못 자면 피로가 빚처럼 쌓인다 

“수면은 시간을 잡아먹는 벌레다. 하루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의 말이다. 하루 3~4시간 자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수면을 ‘어리석은 일’, ‘나쁜 습관’으로까지 말하며 직원들도 못 자게 들볶았다고 한다. 그가 발명한 전구는 밤을 환하게 밝히면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앗아가고 있다.

전구는 잠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심리학자 스탠리 코렌은 저서 <잠도둑들>에서 말했다. 잠을 줄여 작업시간을 늘리면 사회가 풍요로워진다는 이론을 현대인들이 내면화하고 의식적으로 수면 욕구를 무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도 종종 “10시간 자는 사람이 서너 시간 자는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느냐”며 “성공을 위해 잠을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에디슨은 정말 하루 4시간 자는 것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사실은 에디슨 역시 수시로 낮잠을 청하며 적게 잤던 밤잠을 보충했다고 한다. 수면 전문가인 스탠퍼드 의대 윌리엄 디멘트 교수는 ‘잠빚(sleep debt)’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적정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피로가 빚처럼 쌓인다는 얘기다. 수면부족이 누적되면 병에 걸리기도 쉽다. 미국 수면재단(NSF)은 성인의 적정 수면시간을 하루 7~9시간으로 권고했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아예 수면부족을 ‘공중보건 전염병(public health epidemic)’으로 분류하고 있다. 수면 부족 현상이 전염병처럼 사회에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수면부족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잠이 부족해 집중력이 떨어지면 노동현장에서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리마일 섬(1976)과 체르노빌(1986)의 원전 사고, 우주선 챌린저호의 폭발(1986), 유조선 엑손발데즈호의 기름 유출(1989) 등은 모두 잠빚에 시달린 사람들의 실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빚 공해 단속 강화 추세 

인공조명과 야간 노동으로 인한 질병과 재해를 막기 위해 각국은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10년 7월 환경부에 제출한 <외국의 빛공해 현황 및 사례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972년 애리조나주에서 처음으로 인공빛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천체관측을 위해서다. 지금은 100개 넘는 도시에서 관련 법규와 조례를 제정하고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2005년 ‘청정근린 및 환경법’을 제정해 인공조명 규제를 본격화했다. 특히 타인에게 유해한 빛을 발생시킨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뒀다. 스페인은 신종 도시공해의 일종으로 빛 공해를 지목했다. 상업시설 조명과 광고조명, 사생활을 침해하는 빛을 규제하기 위해 주별로 조례를 만들어 대책을 세우고 있다.

   
▲ 거리로 향한 창은 영업시간이 끝난 한밤중에도 불빛으로 훤하다. Ⓒ 이문예

우리나라도 2013년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환경행정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방적 규제보다 다양한 지원을 통해 국민의 동참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 법의 시행과 관련해 경제적 유인책이 없다. 한남대 법대 윤부찬 교수는 “환경부가 빛 공해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명기구 철거 교체비용을 약 29억 9천 5백만 원으로 조사했지만, 이를 위한 예산은 책정하지 않아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낮 같은 밤, 야근 중인 한국인 

어느 늦은 밤, 서울 도심의 한 빌딩에서 사무실 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아빠는 야근 중’.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5년 ‘대한민국 기업사진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빛공해를 야기하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은 상당수가 야근 중인 직장인들이 켠 사무실 조명이다. 각종 설문조사마다 직장인들은 한국 기업문화의 고질적인 폐해로 야근 등 밤샘문화를 가장 많이 꼽는다. 대한상의가 컨설팅기업 매켄지와 함께 지난해 5~12월 100개 기업의 근로자 4만 5000명을 분석한 결과 직장인들은 주당 평균 2.3일을 야근하며 그중 절반에 가까운 43.1%가 주 3일 이상 야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2015년 ‘대한민국 기업사진 공모전’ 입상작 ‘오늘도 야근이다!’. ⓒ 대한상공회의소

이렇게 야근을 반복하면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수면의 질도 문제가 된다. 전문가들은 수면의 질이 양 못지않게 중요한데, 스트레스는 흥분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만들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양적, 질적 수면부족으로 쌓인 피로는 결국 생산성 저하나 산업 재해로 이어지니 ‘야근의 역설’인 셈이다.

전국금속노조가 2011년 펴낸 ‘수면장애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14년간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해온 김모 씨의 경험담이 실려 있다. 김 씨는 “야간근무는 1년 차든, 10년 차든, 30년 차든 절대 적응이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근무 한 지 20년 됐다고 해서, 야간근무할 때 팔팔하고 쌩쌩하고 잠을 안 자도 된다거나, 아침에 퇴근하고 집에 가서 푹 잘 수 있고 하는 건 없다”고 덧붙였다. 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정한 발암물질 등급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2A다. 수면 부족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대사증후군을 유발한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고혈압·고혈당·낮은 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높은 중성지방 중 세 가지 이상의 위험인자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도심 속 심야버스, 24시간 마트와 편의점, 카페 등 밤새 돌아가는 서비스업도 빛 공해와 피로사회의 한 축이다. 최근에는 밤에도 문을 닫지 않는 영업이 세탁소, 미용실 등 다양한 생활편의시설로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런 서비스를 선호하고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탓이다. 지방자치단체 중 빛공해방지법을 가장 선도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서울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을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도시’로 자주 언급하면서 이를 관광자원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서울 전역을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한 2015년 상반기부터 세빛섬, 잠실 수중보, 노들섬 등 한강 주요 명소에 103억 원을 들여 2018년까지 경관 조명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빛 밝기를 제한하면서도 한강 조명은 화려하게 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이다.

   
▲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피로사회. Ⓒ 이문예

‘밤샘근무를 하는 노동자 중에는 특히 비정규직이 많은데, 정규직 여부와 직업군도 수면장애가 일으키는 건강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눈길을 끈다. 박현주 위덕대 간호학과 교수의 연구 <교대근무와 수면시간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대사증후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사무직·기계조작 및 조립·단순노무직은 관리자나 전문가에 비해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았다. 이들 집단에 대한 건강과 정신적 스트레스 관리 등 사회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전문가들은 야간근무 기준을 노동법에 명시한 독일 등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노동자 보호 차원에서 과도한 야간 영업을 제한하는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야간경비나 환자치료 등 불가피한 업무는 예외로 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 노동자의 밤샘근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도 2014년 2월 ‘가맹사업법’ 개정을 통해 외식업 체인 등 가맹점 사업자에 야간영업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나 아직 사회 전반의 인식개선과 폭넓은 제도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밤새 거리를 밝히는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자동차의 전조등. 현대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자유를 주었지만 대신 '별빛 총총한 밤하늘'을 앗아갔다.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면 잠들어야 자연스런 인간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빛 공해'로 불면과 그로 인한 재해에 시달린다. 자연환경도 과도한 빛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빛 공해로 인해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을 조명하고 대안을 찾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김범진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 시사현안부 김범진입니다.
가장 현실적일 때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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