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펙트럼 넓어진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

따스한 햇살이 아스팔트 바닥에 쏟아지던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가 개막했다. 오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 영화제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국내외 작품들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 서울 환경영화제가 열리는 시네큐브. ⓒ 박경배

세계 40개 나라에서 출품된 85편(단편 35편 포함)의 영화를 선보이는 이번 행사는 씨네큐브 광화문 외에 스폰지하우스, 서울역사박물관, 인디스페이스를 상영관으로 활용한다. 분야별로는 국제환경영화경선 부문에 22편, 한국환경영화의 흐름 부문에 12편, 지속가능한 삶 부문에 11편, 공존의 삶 부문에 14편, 문명의 저편 부문에 2편, 포커스 부문에 13편, 에코그라운드 부분에 8편이 걸리고 지구 환경을 주제로 한 대담 '그린 토크'도 열린다. 환경재단의 맹수진 프로그래머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시가 환경오염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공간인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을 모르고 편리한 생활을 추구한다”며 “이 영화제가 환경문제를 환기시키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각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넘어 생활문화 전반으로 관심 확장   

환경운동은 기후변화를 넘어 먹거리와 생활양식을 포함한 생활문화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서울환경영화제는 기존 5개 부문에서 올해 8개 부문으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새롭게 마련된 세션은 환경과 관련된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지속가능한 삶’, ‘공존의 삶’, ‘문명의 저편’이다. 영화제의 홍보를 책임지고 있는 김옥희 대표는 “빠르게 변화해가는 환경이슈에 맞춰 환경영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환경과 삶의 조화를 모색할 수 있는 우수 영화를 많이 소개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한 삶’에서는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며 달팽이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담은 <나의 언덕이 푸르러질때>(올리버 디킨슨 감독) 등 대안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장편들이 선보인다.

▲ 영화 <나의 언덕이 푸르러질 때> 의 한 장면. ⓒ GFFIS

지난해까지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었던 세션은 ‘공존의 삶’으로 주제가 확대돼 동물생존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철창을 열고>(크리스 헤지더스 감독 등)와 유럽 난민문제를 조명하는 <아이 엠 더블린>(다비드 아로노비치 감독 등) 등이 상영된다. ‘문명의 저편’에서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전통적 삶을 되돌아보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툰드라 지역의 유목민을 다룬 <하얀 이끼>(블라디미르 투마예프 감독), 지구온난화로 위험에 처한 이누이트족을 다룬 <마지막 이누이트: 나누크의 후예>(크리스토프 쿠잔 감독)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상영된다.

개막작은 마이클 무어의 신작  ‘다음 침공은 어디?’  

개막작으로는 마이클 무어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다음 침공은 어디?>가 상영됐다. 120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에서 무어는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신이 1인 군대가 된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에 침공해 좋은 제도를 훔쳐오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침공에는 세 가지가 조건이 있다. 첫째 총을 쏘지 않고, 둘째 석유를 약탈하지 않으며, 셋째 미국인에게 유용한 것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무어가 빼앗아오려는 것은 이탈리아의 휴가제도, 프랑스의 학교급식제도, 핀란드의 교육제도, 노르웨이의 감옥제도 등이었다.

▲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의 한 장면. ⓒ GFFIS

김옥희 대표는 이번 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영화의 문제의식이 서울환경영화제가 지향해온 모든 가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관심이 노동환경·먹거리·교육·양성평등·인권 등으로 확장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청소년의 환경감수성 길러주는 ‘시네마 그린틴’

▲ 서울 역사박물관 앞 야외광장. ⓒ 박경배

영화제 현장에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지난 8일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앞 야외광장에서는 교사 인솔 하에 단체관람을 온 중·고등학생들부터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까지 수십 명이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청소년들의 참여도가 높은 것은 환경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시네마 그린틴’ 덕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 신청한 청소년들에게 교육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무료관람하고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 이정준 감독과 맹수진 프로그래머. ⓒ 박경배

이번 영화제에서 특히 청소년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작품은 이정준 감독의 <돌고래와 나>다. 불법포획 됐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방사된 사건을 계기로 돌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이 감독은 2년 간 제주도에 머물며 돌고래를 추적했다. 동료가 죽은 사실을 모른 채 숨을 쉴 수 있도록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물 위로 밀어내던 돌고래, 정치망(일정한 장소에 가설된 그물)에 걸렸다 간신히 구조된 돌고래, 꼬리에 낚시 바늘을 끼운 채로 헤엄치는 어린 돌고래 ‘꼬랭이’의 사연이 그의 영화에 담겼다. 영화 상영 후 바로 무대에 등장한 감독과 관객들이 대화하는 ‘게스트 토크’ 시간에는 객석의 반 이상을 차지한 청소년들이 이 감독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의 삶,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 자연 다큐멘터리 등에 대해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씨네큐브 1관을 열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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